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했더니 동물 학대범에 돌려주더라…허탈”[댕냥구조대]

by박지애 기자
2025.03.01 09:01:35

동물학대범에 관대한 우리나라 현행법
학대범 ‘재발 방지 계획서’ 제출하면 돌려받는 구조
英, 반복 둔기 폭행한 학대자에 ‘동물 사육 영구 발탁’
‘솜방망이 처벌’도 지속 지적되는 부분
순한 개 11마리 상습 입양해 죽인 학대범도 ‘집행유예

[이데일리 박지애 기자] “우리나라 현행법상 동물 학대자가 어떤 학대를 저질렀든 재발 방지 계획서를 제출하면 다시 학대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돌아간 동물은 다시 학대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동물자유연대가 학대 사건에 대응하며 가장 답답한 부분입니다.”

동물보호단체 활동가의 전언입니다.

작년 4월 안씨에게 입양가 살해된 강아지 진티즈의 마지막 모습. 안씨는 순한 개와 고양이 11마리를 상습적으로 살해한 부분이 인정됐음에도 법원은 안씨가 반성한다는 기미가 보인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사진=동물권행동 카라)
◇동물 학대범에 관대한 현행법 체계

외국에서는 학대 수준에 따라 동물 사육이 금지되기도 하지만 국내 상황은 다릅니다. 국내에서 끔찍한 동물 학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지만, 학대범들은 솜방망이 처벌은 물론 여전히 반려동물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학대당한 동물의 보호 조치도 약합니다. 현행 동물보호법에 따라 학대받은 동물을 학대자로부터 긴급 격리 조치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격리 기간은 한계가 있고 학대자가 재발 방지 계획서를 제출하면 다시 학대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돌아간 동물은 다시 학대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대상은 반려동물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작년 부경동물원과 아이니테마파크에서는 좁고 밀폐된 실내 전시실에 야생 동물을 가두고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먹이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개원 때부터 문제 제기한 끝에 결국 폐쇄되었지만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동물원 대표가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아 동물들이 문 닫은 동물원 안에서 굶주린 채 방치된 것입니다. 더 나은 환경의 동물원이 동물들을 인수하며 일단락은 됐지만 법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동물권 카라가 법원 앞에서 동물학대범의 소유권을 박탈하라는 내용이 담긴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사진=동물권행동 카라)
◇선진국은 학대범에 ‘동물 사육 자격 영구 박탈’

영국에서 반려견을 둔기로 폭행하고 유기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몇 달에 걸쳐 폭행을 당한 피학대견은 온몸에 회복 불가능한 외상을 입었고, 수의사 소견에 따라 결국 안락사되었습니다.

법원은 피고인의 동물 사육 자격을 영구 박탈했습니다. 피고인은 10년간, 이 박탈 처분에 이의조차 제기할 수 없습니다.

영국 동물복지법은 동물학대범이 △동물을 소유하거나 △사육에 참여하거나 △관련 영업을 할 자격 중 하나 이상을 박탈할 수 있으며 이를 어길 시 해당 동물을 압수할 수 있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영국 법원은 지난 1월에도 한 동물학대범에게 15년간 동물 사육 자격 박탈 선고를 내린 바 있습니다.

미국 역시 대부분의 주(2024년 기준 40개 주)에서 동물학대범의 동물 소유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하는 주법을 두고 있습니다. 통상 5~15년 정도 소유권을 박탈하며, 메인주, 미시간주, 워싱턴주에서는 소유권의 영구 박탈이 가능합니다. 워싱턴주, 캘리포니아주, 애리조나주 등에서는 영국과 같이 소유권뿐 아니라 사육권도 박탈할 수 있습니다.

◇순한 개 11마리 상습 입양해 죽인 학대범…‘집행유예’

그럼 우리나라 현행법 상 동물을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학대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등 가혹한 행위를 반복한 동물 학대범들에 대한 처벌은 어떨까요?

작년 4월 순한 개와 고양이 총 11마리를 임시보호 명목으로 데려오거나 입양해 상습적으로 죽인 남성이 구속됐습니다. 결국 2개월만에 내려진 법원의 판결은 ‘집행유예’였습니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형사1단독 이상엽 판사는 경찰에서도 증거를 제시하여 혐의 모두 유죄가 인정되나 반성하는 태도가 있고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을 종합해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의 보호관찰과 480시간 사회봉사를 선고한 것입니다.

