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떨리는 스크린… 다 벗어도 '공감대'는 걸쳐라?(VOD)

by조선일보 기자
2009.04.02 13:55:33

서정적 스토리 겸비한 '더 리더'·'엘레지' 흥행
노골적 노출의 '숏버스' 쑥스러움 자극해 외면

▲ 영화‘엘레지’의 콘수엘라(페넬로페 크루즈)는 30세 연상의 노(老)교수와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여성 관객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영화다./누리픽쳐스 제공
[조선일보 제공] '살 영화' 바람이다. 말 그대로 '살갗'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영화들이 연이어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2007년 300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으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색, 계'의 열풍이 지난해 '미인도' '쌍화점'에까지 이어지더니 최근 들어 저예산 영화나 다름없는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엘레지'에까지 불고 있다.

특히 이들의 흥행 뒤엔 든든한 '아줌마 티켓 파워'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영화예매사이트 '맥스무비' 기준으로 '색, 계'와 '미인도', '쌍화점' 모두 여성 관객 예매 비율이 60% 정도를 기록한 작품. 연령별로는 40대 이상 관객이 약 20% 차지하고 있다. 이 연령대 비율은 대개 10% 정도다.

▲ (왼쪽부터)서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전개로 인기를 끈‘색계’와‘더 리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에 앞서, 케이트 윈즐릿이 15세 연하 소년과 에로틱한 장면을 연출한 것으로 더 입소문을 타고 있는 '더 리더'(3월 26일 개봉)는 작품성은 물론 '벗었다'는 이유로도 여성들의 관심을 톡톡히 받고 있는 작품이다. '더 리더'를 홍보하는 루비키노의 하해진씨는 "오전 10시 혹은 11시쯤 개봉하는 2~3회차 관객들의 비중이 다른 영화들에 비해 꽤 높은 걸 보면 주부 관객들의 유입이 상당한 것 같다"며 "주인공과 나이대가 비슷한 30대 후반부터 40~50대 여성들에게 매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호평받고 있는 '엘레지'(3월 19일 개봉)는 스페인출신 미녀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의 열연으로 관심을 모은 작품. 서른 살 차이의 교수(벤 킹슬리)와 대학원생 콘수엘라(크루즈)가 나누는 격정적인 사랑이 스크린을 수놓는다. 지난 2008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헤어누드'도 불사하는 배우들의 농도 짙은 정사장면 등 '색(色)'이 가득한 두 영화 모두 30대 이상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점에서 지난해 관객들이 '미인도'(250만명)와 '쌍화점'(400만명)에 보냈던 반응과 비슷하다.






▲ 노출 수위와 관련한 논란이 뜨거웠던‘숏버스’(맨 아래)는 정작 개봉 뒤엔 관객들의 반응이 미지근하다.


무조건 벗었다고 해서 여심(女心)이 움직이는 건 아니다. 최근 재심의 등 논란을 거쳐 2년 만에 개봉한 '숏버스'(3월 12일 개봉)가 관객의 관심을 그다지 끌지 못하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동성애·혼음 등을 정면으로 다뤘지만 현재 1만6000여명 정도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매표소 앞에서의 심리. 해외 영화제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경우엔 '좋은 영화를 본다'는 떳떳함이 있지만, '숏버스'처럼 영화제 수상작임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노출이 상당할 경우 '야한 영화 팬'이라고 낙인 찍힐까 부담스럽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심리는 극장 안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청주대학교 영화학과 심은진 교수는 "보통 성애장면을 다룬 영화는 관객의 '관음증'을 자극하기 마련인데, 이렇게 파격적인 장면들이 많은 작품의 경우 익명의 타인들과 어울려 보는 걸 본능적으로 꺼리게 된다"며 "관음증은 공유되기 힘들기 때문에 결국 집에서 혼자 보는 걸 택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영화제 수상 등의 요소도 필요함과 동시에 여성의 마음을 움직이는 서정성도 겸비돼야 한다. 연세대 황상민 심리학과 교수는 "'색, 계'가 인기가 끌었던 건 단지 파격적인 정사장면 때문이 아니라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스토리가 존재했기 때문"이라며 "여성들의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는 예술성과 교집합을 이끌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