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최태원 회장 돈으로 횡령금 변제한 것 아닌가?"

by김현아 기자
2013.06.24 13:11:51

김준홍 "부회장 돈으로 횡령금 변제"..재판부 "회장 돈 아닌가" 의심
재판부, 김준홍 진술 번복 과정 의심.. 재판 시나리오?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회삿돈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최태원 SK(003600)그룹 형제의 재판이 막바지인 가운데, 항소심 재판부가 계열사 펀드 자금 중 450억 원이 횡령된 이후 변제되는 과정에 최태원 회장이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제기해 재판 결과가 주목된다.

그간 최 회장 변호인들은 최 회장의 펀드 선지급 지시는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와의 친분에 따른 배려 차원이었다면서, 선지급 된 돈 중 일부가 김준홍 전 베넥스 대표 계좌에서 김원홍 씨(최 회장 형제 선물옵션투자관리인, 전 SK해운고문)에게 불법 송금되는 데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서울지방법원 형사4부(부장판사 문용선) 심리로 24일 열린 공판에서 문용선 재판장은 김원홍 씨에게 넘겨진 450억 원이 되갚아지는 과정과 함께, 전 베넥스 직원 황영선 씨가 작성한 다이어리의 ‘Benex Risk’라고 적힌 메모 등을 들이대며 증인 출석한 김준홍 전 베넥스 대표를 압박했다.

김준홍 전 대표는 2008년 10월부터 12월까지 김원홍 씨에게 송금된 450억 원을 갚기 위해 2009년 미래저축은행 등에서 여러 지인의 명의로 대출을 일으킨 뒤 김원홍 씨에게 갚았다고 증언했다. 또 2008년 말에는 현대스위스저축은행 등에서 최태원 회장 명의로 900억 원의 대출을 일으켜 회장 형제의 선물옵션투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김 전 대표는 “김원홍에게 보내진 190억 원의 출처는 다른 사람 명의로 대출받았지만 실 차주는 최재원 수석부회장”이라고 밝혔다. 당시 최 부회장에게 부인 명의로 대출을 요구했지만 안 돼 다른 사람 명의로 대출을 일으켜 기존 대출금을 막고 이후 더 큰 대출을 일으키는 방법을 썼다고 증언했다.



문용선 재판장은 “결국 최태원 피고인이 최재원 피고인을 통해 증인에게 자금을 조달토록 한 것”이라면서 “(450억 원 횡령금의) 변제 역시 최태원 회장 돈으로 한 것 아닌가”라고 질의했다.

김 전 대표는 “횡령금 변제는 회장의 보증 아래 만든 부회장의 돈으로 했다”고 답했지만, 문 재판장은 ‘Benex Risk’문건을 언급하며 “형사 문제 등 당시 우려를 적었다는 점에서 지난번 SK재무팀 소속 박기상 씨가 작성한 ‘예상 시나리오 검토’ 문건과 비슷하다”고 말해 최 회장 관여에 대한 의심을 버리지 않았다.

재판부는 김준홍 전 대표가 본인 단독 범행(검찰 초기 진술)→최태원 회장 펀드 선지급 관여(진술 번복) →본인 단독 범행(검찰 후기 진술, 1심)→최 회장 펀드 선지급 관여(항소심) 등으로 진술을 바꾼 것도 못미더워 했다.

문용선 재판장은 “검찰에서 한차례 진술을 바꿔 최 회장 펀드 선지급 관여사실을 인정하다가 왜 다시 본인 단독 범행이라고 바꿨느냐”면서 “불법 송금에 관여하지 않았다면 기소도 안 되고 유죄도 안 받을 텐데”라고 물으면서, 피고인들의 잦은 진술 번복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냈다.

공판은 오후 2시 재개돼 김준홍 전 대표에 대한 검찰 측과 변호인 측 심문이 이어진다. 검찰과 변호인들은 항소심 공판 과정에서 발언 기회가 별로 없었던 만큼, 오후 재판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