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변보는 친구 훔쳐본 중학생…‘학폭결정’ 취소 소송서 패소

by이재은 기자
2024.02.14 09:48:41

학폭 심의위 “성폭력, 봉사활동 등 결정”
원고 “숨기 장난이라 생각, 처분은 위법”
法 “행위 자체가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중학교 화장실 용변 칸에서 소변을 보던 친구를 훔쳐본 학생에 대해 법원이 학교폭력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사진=이데일리DB)
인천지법 행정1-2부(부장판사 소병진)는 중학생 A군이 인천시 모 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상대로 제기한 학교폭력 대책심의위원회 조치 결정 통보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고 14일 밝혔다.

재판부는 봉사활동과 특별교육 등 통보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청구를 기각하고 소송 비용도 모두 A군 측이 부담하라고 명령했다.

A군은 중학교 1학년이던 지난해 4월 학교 쉬는 시간에 친구 B군과 화장실에서 물을 뿌리며 장난을 쳤다. 이후 B군이 소변을 보기 위해 용변 칸에 들어가자 A군은 옆 칸에 들어가 변기를 밟고 위에서 A군을 훔쳐봤다.

B군은 소변을 보다 기분이 상해 “선을 넘지 마라”며 A군을 향해 불쾌하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한 달여 뒤 학교폭력 대책심의위원회가 열렸고 B군은 의견서를 통해 “당시 A군이 내 성기를 봤다”며 “사과하라고 했더니 건성건성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A군이 장난을 친 것 같지만 피해가 좀 컸다”며 “다시는 그런 짓을 못 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학교폭력 대책심의위원회는 변기를 밟고 올라가 친구의 소변 보는 모습을 본 행위는 학교폭력 중 하나인 성폭력이라며 지난해 5월 A군에게 봉사활동 4시간과 특별교육 4시간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B군과 접촉하지 말고 협박이나 보복행위도 하지 말라”는 처분을 내리기로 의견을 모았다.

A군은 관할 교육지원청으로부터 이 같은 처분을 통보받자 위법하다며 지난해 6월 법정대리인인 부모를 통해 행정 소송을 냈다.

그는 소송 과정에서 “B군이 숨기 장난을 한다고 생각하고 옆 칸에 들어가 내려다봤다”며 “소변을 보는 것 같아 그냥 (변기에서) 내려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의가 아닌 과실로 친구의 소변 누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성폭력은 성립할 수가 없다”며 “성폭력에 의한 학교폭력으로 인정한 처분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군이 B군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했다며 성폭력에 따른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군은 숨기 장난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둘의 나이와 지능을 고려하면 당시 오인할 만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용변 칸에서 B군이 소변이나 대변을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A군이 예측할 수 없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또 “B군은 상당한 정신적 충격과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진술했다”며 “옆 칸의 변기를 밟고 올라가 친구의 용변 칸을 들여다본 행위 자체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