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적자 심화' 美 채권 누가 사겠나…구조적 인플레 왔다"
by김정남 기자
2022.04.08 10:28:29
본지, 피터 시프 회장 투자 웨비나 참석
연준 강력 긴축에도 "인플레 못막아"
"실질적 인플레, 80년보다 더 최악"
"미 채권 수요 낮다…금리 추가 급등"
"스태그 왔던 70년대 투자전략 봐야"
"증시 하락…성장주 매력 떨어질듯"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장기간 이어질) 인플레이션은 이미 지난해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연방준비제도(Fed)는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니 걱정 말라고 했던 걸 잘 기억하세요.”
월가의 거물 투자자로 꼽히는 피터 시프 유로퍼시픽캐피탈 회장은 7일 오후(현지시간) 이데일리 등이 참석한 투자자 웨비나에서 “지난해 하반기 인플레이션이 내려가기는커녕 계속 올라가면서 사람들이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했고, 결국 맨 마지막에 연준이 인정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시프 회장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해 명성을 얻은 인사다.
| 피터 시프 유로퍼시픽캐피털 회장이 7일(현지시간) 연 투자자 웨비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정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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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 회장은 웨비나 내내 연준 통화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연준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이다. 그는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참석자들이 추후 대차대조표 축소 규모를 월 950억달러로 하는데 대체로 동의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의사록이 바로 전날 나왔음에도 “너무 늦었다”며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건 코로나19 사태도 아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아니다”며 “그건 연준”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버린 건 지난해 12월 당시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다.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7.0%(지난해 12월 기준 전년 동월 대비)에 이르러서야 인플레이션에 대한 시각을 바꾼 것이다.
연준에 따르면 4월 6일 기준 보유 자산은 8조9376억달러(약 1경1000조원)다. 연준이 양적긴축(QT)를 가속화한다고 해도 1조달러 남짓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월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팬데믹 직전 4조달러 수준까지 다시 줄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다.
시프 회장은 “2020년대 구조적인 인플레이션 사이클은 곧 시작했다”고 단언했다. 그는 특히 지난해 인플레이션을 두고 “실질적으로는 사상 최고였다”고 분석했다. 연간 CPI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해는 1980년(13.5%)이다. 다만 그해 말 연준은 기준금리를 사상 최고치인 20%까지 인상했다. 시프 회장은 “그 당시 단기채권 수익률은 600bp(1bp=0.01%포인트) 이상이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금리는 제로 수준(0.00~0.25%)이었다. 지난해 연간 CPI는 4.7%였고, 지난해 말에는 7%까지 급등했다. 실질적인 단기채권 수익률은 마이너스(-)였다는 뜻이다. 시프 회장이 현재 실질금리와 CPI 산정 방식 보정 등을 감안해 자체 추정한 지난해 물가 상승률은 15%에 달했다.
그는 이를 의식한듯 “우리는 인플레이션 10년 사이클을 시작하고 있다”며 “이번에는 1980년대처럼 바로 물가를 잡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이 초강력 긴축을 폈던 1980년대에는 1983년부터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완화하기 시작했다.
시프 회장은 또 미국 국채금리는 앞으로 추가 폭등할 것으로 점쳤다. 글로벌 장기시장금리 벤치마크인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올해 초만 해도 1.5%대에서 거래됐으나, 지금은 불과 석달여 만에 2.6%대로 올라섰다. 2020년 8월 당시에는 0.5%대에 불과했다. 최근 국채가격이 뚝뚝 떨어졌다는 의미다. 그는 “조만간 3%대, 4%대를 찍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월가 거물 투자자로 꼽히는 피터 시프 유로퍼시픽캐피털 회장이 본지 김정남 뉴욕특파원과 신년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정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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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 회장이 가장 주목한 건 미국 국채를 사줄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 선 게 미국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는 ‘쌍둥이 적자(재정적자+무역적자)’다. 이를테면 지난해 미국의 무역적자는 1조907억달러로 사상 처음으로 1조달러를 돌파했다. 팬데믹 이후 이는 더 심화하는 기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2023 회계연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장기적인 재정적자 축소 방침을 천명했을 정도다.
그는 “쌍둥이 적자는 3조5000억달러 규모이고 연준이 (양적긴축을 통해 내놓을)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은 또다른 1조달러 규모”라며 “이제 그 채권 구매자를 찾아야 하는데, 도대체 누가 살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미국 채권 수요가 떨어지면 가격은 추가 하락하고 금리는 뛸 수 있다.
그는 “중국도, 러시아도 사지 않을 것”이라며 “구매자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금리가 치솟아도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동안 미국 채권의 가치를 떠받쳤던 게 외국인들의 매수였는데, 이제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게 시프 회장의 예상이다. 게다가 연준마저 국채 등을 사들이지 않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그는 “이는 곧 달러화에 역풍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이는 증시에는 어떻게 작용할까. 시프 회장은 “(지금까지 비교적 선방했던) 증시 투자자들 역시 이를 알아차리기 시작할 것”이라며 “1987년 증시 하락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그러면서 “(그동안 고평가된) 성장주들은 예전과 같은 투자 매력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프 회장은 또 1970년대 오일쇼크로 인해 스태그플레이션이 왔을 당시 투자 전략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그때 주식 수익률은 매우 나빴다”며 “그 대신 상품, 에너지, 금, 은 등에 투자하면 돈을 벌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 증시에 대해서는 비교적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시프 회장은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의 주식들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가장 큰 피해를 봤다”며 “이는 미국으로 돈이 흐르게 해 미국 증시에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근래 뉴욕 증시가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버텨 왔던 게 유럽 등 다른 지역의 주식 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그는 그러나 “이건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러시아 문제가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대신 연준과 바이든 행정부가 일으키는 인플레이션 문제가 더 부각될 것이라는 게 시프 회장의 판단이다.
△1963년 미국 코네티컷주 출생 △UC버클리대 졸업 △시어슨 리먼 브러더스 주식 브로커 △유로퍼시픽캐피털 설립(1996년) △유로퍼시픽뱅크 설립(2005년) △저서 ‘크래시 프루프(Crash Proof)’ 통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베스트셀러 작가 선정(200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