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수의 월가 키워드)The Bonfire of The Vanities

by정명수 기자
2004.10.14 13:13:25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아래를 보며 살라." 월가에서 이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더 높은 곳으로, 더 화려한 삶을 향한 욕구가 시장을 움직이는 기본 동력이다. `The Bonfire of The Vanities`는 톰 울프가 쓴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80년대 월스트리트의 한 채권 트레이더가 주인공이다. 성공한 월스트리트 맨의 삶은 불꽃처럼 화려하지만, 결국은 사그러들고 만다. "단 하루를 살아도 이렇게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운 삶. 전진하지 않으면 성공은 신화로 전락하고 만다. 신화는 한 순간에 사라지는 `허영의 불꽃`이다. ◇라이어스 포커(Liar"s Poker) 이 책의 실제 배경은 살로먼브라더스다. 살로먼은 월가 최고의 채권 하우스였다. 모든 채권 가격은 살로먼에서 계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레이딩에 최초로 컴퓨터를 이용한 금융기관도 살로먼이었다. 살로먼이 배출한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있다. 현재 뉴욕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도 살로먼 출신이다. 웬만한 트레이딩 룸에는 데이터의 보고인 블룸버그 터미널이 한 대씩은 있다. 살로먼 출신으로 존 메리웨더를 빼놓을 수 없다. 메리웨더는 월가를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갔던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 사건의 장본인이다. 살로먼에서 메리웨더는 차익거래 팀을 이끌었다. 훗날 이 팀의 투자전략이 고스란히 LTCM으로 넘어오게 된다. 메리웨더는 트레이더의 자질을 포커 실력으로 판단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트레이딩 룸에서 그는 부하 직원들과 `라이어스 포커(Liar"s Poker)` 게임을 즐겼다. 마이클 루이스의 책 `라이어스 포커`를 보면 살로먼의 CEO인 굿 프랜드가 메리웨더에게 한판에 100만달러짜리 포커 게임을 하자고 제안하는 내용이 나온다.("One Hand, One Millian dollars, No tears") 원래 라이어스 포커는 카드 게임의 일종이다. 에이스와 킹으로만 한 벌의 카드를 만든다. A가 카드를 뽑는다. 에이스가 들어왔다면 여지 없이 "에이스"라고 말한다. 만약 킹이 들어오면 진짜 게임이 시작된다. 킹이지만 "에이스"라고 `거짓말`을 할 수 있다. B는 A가 정말 에이스를 들고 있는지, 킹을 들고서도 에이스라고 했는지 판단해야한다. 포커 페이스를 읽는 능력이 중요하다. B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우선 "뻥카(bluff)"라고 말하고 액면을 보자고 요구한다. A가 정말 에이스를 들고 있다면 B는 10달러(혹은 100달러)를 잃는다. A가 뻥카라면 B가 10달러를 받는다. 액면을 보는 대신 A에게 5달러(혹은 50달러)를 주고 카드를 다시 섞을 수도 있다. 이번에는 B가 카드를 뽑을 차례다. 같은 방식으로 게임은 계속된다. 여기서 핵심은 액면을 보자고 요구하지 않으면 A가 정말 어떤 카드를 들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패와 상관없이 거짓말(뻥카)을 잘 지르면 돈을 딴다. `메리웨더와 그 일당들`은 카드대신 달러 액면에 표시된 일련번호 숫자를 이용했다. 