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만큼 갚겠다, 학교 떠나게 될 수도” 협박일까…대법 답변은

by성주원 기자
2024.06.12 10:23:55

동료에 보복성 문자 전송…보복협박 혐의
1심 무죄→2심 유죄 "공포심 일으킬만해"
대법 파기환송 "추상적…해악 알기 어려워"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분쟁 중인 동료 교수에게 ‘학교를 떠나게 되실 수도 있다. 제게 한 만큼 갚아드리겠다’ 등의 보복성 문자 메시지를 보냈더라도 구체적인 해악(해가 되는 나쁜 일을 의미)의 내용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대법원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보복협박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A씨는 2008년 충남의 한 대학교수 B씨의 소개로 강사를 거쳐 교수가 됐다. 이후 A씨는 B씨 등 동료교수들에게 부동산 사업가 C씨를 소개했고, C씨의 부동산 분양 투자 제안으로 교수들은 2억4705만원을 C씨에 건넸다.

그러나 해당 사업이 진행되지 않자 B씨 등은 C씨를 고소했다. B씨 등은 “A씨도 C씨가 편취한 돈의 상당부분을 취득했다”며 엄벌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C씨와 함께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는 대학교에서 직위 해제됐다.

재판과정에서 B씨 등의 탄원서를 확인하게 된 A씨는 “정든 학교를 떠나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제게 한 만큼 갚아드리겠습니다. 연구실로 찾아뵙겠습니다.” 등의 내용이 포함된 문자메시지를 B씨에게 보냈다. B씨는 이에 회신하지 않았고, A씨는 실제 예고한 일시에 B씨의 연구실을 방문하지 않았다.

검찰은 A씨가 탄원서 제출에 앙심을 품고 보복할 목적으로 B씨에 문자를 보냈다고 판단해 기소했다.



1심은 A씨의 보복협박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를 했고, 고지한 해악은 일반적으로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내용이라고 봤다.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은 A씨의 행위가 협박죄에서의 협박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문자메시지 내용만으로는 피고인이 구체적으로 피해자 B씨의 어떤 법익에 어떤 해악을 가하겠다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며 “내용의 추상성에 피고인이 피해자의 대학 내 지위 등에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에게 불이익한 조치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피고인의 뜻이 암시됐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문자메시지는 피고인 주장처럼 취중 상태에서 상당 기간 친분을 맺어왔던 피해자에게 자신의 감정들을 일시적·충동적으로 토로한 것으로 이해될 여지가 많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A씨의 사기 혐의 사건은 지난 3월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의 상고기각 결정으로 무죄가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