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안근모 기자
2002.11.14 12:00:00
[edaily 안근모기자] 우리나라도 디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한 정책적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한국은행이 내놓아 주목된다.
한은은 14일 `세계경제의 디플레이션 가능성과 영향`이란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여전히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더 높다"고 전제하면서도 "예상외의 경기침체나 부동산 가격 급락 등이 발생할 경우 가계 및 기업의 높은 부채수준과 맞물려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은은 따라서 민간부채가 과도해지지 않도록 억제하고, 재정과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한편, 물가상승률이 제로에 가까워져 디플레이션이 예상되는 경우 보다 신속하고 과감한 통화정책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30년대 대공황형 디플레 가능성 = 최근의 디플레이션 우려는 자산가격 급락과 실질 채무부담 증가에 의한 금융취약성을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 지난 1930년대 대공황기의 부채 디플레와 유사하다고 한은은 밝혔다.
한은은 특히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가운데 집값이 크게 오른 미국과 영국이 디플레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가계부채는 지난 87년 GDP의 64.3%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82.5%로 높아졌고, 미국의 경우는 지난 85년 56.2%에서 지난 6월에는 80.2%로 솟았다.
명목 주택가격은 지난 85년이후 미국이 2.1배, 영국은 3배나 올랐다.
◇디플레, 우리도 예외 아니다 = 가계부채와 부동산 가격을 놓고 볼 때 우리나라는 속도는 물론, 절대수준면에서도 걱정스런 상태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85년 GDP의 33.2%에 불과했던 가계부채는 지난해 73.4%로 급증했으며, 올 들어서는 증가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주택가격(국민은행 조사)도 최근 1년새 평균 17.5% 상승했으며, 아파트 가격은 24.4% 급등했다.
반면, 충격 대응능력면에서는 매우 취약한 상태. 한은에 따르면 미국 가계의 금융자산은 가처분 소득의 4.7배에 달하지만, 우리나라는 절반수준인 2.4배에 불과하다.
한은 보고서는 아울러 세계 주요 업종의 과잉설비 문제와 중국의 저가품 공급 등 세계적인 디플레이션 원인도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일본을 비롯, 미국, 독일 등 주요국이 디플레이션에 빠질 경우 세계적인 디플레 기조에서 우리만이 예외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한은은 강조했다. 선진국 침체에 따른 디플레이션은 수입수요를 감소시키며, 이로인한 수출가격 인하경쟁은 추가적인 디플레 압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국제 자본이동의 확대와 원자재 및 제품에 대한 글로벌 아웃소싱 추세도 디플레이션 세계화를 부추기는 요인이기도 하다. 디플레이션은 무역뿐 아니라 외국인 투자로도 전염되는데, 이는 국내 소비와 투자심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한은은 밝혔다.
◇신속·과감한 정책대응 긴요 = 디플레이션은 `물가하락->실질금리 상승 및 담보가치 하락->기업·금융기관 도산 증가->소비·투자위축->디플레이션 심화`의 악순환을 불러 일으킨다.
이에따라 경제학계에서는 `디플레가 훨씬 더 위험하므로 어떤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이를 피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으로 형성돼 있다고 한은은 소개했다. 과도한 완화정책에 따른 인플레는 나중에 바로잡을 수 있지만, 디플레이션은 정책대응으로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한은은 따라서 금리와 물가상승률이 제로에 가까워질 경우 보다 신속하고 큰 폭으로 통화정책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경기 및 물가에 대한 기본전망(baseline forecasts)보다는 추가적인 디플레 위험(downside risks)에 더 주목하라는 것. 재정정책도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서는 물가안정목표를 지나치게 낮게 설정해서는 안되며, 정부의 재정건전성 유지도 긴요하다고 한은은 제시했다. 가계 및 기업의 과도한 부채를 억제하는 것과 함께 금융기관의 건전성 확보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요즘처럼 하나로 묶인 각국 경제가 동반 디플레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경우 해외동향을 보다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고 한은은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