돌아온 Mr.펀드 구재상, "인문학 배우며 운용전략 구상했죠"

by오희나 기자
2013.08.01 13:31:56

일명 '구재상 랩', 업황 침체 불구 시중 자금 '블랙홀'
"불확실성 높을때가 투자기회..꾸준한 수익률 돌려줄것"

[이데일리 오희나 기자] “시 쓰는 것도 주식투자와 비슷합니다. 시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주식투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꿈에 투자하는 것이죠.”

구재상 전 미래에셋 부회장(50)이 투자자문사 ‘K클라비스’로 주식시장으로 돌아왔다. 한때 60조원 이상 주무르던 그가 지난 4월 자본금 263억원, 직원 12명을 거느린 회사의 사장이 됐다. 그는 회사에 사재를 털어 20억원을 출자하기도 했다.

일명 ‘구재상 랩’으로 불리는 K클라비스랩은 판매 이후 1000억원이 넘는 자금이 몰리며 그의 이름값을 실감케 했다. 한화투자증권이 업계 최초로 판매한 ‘한화 케이클라비스 자문형랩’은 5거래일만에 600억원 가량 끌어모았고,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을 통해서도 각각 500억원, 100억원 규모가 팔렸다.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구재상 대표는 “하반기는 불확성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내년에는 좋은 투자기회가 올 것이다. 시장이 불안할수록 길게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며 “투자자들에게 안정적이고 꾸준한 수익률을 돌려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지천명’ 제2의 모멘텀..인문학 배우며 운용전략 구상

구 사장은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최현만 수석부회장과 함께 미래에셋자산운용 펀드 신화를 이끈 주역이다. ‘Mr. 펀드’라는 별명도 얻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간판펀드인 솔로몬펀드, 인디펜던스펀드, 디스커버리펀드 등을 이끌며 그룹의 전성기를 함께 했다. 그런 그에게 자문사는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에 맞은 두번째 반환점이다.

그는 “미래에셋을 그만두고 가진 휴식이 인생에서 가장 긴 휴가였다. 지난 2월 유럽여행을 갔을때 제네바에서 밀라노로 가는 고속열차에서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는 것이 인상 깊었다”라며 “첫번째는 미래에셋 신화의 주역으로 평가받았다면 두번째는 K클라비스자문으로 평가받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성악가 임응균 한국예술종합대학 교수가 지어준 ‘K클라비스’라는 사명도 의미가 깊다. K는 한국(Korea), 클라비스는 라틴어로 열쇠라는 뜻이다. 투자자에게 투자에 관한 새로운 문을 열어주겠다는 뜻을 담았다.

5개월간의 공백은 그에게 ‘운용’의 본질에 대해 구상할 수 있었던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인문학을 배우면서 시와 주식투자가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는 “쉬는 기간 동안 시, 클래식, 미술 등 인문학에 대해 공부를 좀 했다”며 “특히 시가 재밌더라. 시를 쓸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주식투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꿈에 투자하지 않나. 투자를 잘하려면 시를 써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2년간 몸담은 미래에셋을 떠나게 배경에 대해선 “미래에셋에서의 내 역할은 할만큼 한 것 같다”며 “예전부터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구상은 갖고 있었다”고 언급했다. 사의표명은 오래 전에 했지만 회사에 부담이 덜 되는 시기로 조율했다고 덧붙였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완전히 등을 돌렸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며 의견대립은 있었지만 쌓아온 세월이 있는 만큼 안부를 묻고 지내는 사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구 대표는 “미래에셋과의 경쟁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며 “미래에셋에 있을 때는 사이즈에 대한 부담이 있었고, 지금은 새로 시작하는 부담이 있다. 똑같은 부담이지만 지금이 활동할수 있는 여지가 더 넓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60조원의 자금을 움직였던 그였지만 규모가 컸던 만큼 운용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 한때 미래에셋이 사고파는 종목만 투자해도 돈 번다는 얘기가 업계에 돌기도 했을 정도로 움직임에는 제약이 많았다. 운용 규모는 줄어들었지만 행동 반경은 더 넓어졌다는 것, 그런 만큼 주식투자에도 자신감을 내비쳤다.

구 대표는 “초심으로 돌아가 안정적이고 꾸준한 수익률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장이 불안할수록 길게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1~2년을 놓고 보면 그 안에서 투자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확실성 짙을 때가 투자기회...스토리 있는 종목 발굴해야”

구 사장은 “최근 증시는 투자해볼 만한 지수대로 시장이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라며 “하반기에도 박스권 장세가 예상되고, 당분간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중국의 경착륙 우려가 리스크로 작용하겠지만 투자여건은 긍정적”이라고 판단했다.

구사장은 또 “최근 랩시장이 침체돼 있지만 자문형랩 안에서도 주식형뿐만 아니라 자산배분 전략도 구사할수 있어 충분히 기회가 있다고 본다”며 “절대수익추구펀드 등도 염두에 두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해외투자나 헤지펀드도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적당한 매물이 있다면 자산운용사를 인수하거나 자문사를 운용사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운용사가 몸에 더 맞는 옷이라는 것.

그는 “투자자들에게 안정적이고 꾸준한 수익률을 돌려줄 것”이라며 “종목 선택에 있어서도 성장과 가치를 같이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시기에 따라 적합한 투자스타일이 있는 만큼 성장과 가치를 적절히 조율해 탄력있는 매매를 구사하겠다는 복안이다.

그는 또 “지수보다는 종목이나 업종에 대한 매력이 더 크다. 현대중공업 LG화학 OCI NHN 등 스토리가 있는 종목을 발굴하고 싶다”며 “그동안 낙폭이 과도했던 종목을 주로 보고 있다. 클라우딩, 헬스케어, 중국 내수 관련 종목들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구 사장은 “시장이 불확실할 때 투자기회가 있다. 유럽·미국의 리스크가 위기였지만 그 속에 기회가 있는 것처럼 성장의 본질이 변하지 않으면 그 속에서 기회를 찾을수 있을 것”이라며 “하반기는 불확성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내년에는 투자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