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수헌 기자
2005.03.07 13:41:31
꼬리에 꼬리를 문 의혹에 여론악화
트럭운전사가 16억땅 매입에 의혹 눈덩이
여권 핵심의 퇴진요구에 대세는 기울어
[edaily 김수헌기자] 이헌재 경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재산공개 이후 11일만에, 부동산 투기의혹이 불거진 지 일주일만에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언론의 끊임없는 새 의혹제기와 여론 악화, 청와대의 강력한 신임에도 불구하고 이어진 여권핵심의 퇴진요구 등을 견뎌내지 못하고 7일 공보관을 통해 퇴진의사를 밝혔다.
이 부총리로서는 투기 의혹이 가라앉지 않아 도덕성에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는 경제수장으로서 리더십을 더 이상 발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경제정책의 일관성을 강조하며 유임에 무게를 실었지만, 여론은 오히려 부동산 투기를 반드시 잡는다는 참여정부의 정책 일관성에 이 부총리가 적합하지 않다며 역공을 가했다.
◇위장전입 문제제기 이후 의혹 꼬리이어
이 부총리에 대한 의혹은 지난 2월24일 공직자 재산등록 현황에서 최근 6년간 65억원이나 되는 재산증가가 부동산을 통해 이뤄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이때만해도 20여년 이상 묻어둔 땅의 가치가 크게 올라 돈을 번 정도로만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4일만인 28일 언론에 이 부총리 부인인 진진숙씨가 경기도 광주와 전북 고창 일대 전답을 사는 과정에서 위장전입을 했다는 의혹에 제기되면서 도덕성 문제가 불거졌다.
재경부측은 "지난 79년 재경부 금융심의관(국장급)을 그만두고 5년 예정으로 미국 유학을 가면서 에금과 적금, 주택전세금 등을 긁어모아 땅을 샀는데, 20여년 만에 팔아 차익이 많이 났다"며 "투기목적으로 부동산을 사거나 판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후 이 부총리는 국무회의와 저출산 관계장관회의 등 공식일정을 취소, 언론을 피하는듯한 모습을 보였고, 언론은 광주시 일대 땅 매각과정에 대한 집중적인 취재에 들어갔다.
그러나 3월2일 청와대는 의혹제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부총리에 대한 강력한 재신임 의사를 밝혔다. 경제정책의 일관성이 필요하고 이 부총리가 경제수장으로서 할 일이 많다는 설명이었다. 또 문제가 된 부동산은 이미 여러차례 검증을 거쳤기 때문에 다시 조사할 계획도 없고, 현재로선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판단한다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3·1절 골프까지 겹쳐 여론악화
이 와중에 이 부총리가 3·1절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박종근 위원장 등 국회의원들과 골프회동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부총리에 대한 비난여론은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이 부총리 자진사퇴를 촉구했고 야당 일각에서는 청문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 부총리는 당시 유지창 산업은행 총재를 만나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따라서 3·1절 골프나 유총재에게 한 언급 등을 고려하면 당시 이 부총리는 이때 사퇴결심을 굳히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다음날인 2일 청와대가 강력한 신임의사를 천명하고, 3일 대통령이 연두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재경부를 크게 칭찬하자 이 부총리도 심경에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이날 이 부총리는 오후 기자브리핑에서 "땅문제 때문에 편법시비를 불러일으킨데 대해 국민들께 사과한다"며 의혹들을 해명했다.
이 부총리가 그때까지 받고있던 의혹은 부인 진씨가 지난 82년 이후 광주 일대 논밭 총 8필지를 살 때 7필지는 위장전입을 통해, 1필지는 현지주민 명의를 빌려 매입한 뒤 부동산 실명제 실시 이후 본인명의로 이전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부총리는 3일 이같은 의혹들에 대한 근본적인 설명없이 "편법을 할 의사가 없었고, 매각대금 역시 신고가격과 같기 때문에 정상적 거래가 있었다"는 사실만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트럭운전수가 16억땅 매입 밝혀지면서 의혹 최고조
그러나 하루 뒤 이 부총리 경기도 광주 전답 5800여평을 16억원에 매입한 차모씨가 7000만원짜리 전세집에 사는 트럭운전사로 드러나고, 매입 뒤 곧바로 15억원을 대출받는 등 추가의혹들이 집중적으로 제기되면서 사태는 클라이막스로 치닫기 시작했다.
석연치않은 대출과정과 함께, 땅을 판 시점이 부총리 취임 뒤 정부에서 광주땅을 토지투지지구로 지정하는 방안을 심의하기 직전이라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이 부총리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져갔다.
하지만 이 부총리측은 취임은 2004년 2월이었고 애초 매매계약을 맺은 것은 2003년 10월이었기 때문에 취임 뒤 투지지역지정 정보를 이용했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매입자에 대한 정보는 땅을 팔 당시 법무사에게 일임했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또 등기부등본상 매입자는 차모씨 외 6명으로 돼 있지만, 2003년 10월 최초 계약서에는 유모씨 외 10명으로 돼 있는 등 등기부에도 없는 유씨가 매입자로 최초계약서에 이름이 오른 이유 등에 대해서도 이 부총리측은 알 길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제기된 의혹 중 명쾌하게 풀리는 것이 별로 없자, 여론은 더욱 이 부총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와중에 대통령 핵심측근으로 열린우리당 당의장 후보로 나선 염동연 의원이 지난 4일 이 부총리 자진사퇴를 강력하게 촉구히기에 이르렀다.
청와대는 이 부총리가 투기와 거리가 멀다며 재신임 유지입장을 계속 언급했지만 이미 타오른 여론의 불길을 사그라뜨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여권 핵심의 문제제기로 이미 대세는 기울어
5일 문희상 의원도 "대통령의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며 상황에 따라 이 부총리 거취에 대한 청와대 입장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6일 같은당 장영달 의원까지 나서서 이 부총리의 결단을 촉구했다.
급기야 7일에는 이 부총리측의 결백을 증명해왔던 2003년 광주땅 매매계약서에 대한 진위논란까지 제기되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계약서상 중개인으로 서명날인한 김모씨(71)가 "계약에 입회한 적도 중개인 자격으로 서명날인한 적도 없다"고 부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물론 이같은 문제들은 모두 이 부총리측 땅을 산 상대방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으로, 이 부총리로서는 정말로 매도자 입장에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던 사안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수십억대 땅을 팔면서 매수자에 관해, 매각과정에 관여한 대리인(법무사)이 이 부총리측과 상의를 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의문은 남는다.
일각에서는 이 부총리측이 전문부동산 `꾼`들에게 걸려 시세보다 훨씬 싼값에 넘기면서, 상대방이 이용한 명의대여자 등과 거래를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어쨌든 이 부총리는 이같은 의문점들을 뒤로한 채 7일 퇴임의사를 밝혔다. 그는 성명에서 "어떠한 불법이나 편법도 없었다"며 "결과적으로 국민들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부총리는 "이 문제(투기의혹)는 개인 부덕의 소치인 만큼 길게 말하지 않겠으며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