세명이 게임을 한다고 하자. A가 "6이 셋(Tree Sixes)"라고 말하면 A, B, C가 들고 있는 지폐 번호 중 6이 셋 이상이라는 의미다. B는 베팅을 올리거나(6이 넷 또는 7이 둘), 액면을 보자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베팅에 대해 나머지 두 사람이 모두 액면을 보자고 할 때까지 베팅은 올라간다. 여기서도 숫자가 나올 확률을 계산하는 것보다도 상대편의 표정을 잃는 능력이 중요하다. 메리웨더는 라이어스 포커의 달인이었다. 메리웨더는 트레이딩에도 `뻥카`가 필요하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메리웨더의 과도한 리스크 선호는 나중에 살로먼을 궁지로 몰아넣게 된다. 결국 메리웨더는 살로먼을 나와 1993년 LTCM을 차린다. ◇LTCM의 신화 메리웨더는 옵션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머튼과 마이런 숄즈 등을 끌어들여 최강의 차익거래 팀을 구성한다. LTCM은 출범 첫해 28%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단기간에 미국 최고의 헤지펀드로 떠올랐다. 메리웨더는 자신의 팀원들을 항상 몰고 다녔다. 메리웨더는 핸디 4의 골프 광이다. 고등학교 때 캐디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 내기를 했다. 팀원들과 주말 골프를 치면서도 내기를 했다. 경마와 도박을 즐겼고, 선거 결과에도 내기를 걸었다. LTCM 팀원들은 라이어스 포커에도 열심이었다. 메리웨더는 게임을 못하는 팀원들을 자르겠다는 위협도 했다. 판돈이 &47750;만달러로 불어났고, 책상서랍에는 수백장의 지폐가 굴러다녔다. 특정 숫자가 너무 자주 나타나면 지폐대신 컴퓨터로 난수표를 만들어 게임에 열중했다. 메리웨더는 성공의 순간을 아낌없이 즐겼다. 승마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400평 규모의 실내 경마장이 딸린 270만달러 짜리 저택으로 이사했다. 정문에서 1200미터를 들어가야 현관이 나왔다. LTCM은 자신의 고객들에게도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LTCM은 해마다 주요 고객들을 아일랜드 워터빌 골프장으로 초청했다. 전용 비행기로 대서양을 건너간 고객들은 타이거 우즈가 라운딩했던 코스에서 LTCM 임원들과 팀을 이뤄 골프를 쳤다. 메리웨더는 워터빌 외에도 뉴욕 롱아일랜드의 시네콕힐, 캘리포니아의 사이프레스 포인트 등 고급 골프 클럽의 회원권을 가지고 있었다. 잘나가던 LTCM은 1998년 공중 분해된다. 러시아와 아시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LTCM의 레버리지 차익거래 포지션이 불꽃처럼 사라져버린다. LTCM은 연방준비은행의 중재로 월가 투자은행들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고 빚을 청산한 후 문을 닫았다. ◇에머랄드 목걸이와 자가용 제트기 콜버그크라비스로버츠(KKR)는 1988년 RJR나비스코를 놓고 벌인 LBO 전쟁에서 250억달러를 써내 승리한 M&A 전문 회사다. 이 회사의 파트너 중 하나인 헨리 크라비스는 키 160센티미터의 단신에 유태인이다. 그의 아내 캐롤린 로엠은 패션 디자이너다. 둘은 이혼 경력이 한 번씩 있었는데 파티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다. 크라비스는 1980년대초 월가를 강타한 LBO(Leverage Buy Out) 열풍의 주역이었다. 차입 또는 펀드를 모집해 자금을 확보한 다음, 부실 기업을 인수하고,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쳐, 비싸게 되파는 기업 사냥꾼이었다. 처음에 LBO는 우호적인 M&A가 주류를 이뤘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적대적 M&A를 가리지 않았다. 멀쩡한 기업을 파괴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당시 그의 재산은 2억달러에 달하는 억만장자였지만, 매일 12시간 이상 일에 매달렸고, M&A 대상 기업을 물색하러 전세계를 돌아다녔다. 