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 사이트 ‘우회 접속 안내글’ 삭제 되돌린 방심위..왜?

by김현아 기자
2020.12.27 17:10:12

위법아니라 판단된 ''노스코리아테크'' 우회접속 소개글
“불법뿐 아니라 유해성까지 자의적으로 판단”
방심위 통신심의는 10년 전부터 논란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강상현·방심위)가 검열 논란이 컸던 인터넷 사이트에 대해 우회 접속이 가능한 방법을 소개한 진보네트워크센터(진보넷)의 ‘디지털보안가이드’ 글에 대해 삭제하라고 요구했다가 지난 22일 결정을 철회했다. 진보넷이 방심위에 지난 8일 이의를 제기했고 이를 인용하는 결정을 한 것이다.

이번 결정은 ①북한 전문 IT 매체 ‘노스코리아테크’에 대한 접속 차단 결정이 1심에 이어 2심 법원에서도 위법으로 판결됐다는 점 ②해당 사이트를 차단한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 1, 2심 결정에도 불구하고 접속 차단을 우회하는 방법을 소개한 과거 진보넷 홈페이지 게시글(2016년 5월 13일 작성)에 대해 2020년 11월 30일 시정명령을 내렸다는 점 등 방심위에 불리한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예상된 결과다.

재판부가 원 사이트(노스코리아테크) 자체가 위법이 아니라고 해서 접속 차단이 풀렸는데, 뒤늦게 방심위가 우회접속 안내글을 지우라고 명령한 셈이기 때문이다.

▲방심위가 삭제를 명령했다가 진보넷의 이의제기로 삭제를 철회(이의신청 인용)한 진보넷 홈페이지.


하지만 이번 사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나치게 경직된 태도로 인터넷 글에 대해 심의하고 차단이나 삭제를 요구하는 것 아닌가 되돌아보게 만든다.



오병일 진보넷 대표는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방심위가 차단을 요청한 사이트는 오래된 것들로 최근에 연락이 왔다”면서 “(그들은) 이게 불법 콘텐츠를 우회 제공하니 불법이라며 차단을 요구한 것인데, 노스코리아테크는 법원에서 위법이 아니라고 해서 현재 접속이 가능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하드코어 포르노나 디지털 성범죄 사이트들까지 우회접속 방법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문제는 방심위가 불법 콘텐츠뿐 아니라 유해하다고 보는 콘텐츠까지 접속 차단이나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영국인 기자 마틴 윌리엄스가 운영하는 ‘노스코리아테크’만 해도, 2016년 방심위가 국가정보원의 신고를 받아 접속 차단했지만, 2017년 4월 1심 재판부와 2017년 2심 재판부는 모두 “국가보안법 위반 정보로 볼 수 없는 정보들도 상당히 존재하는 웹사이트 전체를 차단한 것은 최소 규제의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사이트 차단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오 대표는 “문제는 행정기관인 방심위가 사실상의 검열기구처럼 활동하는 것”이라며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불법 여부는 사법 제도와 판단을 거쳐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방심위가 광범위한 심의 대상에 대해 자의적으로 판단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방심위 관계자는 “(진보넷의 디지털보안가이드 글은) 현 시점에서는 문제가 없는 게 맞으니 인용결정(삭제요구 철회)을 했다”면서 “(불법 사이트 우회접속 안내글에 대한 삭제여부는)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사실상 행정기관이 인터넷 게시물을 통제하는 것으로 검열의 위험이 높다”면서 “방심위의 통신심의 및 시정요구 권한을 민간자율단체로 이양하라”고 권고하는 등 방심위의 통신 심의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돼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