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면 손편지도 훼손될텐데”…이태원1번출구 자원봉사자의 걱정
by조민정 기자
2022.11.06 17:43:16
이태원참사 국가애도기간 지나도 추모 걸음 계속
민간 자원봉사자 10여명, 추모공간 관리
닷새째 봉사 중인 박모씨 “새벽마다 음식물 정리”
“천막 칠 수도 없고…비오면 꽃·편지 어쩌나”
[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내일 비가 온다고 해서 걱정이에요…포스트잇이랑 종이가 훼손되면 안될 텐데.”
닷새째 이태원역 1번출구 추모공간을 지키고 있는 시민 자원봉사자 박길선(65)씨는 6일에도 새벽 일찍부터 이곳을 찾았다. 밤새 추모공간이 훼손되진 않았는지, 비둘기들이 음식물을 먹으러 와 더럽히진 않았는지 걱정이 들어 잠자리에서 뒤척였다고 했다. 추위를 막을 귀마개와 털모자를 쓰고 추모공간 주변을 맴돌던 그는 추모객들이 오자 한 명씩 응대하기 시작했다.
| 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가운데 이태원 참사 추모공간에서 한 시민이 추모하고 있다.(사진=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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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운영하다 잠시 일을 쉬고 있는 박씨는 이태원 참사를 처음 뉴스로 접하고 지난 2일 이태원역 1번출구 추모공간을 찾았다. 추모하기 위해 이태원역을 찾은 그는 우연히 시민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는 “이렇게라도 (추모공간에) 와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맘이 편하더라”며 자원봉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박씨와 함께 자원봉사를 하는 시민은 현재 10여명이다. 자율적으로 추모공간을 찾아 추모객을 안내하고 물건을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태원추모 시민자율봉사위원회’ 이름으로 각자 간단히 만든 명찰을 목에 걸고 활동한다. 이날 추모공간엔 한 여성이 손수 만든 ‘자원봉사’라는 명찰을 메고 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일을 돕기도 했다.
박씨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전 밤새 흐트러진 국화와 추모품을 정리하는 일을 주로 한다. 추모객들이 곳곳에 두고 간 소주와 맥주, 까놓은 귤, 음식물은 야외에 오래 방치될 경우 정리를 해야 한다. 특히 음식물은 비둘기가 날아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 새벽마다 꼭 정리가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날도 ‘자원봉사자’ 명찰을 목에 걸고 이태원역에 서성이던 그는 앞으로 날씨가 걱정이라고 한숨 쉬었다. 이태원역 추모공간은 1번출구에서 사고가 발생한 골목길까지 약 20m 이어져 있는데, 오는 7일 늦은 오후부턴 비가 예보돼 있어 추모객들이 두고 간 국화와 손편지 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박씨는 “천막을 치기엔 추모공간 차려진 범위가 너무 넓어서 역부족일 것 같다”며 “시민들 도움을 받아서 정리를 하거나 뭔가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이태원역 추모공간은 전날로 국가애도기간이 끝난 후에도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며 발 디딜 틈 없었다. 1번출구 앞에서 목탁을 두드리는 스님의 염불 소리에 맞춰 조용히 묵념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고가 발생한 골목길을 보며 “와 진짜 너무 좁다”고 한탄하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렸다. 북받치는 슬픔에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는 이도 있었다.
서울광장 합동분향소를 비롯해 분향소 대부분은 5일 운영을 종료했다. 다만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는 12일까지 연장 운영하고,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추모 공간은 계속 운영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