냉철한 기업 사냥꾼 크라비스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는 로엠을 차지하기 위해 M&A 딜을 하는 것처럼 물량 공세를 마다하지 않았다. 하루는 저녁 식사를 하면서 로엠에게 새로운 테니스 신발을 선물했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테니스 신발을 신어보라고 권하는 크라비스를 무드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로엠은 마지못해 구두를 벗고 테니스화를 신어봤다. 로엠은 깜짝 놀랐다. "이게 뭐죠!" 신발 속에는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유치(?)하지만, 수만달러를 호가하는 애정 공세는 결혼 이후에도 계속됐다. 크라비스 부부는 호화 파티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로엠의 드레스는 한벌에 8000달러가 넘었다. 크라비스는 휴양지인 햄턴과 바일, 코네티컷 등에 고급 주택을 가지고 있었고, 맨해튼 맨션은 유럽의 예술작품으로 가득했다. 여름 휴가는 잘츠브르크에서, 휴일은 바일에서, 주말에는 코네티컷에서 사냥을 즐겼다. 저녁에는 무도회로 나들이를 나갔고, 아침에는 르느와르가 걸려있는 복도를 거닐며 나즈막히 아리아를 불렀다. 크라비스의 아내 사랑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한 파티에서 로엠은 물방울 크기 만한 에머랄드 목걸이를 하고 나타났다. 한 친구가 "어디서 난거야"라고 물었다. 로엠은 "내 베개 밑에서"라고 답했다. 동화 속 왕자와 공주 얘기 같은 이런 에피소드는 `Barbarians at the Gate`라는 책에 나온 것으로 당시 뉴욕 사교계에 널리 알려진 실화다. 한편 RJR나비스코를 놓고 크라비스와 경쟁했던 로스 존슨이라는 인물도 그에 버금가는 한량이었다. 존슨은 당시 RJR나비스코의 CEO로 나비스코의 주가가 곤두박질치자, 자신이 직접 LBO의 주역이 되서 회사를 인수할 계획을 세웠다. 존슨은 전형적인 황제 CEO였다. 미국 2위의 담배회사인 RJR은 엄청난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CEO를 비롯한 이사, 임원들은 초특급 대우를 받았다. RJR은 덴버의 유명한 캐슬 파인 골프 클럽에 호화 맨션을 가지고 있었다. 존슨은 틈나는 대로 주요 임원, 고객, 투자자들을 초청해 파티를 열었다. RJR은 미국 전역에서 파티에 초대된 인사들을 수송하기 위해 별도의 항공기를 운항했다. `RJR Air Force`라는 별명이 붙은 이 항공대는 존슨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RJR은 6대의 자가용 제트기와 2대의 경비행기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존슨은 이 비행대를 위해 별도의 격납고를 만들도록했는데 3층 규모로 조경 비용만 25만달러가 들어갔다. 파일럿도 36명이나 있었으며, 별도의 비행 브리핑 룸이 있었고, 심지어 방문 파일럿을 위한 휴식 공간도 있었다. 존슨의 화려한 삶은 LBO 전쟁에서 패하면서 끝이 났고, RJR나비스코는 크라비스의 손에 넘겨져 구조조정의 험난한 길을 걷게 된다. ◇포시즌 미국의 대형 기업들은 자가용 제트기를 한두대쯤 가지고 있다. 존슨의 RJR Air Force는 좀 과도한 경우지만, CEO라면 전용 제트기를 굴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모양이다. 자가용 제트기로 최고의 인기를 끄는 것이 걸프스트림(위 사진)이다. 시티그룹의 샌디 웨일 회장에게도 이 제트기에 얽힌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웨일 회장이 스미스바니증권을 인수할 때 일이다. 스미스바니증권은 원래 프라이메리카라는 기업의 숨겨진 보물(Crown Jewel)이었다. 프라이메리카는 제랄드 사이라는 중국계 투자 거물의 소유였다. 