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최선 기자
2016.03.22 10:23:46
[이데일리 최선 기자] 거리를 누비는 시민들의 옷차림은 간편해졌다. 곳곳에는 꽃봉오리를 맺은 나무들도 눈에 띈다. 하지만, 우리 해운업계는 유독 기나긴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특히 20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선복량 기준 세계 16위로 밀려난 현대상선(011200)은 가혹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현대상선은 7대1 비율로 주식을 병합하는 감자를 결정했고 지난 21일에는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선주들과 용선료 인하 협상이 진행 중인데다 회사채의 만기를 연장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현대그룹 차원의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어떤 것 하나 녹록한 게 없어 보인다.
해운의 위기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불황이 장기화한 데 따른 것이다. 해운업체들이 자초한 인재(人災)라기보다는 천재(天災)에 가깝다는 얘기다. 물론 고비용 용선계약을 이어가고 알짜배기 사업부·선박을 매각하는 등 유동성 위기 극복에만 집중한 우리 업체들의 영업전략이 적절치 못해 경영위기가 장기화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천재로 인한 피해를 보고도 손을 놓아버린 정부도 책임이 적지 않다. 위기에 처한 해운업을 구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말 그대로 딴 나라 얘기다. 2011년 해운산업이 불황기로 접어들기 시작하자 덴마크, 중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은 메이저급 해운업체들에 대해 대규모 지원을 실시했다. 중국 정부는 노후 선박 해체 시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는 2012년 대선 공약이었던 한국선박금융공사 설립의 대안으로 기능을 축소한 한국해양보증보험을 지난해 하반기에야 출범시켰다. 규모 12억 달러(1조 4000억원)의 선박펀드를 조성키로 한 것도 지난해 말의 얘기다. 이마저도 부채비율 400%에 이르러야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현재 1700%다. 희망고문보다 가혹하다. 북한 제재에 따라 현대상선이 투자를 검토 중이던 나진-하산 프로젝트도 물거품이 됐다.
흔히 해운업을 제4군(軍)이라고도 부른다. 유사시 병력·장비를 운송하는 수단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이런 산업이 고사 위기다. “주주들의 희생과 결단 없이는 2017년 상장폐지 될 위험이 큼을 염두해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라며 지난 18일 주총에서 고개를 푹 숙이던 이백훈 현대상선 사장의 모습을 정부가 헤아렸으면 한다. 이는 29만명 해운업 종사자들의 신음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