안 씨는 주로 인터넷 반려동물 입양 플랫폼을 통해 동물을 입양한 뒤 강아지 5마리, 고양이 6마리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입양 과정에서 그는 전화번호를 바꿔가며 새로운 동물을 연이어 입양했으며 동물의 안부를 묻는 원 보호자에게는 동물을 잃어버렸다고 둘러댄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카라 윤성모 활동가는 “반려동물 입양 학대를 막기 위해 철저한 심사 과정이 필요하나 그마저도 한계가 있다.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며 “학대 현장에 남겨진 동물의 소유권 포기를 위한 지자체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안씨의 선고가 내려진 고양지원 전경.(사진=동물권행동 카라)
◇잔혹한 동물 살해에도 ‘집행유예’ 수두룩

안타깝게도 해당 사건 외에도 우리 사회에는 아직 동물학대에 대해 제대로 된 양형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들끓는 여론에 비해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판결이 많습니다.

16마리의 고양이를 무단 포획해 산 채로 세탁기에 돌리거나 바닥에 내리쳐 살해하고 그 과정이나 사체를 촬영해 SNS에 공개 게시한 일명 ‘폐양어장 고양이 학대 사건’에 대해 검찰은 징역 4년, 벌금 300만 원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구형보다 가벼운 징역 1년 4개월에 벌금 200만 원을 선고한 바 있습니다.

길고양이를 무차별하게 잔혹하게 살해하고 관련 영상, 사진 등을 공유한 ‘고어 전문방’ 사건은 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두 사건은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며 청와대 국민청원에 각각 20만 명이 넘는 동의가 이뤄졌음에도 여론에 비해 비교적 가벼운 형을 받게 됐었습니다.

◇선진국 사례 참고하며 사회 관심으로 양형기준 높혀가야

물론 판결을 여론에 맞춰 내릴 수는 없습니다. 동물학대에 대한 적절한 양형기준 마련이 필요한 이유인데요, 아직 우리 사회는 동물학대에 대해 양형기준이 없는 실정입니다.

양형기준이란 법관이 합리적인 양형을 도출하는데 참고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을 말합니다. 불합리한 양형 편차를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데요, 해외에서는 이미 동물학대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양형기준을 마련한 곳들이 있어 우리나라도 이를 참고해 나아갈 방향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 영국은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한 양형기준이 마련돼 있고 우리나라 양형기준 마련에 상당히 영향을 주는 국가로 참고할 법한데, 우선 영국은 동물학대 범죄 유형별 양형기준 존재하며 동물복지 위반 행위와 동물에 대한 위해행위 구분하고 있다”며 이를 참고해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서 “동물학대는 피해자가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다는 취약성과 성적 학대 등 구체적 학대 유형을 정하고, 아동 앞에서의 행위나 반복 행위 등에 가중요소를 정하는 등 구체적인 법적 체계부터 마련해야 한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개와 고양이 11마리를 임시보호하거나 입양해 상습적으로 살해한 안씨의 모습(사진=동물권행동 카라)
특히 영국은 폭행과 살해를 넘어 사육의무 태만 역시 범법 행위로 간주하고 있는데요, 처벌 수위의 강화와 더불어 다른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차원에서 동물학대범은 동물 사육을 일정기간 또는 영구적으로 차단하는 처분이 선고되는 부분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그럼에도 양형기준은 일순간에 바로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니기에 사회적으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단계를 밟아가야 합니다.

울산지방법원 유정우 판사는 “사회적으로 적정한 양형을 통한 처벌필요성이 인정된 것으로, 발생빈도가 높고, 국민적 관심과 이해관계에 밀접한 범죄들로 볼 수 있다”며 “동물학대범죄에 대하여 양형기준이 마련된다는 것은 이러한 기준을 충족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현재 한계로 언급되는 실제 사례가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는 해외의 실제 사례들을 참고하고, 예상 사례들을 최대한 많이 작성해 이를 분석한 후 양형인자를 추출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제언하고 있습니다. 이어 “이는 법학자, 관련 시민단체나 활동 변호사들의 상당한 노력과 작업을 담보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부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