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정영효 기자
2008.04.17 12:20:34
금융의 증권화는 경제성 인정받는다
만기불일치 전략, 단기시장서 퇴출
CDO발행구조 간소화 우량화된다
[이데일리 정영효기자] 1년 넘게 전세계 금융시장을 휩쓸고 있는 국제 신용위기는 `금융의 증권화(securitization)`의 명암이 극적으로 발현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자산유동화증권(ABS) 등을 통해 당장 현금화하기 어려운 자산마저 유동화할 수 있게 되면서 금융시장은 만개했다. 경제의 혈액인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금융시장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커졌다.
유동화 수단을 개발하려는 금융시장의 노력은 계속됐다. 대표적인 것이 자산담보부증권(CDO)의 출현이다. CDO란 모기지 업체들로부터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을 사들인 투자은행이 이들 채권을 합치고 재분류해 만들어 낸 파생상품이다.
사들인 채권을 이리저리 섞어 유통시장에 재매각하는 CDO는 투자은행들이 차입자의 디폴트(채부불이행) 위험을 시장에 떠넘기는 구조이기 때문에 각광을 받았으나 결국 신용위기의 뇌관이 됐다.
언젠가는 끝날 신용위기 이후 금융의 증권화는 어떤 모습을 띄게 될까. 금융의 증권화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CDO 시장은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JP모간의 `신용위기는 시장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How will the crisis change markets)` 보고서는 신용위기 이후 살아남을 것과 소멸할 것을 분류하고 있다.
신용위기 이후 증권화의 양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금융의 증권화는 여전히 경제성을 인정받는다. ▲금리가 낮은 단기 자금시장에서 유동성을 조달해 금리가 높은 장기 여신을 제공함으로써 예대마진을 챙기는 만기 불일치(maturity mismatch) 전략은 단기 시장에서의 조달 비용 상승으로 먹혀들지 않게 된다. ▲CDO 발행구조는 좀 더 간소화, 우량화된다. 2차, 3차에 걸쳐 재생산하는 구조가 사라지고 CDO 발행의 기초가 되는 자산도 ABS가 아닌 회사채와 은행채 등 우량자산으로 한정된다. ▲CDO의 주요 매수세력이 헤지펀드에서 보험사와 연기금 등으로 재편된다.
신용위기가 금융의 증권화의 근간을 파괴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의 증권화는 채권과 외환, 은행예금 등 기존 시장에 비해 수익-위험 구조와 현금흐름의 다변화를 창출하려는 기관투자가들의 니즈(필요)를 보다 적절하게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권화, 혹은 구조화채권을 부외처리(off-balance sheet)함으로써 관리 비용과 위험성을 줄이던 기존 관행은 감독당국의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사라지게 된다.
구조화투자기관(SIV)을 설립해 CDO 등 위험도가 높은 파생상품을 부외거래해오던 월가 투자은행들도 이들 기관의 거래내역을 대차대조표 상에 편입하고 있다.
단기 자금 시장에서 조달 비용이 상승함에 따라 만기 불일치 전략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만기 불일치 전략은 저금리 시대의 부산물이었다. 저금리의 영향으로 단기 자금 시장에서의 조달 비용이 저렴해지면서 지난 수 년간 레버리지와 단기 차입은 물과 공기와 같은 자유재(free goods) 취급을 받아왔다.
그러나 신용위기는 금융시장의 이같은 인식이 잘못된 것임을 확인시켜줬다. 감독 당국의 규제가 강화되고 업계의 관행이 변하면서 단기 자금 시장에서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레버리지와 단기 차입 목적으로 이뤄지는 증권화는 ABS와 CDO를 불문하고 회복이 어렵게 될 가능성이 높다.
CDO에 비해 구조가 단순한 증권화인 ABS 시장도 살아남을 것이다. 다만 ABS 시장이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은 자동차론과 신용카드 대출, 학자금 대출 등 `모기지 대출`이라는 딱지가 붙지 않은 자산을 기반으로 발행되는 ABS로 제한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은 당분간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서브프라임이란 용어 자체가 이미 신용위기와 동일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CDO 시장도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을 것이다. 신용위기 이후 스프레드(금리격차)가 크게 확대되면서 CDO도 경제성을 일부 회복했다. CDO를 매입함으로써 얻는 수익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대로 레버리지와 단기 차입 목적의 CDO는 예외로 한다.
`신용위기를 발생시킨 위험 자산`이라는 오명을 떨치기 위해 CDO의 발행 구조는 간소화, 우량화된다. ABS와 이미 발행된 CDO를 기반으로 2차, 3차 재생산되는 구조에서 벗어나 회사채와 은행채 등 우량 자산을 기초로 발행된다.
그러나 CDO에 붙은 `신용위기의 주범`이란 낙인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CDO 시장의 규모는 상당 기간 동안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CDO의 주 고객층도 보다 보험사와 연기금 등 보수적인 투자자들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전까지 CDO의 주 매수세력은 헤지펀드였다. 헤지펀드는 위험도가 높은 메자닌과 에쿼티 등급 CDO의 주 고객이었다.
그러나 주요 자금 공급원이었던 단기 자금시장에서의 유동성 조달이 어려워지게 되면서 헤지펀드들은 더이상 CDO의 주 고객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헤지펀드가 떠난 자리는 보험사와 연기금 등이 메우게 된다. CDO 가운데 가장 안전한 대신 수익률이 낮은 보험사와 연기금 등 보수적인 투자자들은 메자닌 CDO의 주 고객층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단기 자금시장 경색으로 수익성에 압박을 받는 것은 보험사와 연기금도 마찬가지다. 이들 보수적인 투자자들이 위험성이 다소 높지만 수익률도 좋은 메자닌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다.
증권화 시장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웃는 것은 패니매와 프레디맥과 같은 정부 보증 기관(GSE)이다. 패니매와 프레디맥 역시 신용위기의 유탄을 피해가진 못했으나 그 규모는 기존 발행 주체들에 비해 크지 않은 편이다. 이들 기관들은 단기 차입 의존도가 낮을 뿐만 아니라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상품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성장을 막아온 것은 美의회의 견제였다. 투자은행과 모기지 업체들이 정보 보증 기관들의 레버리지 비율이 지나치게 높고, 정부가 시장을 지배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 결과였다.
그러나 신용위기로 기존 증권화 시장의 큰손들이었던 투자은행과 모기지 업체의 장악력이 위축됨에 따라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성장을 막을 장애물은 사실상 사라졌다.
미국 주택시장을 구해야 한다는 정치적 필요성이 더해지면서 정부 보증 기관들의 시장 지배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실제 미국 정부는 최근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모기지 구매 한도를 상향 조정했다.
일부에서는 신용위기 이후 CDO 시장의 투명성이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CDO의 신용도와 관련한 정보를 투자자들이 보다 이해하기 쉽게 제공해 기업실사 과정을 용이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CDO의 생존에 있어서 투명성 강화는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신용위기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CDO 시장은 이미 투자자들이 해당 상품의 신용도를 판단하기에 충분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었다.
CDO 투자가 `묻지마 투자`가 된 것은 정보 자체가 차단됐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신용도와 관련한 정보를 꼼꼼히 검토하는 투자자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신용위기 이후 관련 제도는 CDO를 발행하는 업체들이 신용도를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공하는 방향으로 정비될 것이다. 그러나 정보가 늘어난다고 해서 투자자들이 예전과는 달리 이러한 정보를 신중하게 살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