사이는 호텔, 레코드 체인점 등 잡다한 사업체였던 프라이메리카를 스미스바니를 중심으로한 금융그룹으로 키우려했다. 웨일 회장이 스미스바니에 관심을 두고, 프라이메리카 인수 의향을 밝히자, 약삭빠른 사이는 정관을 변경, 엄청난 액수의 골든 패라슈트(Golden Parachute) 조항을 삽입한다. 실사 단계에서 골든 패라슈트를 확인한 샌디 웨일은 불같이 화를 내며 딜 자체를 무산시키려 했다. 이때 두 회사의 M&A를 중재했던 헤리스라는 투자은행가가 묘안을 찾아냈다. 헤리스는 평소 웨일 회장이 전용 제트기를 한대 가졌으면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마침 프라이메리카는 G4라는 제트기를 보유하고 있었고, 신형 제트기도 수주를 해 놓은 상태였다. 헤리스는 G4 사진을 웨일 회장에게 보여주며 "골든 패라슈트도 딜의 일부로 생각해야합니다. 이 제트기를 보세요. 프라이메리카를 인수하시면 이 비행기도 같이 가져 오시는 겁니다. 비행기를 포함해서 회사 가치를 평가해보십시요"라고 말했다. 구두쇠 웨일 회장은 수많은 M&A 딜을 하면서도 회사 가치 이상으로 돈을 지불한 적이 없었다. 피합병 기업의 경영자에게 막대한 보상금을 지급하는 골든 패라슈트는 그의 사전에는 없는 단어였다. 웨일 회장은 그러나 스미스바니만큼이나 G4가 탐이 났다. 결국 사이에게 3000만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조건을 수용, 프라이메리카를 인수한다. 웨일 회장은 메리웨더, 크라비스, 존슨처럼 골프를 좋아하고, 고급 맨션을 보유하고 있지만, 월가 밑바닥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인물답게 티나게 부를 과시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러나 웨일 회장이 끝도 없이 욕심을 내는 것이 하나있다. 음식이다. 웨일은 골초에 점심에도 반주를 꼭 함께하고, 엄청난 양의 저녁을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임원들과 아이디어 회의 겸 만찬을 할 때 저녁 코스는 대략 이렇다. 바닷가재와 새우 등 해산물이 메인 메뉴에 앞서 나온다. 보통 사람이라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Gibson 칵테일을 마신다. 메인 요리로 넘어가면 레드 와인과 함께 크림소스가 듬뿍인 해산물부터 살짝 익힌 스테이크까지 먹어치운다. 웨일은 최상의 맛과 양을 요구한다. 요리사들은 보통 사람이 먹는 양의 2배를 준비하곤 한다. 이렇게 저녁을 먹고 난 후, 임원들과 밤새워 토론을 했다. 알코올 기운이 거나해질 때까지 난상토론이 계속됐다. 웨일 회장은 M&A를 통해 자신의 금융제국을 넓혀갔고, 그때 마다 비용절감을 위해 피도 눈물도 없는 감원을 단행했다. 그러나 회사가 안정되면 곧바로 최고급 요리사를 고용했다. 웨일 회장의 단골 레스토랑은 맨해튼 52번가에 있는 포시즌이다.(사진) 이 식당 앞을 몇번이나 지나갔지만 아쉽게도 한번도 들어가보질 못했다. 웨일 회장이 아메리칸익스프레스에서 쫓겨나, 월가에서 추방됐을 때에도 그는 이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다른 곳에서 밥을 먹는 것이 싫어서 포시즌과 가까운 곳에 재기를 위한 사무실을 열 정도였다. 아들같은 사업 동반자 제이미 다이먼을 제거한 후 둘 사이가 서먹해졌지만, 포시즌에서 다시 화해의 식사를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웨일 회장의 식탐도 월가를 강타했던 `거짓 보고서 스캔들`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엘리어트 스피처 뉴욕 검찰총장이 잭 그룹먼의 이메일을 공개하며 자신을 압박해오자, 웨일 회장은 금주와 절식을 선언한다. `먹는 낙`으로 살아온 웨일 회장이 그 즐거움을 포기할 만큼 거짓 보고서 스캔들의 파장은 심각했다. 웨일 회장의 성공 신화도 자칫 불꽃처럼 사라질 뻔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