亞역내 금융안정책 `가속도`..`CMI 이어 ABMI`

by김기성 기자
2009.03.17 13:46:55

공동기금 CMI합의 이어 ABMI 이행준비 본격화
정부 외환시장 다중안전망 구축 전략과 상통
G-20, ASEAN+3 이용한 국제 위상 제고 활발

[이데일리 김기성기자]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의 상당수 국가들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라는 뼈저른 아픔을 겪었다. 아세안(ASEAN)과 한·중·일 3개국의 공동 협정문 서명이 임박한 1200억달러 규모의 역내 공동기금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와 본격적인 이행 준비에 돌입한 `아시아 채권시장 이니셔티브(ABMI)`는 이같은 악몽의 재현을 막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장치다. 역내 국가들이 힘을 모아 아시아 금융위기 재발 위험에 대해 사전 대응하기 위한 다자화 틀인 셈이다.

지난 2000년과 2003년 각각 제안된 CMI와 ABMI가 그동안 지지부진한 협의 과정을 거치다가 미국발 금융위기 발생 이후 급진전되고 있는 것도 아시아 역내 국가들이 경험한 외환위기 공포감과 무관치 않다.

ABMI는 역내 채권시장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 역내 각국의 외환보유고 투자가 지금과 같은 미국 국채 중심에서 벗어나 상당부분 이 지역의 기업과 금융권 채권에서 순환되도록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통해 중장기적인 금융시장 안정을 도모하고 사회간접자본(SOC)등 인프라 투자를 통해 경제활성화를 모색하겠다는 것. 특히 핵심과제인 역내 신용보증투자기구(CGIM) 설립이 가시화되고 있어 ABMI 이행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마다 심하게 출렁이는 외환시장의 안정을 위한 완충장치가 하나 더 추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미 체결한 한-미, 한-일, 한-중과 현재 체결을 추진중인 한-EU(유럽연합)등 양자간 통화스왑, CMI 다자화기금 등을 활용해 외화유동성 공급 확대를 꾀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과 맥을 같이 한다.

또 ABMI는 우리 정부가 지난 2003년 제안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아시아 주도국으로 역내 및 국제 위상을 높이기 위해 추진중인 `신아시아 구상`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통령은 최근 오세아니아와 인도네시아를 순방한 자리에서 CMI 기금 확대 합의 이행을 비롯해 ABMI 논의 가속화, 아시아개발은행(ADB) 자본금 확대 등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 ABMI 핵심 과제 신용보증투자기구(CGIM) 설립 가시화

ABMI 이행의 최대 과제인 역내 신용보증투자기구(CGIM·Credit Guarantee Investment Mechanism)가 ADB 산하에 설립되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ASEAN+3`는 내달 7~8일 열리는 재무차관회의에서 CGIM 출연금 규모와 배분액 등에 대해 원칙적인 합의를 도출한 뒤 5월 3~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될 재무장관회의에서 CGIM 설립 계획을 공식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ABMI는 이 지역의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역내 금융권 및 기업들의 채권에 투자, 금융시장 안정과 경제활성화에 기여하는 틀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고안됐다. 미국 국채에 쏠려 있는 외환보유고 투자처를 역내 금융권 및 기업들로 확대하기 위해 역내 채권시장 발전의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라는 것.

이같은 채권시장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신용보증기구 설립을 통해 역내 기업과 금융회사가 발행하는 채권에 대해 신용보강을 위한 보증이 이뤄지는 게 핵심 관건이다. 각국 중앙은행이 신용등급 `AA(더블에이)` 이상인 기업을 투자대상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만족시킬 만한 역내 기업은 드문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글로벌 초우량기업인 삼성전자(005930)와 포스코(005490) 등이 국가 신용등급인 `A` 보다 높은 `A+`의 신용등급을 받고 있으나 `AA`와는 거리가 멀다.   

ADB 주도의 CGIM 설립을 통해 역내 기업 및 금융회사가 발행하는 채권의 신용등급이 `AA`이상으로 보강될 경우 역내 국가는 물론 그외 지역의 국부펀드 및 연기금으로부터의 투자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외환시장 `다중안전망` 구축 효과

ABMI 이행은 국내 채권시장에 상당 규모의 달러가 유입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는 점에서 외환시장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 의존도 및 개방도가 높아 글로벌 위기 때 마다 극심한 홍역을 치루고 있는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안정을 위한 보호막이 하나 더 추가되는 셈이다.

정부는 대외 변수에 좌우되고 있는 외환시장에 섣불리 개입하기 보다는 달러 유동성공급 확대를 통한 외환시장 안정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현재 300억달러 규모인 한국과 미국간 통화스왑 한도 확대 및 기간 재연장을 미국측에 요청한 상태고, EU와도 통화스왑 체결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각각 300억달러 규모인 한-중과 한-일 통화스왑도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역내 공동기금인 CMI 다자화기금 설립에 발벗고 나서고 있고 은행과 공기업의 해외채권 발행을 독려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이다. 국채를 사는 외국인들에게는 각종 세금을 면제해주고, 재외동포의 국내투자와 국내은행의 외화예금도 늘어나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있는 것도 달러 유입을 노린 조치다.

정부 관계자는 "ABMI 이행은 이미 체결된 한-미, 한-중, 한-일 그리고 현재 체결을 추진중인 한-EU 등 양자간 통화스왑과 CMI 다자화기금에 이어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다중안전망을 구축하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AMBI 이행을 위해선 넘어야할 산도 적지 않다. 우선 CMI 합의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역내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일본이 출연금 배분 등을 놓고 대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 CGIM이 기업 분석 등의 능력을 갖춘 국제 기구로 출범시켜야 하는 만큼 ABMI의 구현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 정부, G-20·ASEAN+3 통한 위상 제고

정부는 G-20(선진 및 신흥 20개국)와 `ASEAN+3`를 통한 국제 위상 제고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때로는 다자화 정책의 주도자로서, 때로는 중개자로서 역할을 십분 발휘해 위기극복 이후 국제사회의 권력 이동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전략이다.

영국 브라질과 함께 G-20 3대 의장국인 정부는 4월 런던 정상회의에 앞서 가진 재무장관회의에서 부실채권 처리원칙과 각국의 과감한 재정정책을 제안해 호평을 받았다. 최근 우리나라가 금융안정포럼(FSF)과 은행감독에 관한 바젤위원회(BCBS) 가입에 성공한 것도 이같은 일련의 노력에 대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ASEAN+3` 틀안에서는 역내 주도권을 놓고 첨예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과 중국의 중재자 역할을 꾀하고 있다. 일종의 캐스팅보트를 쥐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

또 한편으로는 아시아 주도국으로서 우리의 입지를 확대하기 위해 외교의 초점을 아시아권으로 돌리는 `신아시아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아시아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아시아 국가들의 이익을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가 조성,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높이겠다는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