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亞·EU 등 광폭 외교…“中중심 세계 질서 재편 추구”

by김윤지 기자
2023.04.02 18:47:44

러 방문 마친 習, 베이징서 릴레이 회담
아시아 비롯 중동·남미 등 전방위 외교
FT "中경제력, 지정학적 영향력으로 확대"

[베이징=이데일리 김윤지 특파원]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스페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프랑스, 브라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회담 혹은 전화통화를 진행했거나 만남을 앞둔 국가들이다. 이 같은 시 주석의 광폭 외교 행보를 두고 중국 중심 세계 질서 재편을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이란 분석이 나온다.

2일 일본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 등에 따르면 3년 만에 중국을 방문한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이날 오전 친강 중국 외교부장(장관) 겸 국무위원과 중일 외교정상 회담을 진행하고, 오후에는 리창 총리와 중국 외교 최고위직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만났다.

이날 친 부장은 하야시 외무상에 “미국의 술책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면서 미국의 반도체 대중 수출 통제에 일본이 동참하지 말 것을 촉구했으며, 두 사람은 한중일 3개국 간 대화 재개를 상의했다.

양측은 중국 내 스파이 활동 혐의로 붙잡힌 일본 제약업체 직원,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영유권 분쟁,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등 민감한 사안을 다루면서도 지난해 11월 중·일 정상회담에서 확인한 안정적인 관계 구축을 위한 교류와 소통 지속에 공감했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왼쪽)과 친강 중국 외교부장(장관).(사진=NHK)
그런가 하면 시 주석은 지난달 31일 중국의 보아오포럼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와 연이어 각각 회동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을 의식한 듯 이들 국가에 각각 독자적인 대중 정책을 촉구하고, 디커플링(탈동조화)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중국은 싱가포르와 ‘전방위 협력 동반자 관계’였으나 이번 만남을 계기로 ‘전방위적인 고품질의 전향적 동반자 관계’로 8년 만에 양국 관계가 격상됐다.

시 주석은 지난달 13일 폐막한 ‘양회’(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집권 3기 지도부의 공식 출범을 알린 이후 적극적인 외교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지난달 20일 러시아를 4년 만에 국빈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해 반미(反美) 연대를 과시하는가 하면, 지난해 12월 시 주석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이후 경제적·정치적으로 가까워진 양국 관계를 반영하듯 지난달 28일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전화통화를 했다.

오는 6일에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시 주석과 3자 회동을 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안건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시 주석이 최근 ‘중재자’를 자처하는 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이 주요 사안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오는 11~14일에는 건강 이상으로 일정을 연기했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다. 그는 13~14일께 베이징에서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계획하고 있다. 방중 기간 양국은 교역 강화 및 교육·과학기술 교류안 등 20여건의 협정을 체결할 예정이다.

과거 중국의 외교 정책은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정신에서 출발했으나, 시 주석은 이런 방어적인 대외 정책에서 벗어나 공격적인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 친 외교부장은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중국 외교는 충분히 관대하고 호의적이나 흉악한 늑대가 온다면 나라를 지켜야 한다”며 덕으로 덕을 갚고 강직함으로 원한을 갚는다는 뜻의 공자의 ‘이직보원(以直報怨), 이덕보덕(以德報德)’이란 문구를 소개하기도 했다. 즉, 중국이 공격을 받거나 도발을 당하면 피하지 않고 대응하겠다는 의미다.

이 같은 시 주석의 외교 움직임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가 이제 쇠퇴하고 중국 중심으로 이를 재편할 수 있다는 중국의 판단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막강한 경제력을 외교적·지정학적 영향력으로 확대하고, 세계 정치의 중심으로 자신의 위치를 되찾고자 한다는 것이다. 또한 빠르게 진화한 중국의 군사력으로 인해 국제 안보에서 미국에 대한 대안을 제공하기 시작했다고 FT는 전했다.

여기서 나아가 중국은 지난달 중동의 오랜 앙숙 사우디와 이란의 외교 관계 재개를 중재했으며, 지난 2월에는 대화로 해결을 촉구하는 ‘우크라이나 위기의 정치적 해결에 관한 중국의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우신보 푸단대 미국연구센터장은 “과거 중국은 몇 가지 원칙을 선언하고 입장을 알리되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으나 달라지고 있다”고 짚었다.

중국의 적극적인 외교 정책은 반도체 대중 수출 통제 등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는 미국에 대한 대응이기도 했다. 예일대 로스쿨 폴차이 차이나센터의 모리츠 루돌프 연구원은 “현대화가 서구화와 같을 필요가 없다”는 중국의 주장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내세우는 ‘독재(중국·러시아) 대 민주주의(미국 등 서방)’에 대한 반론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같은 중국의 주장은 많은 개발도상국의 지지를 얻을 것”이라면서 “특히 중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해 물질적인 이익을 얻는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