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 김순택사장① "내년 PDP 2백만대..없어 못판다"
by김수헌 기자
2004.11.18 12:15:00
PDP 올 87만대 세계1위..값 내려 물량부족 사태
OLED 누적손실 다 털고도 이익..TFT-LCD 모듈로만 올해 1500만개
비전 세우고 착착 실천..임직원도 경영진 신뢰
[edaily 김수헌 안승찬기자] 지난 99년 12월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김순택 사장이 삼성SDI(006400) 대표로 내정됐을 때, 삼성SDI는 여전히 `삼성전관`이라는 옛 사명(社名)이 더 친숙한 브라운관 전문회사였다.
당시 삼성전기 주가가 8만~9만원을 오르락내리락할 때, 삼성SDI는 그 절반 수준을 맴돌고 있었다.
삼성전자보다 주가가 더 높고, 그룹 내 최고 우량회사로 인정받았던 90년대 초반의 `영광`은 찾아볼 수 없었고, 시대에 뒤떨어져 앞으로 하강곡선을 그릴 수 밖에 없는 굴뚝기업 정도로 치부됐다. 이런 시장전망과 분석을 반영한 그대로 반영한 것이 바로 주가였다.
◇신규사업? 이젠 `육성사업`이라 불러주오
기자가 잠시 전자업계를 담당했던 2000년 여름, 삼성SDI를 찾았을 때 홍보팀은 이름도 생소한 `PDP(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와 `OLED(자체발광디스플레이장치)`, `리튬이온, 리튬폴리머 전지`사업에서 돈을 벌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만해도 업계에서는 "브라운관으로 먹고 살아도 될 회사가 무리하는 것 아니냐"며 "삼성SDI가 제2의 삼성자동차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이랬던 삼성SDI에 대해 지난해 초부터 이데일리는 `삼성SDI, 비브라운관 매출이 브라운관 능가` `PDP 2차전지 OLED 모두 손익분기 돌파` `기존사업 `탄탄`, 신규사업 `훌쩍` 등의 제목을 단 기사를 계속해서 쓸 수밖에 없었다. 실제 회사 변화가 그랬던 것이다.
신규사업은 연결기준으로도 올 1분기에 브라운관 매출을 넘어버렸다. 국내 본사 기준으로는 이미 지난해 실적기준으로 비브라운관 사업이 브라운관을 능가했다. 삼성SDI는 `신규사업`이라는 명칭을 올해부터는 `육성사업`으로 바꿨다. 그만큼 사업에 탄력이 붙었다는 뜻이다.
◇OLED 누적손실까지 다 깠다..이젠 효자노릇 준비
올해 삼성SDI는 87만대의 PDP를 팔아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지킬 전망이다. 내년 PDP 판매목표는 올해의 2.3배인 200만대 이상으로 잡았다. PDP값이 떨어지면서 수요가 크게 늘어나, 라인을 풀가동해도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모바일용 TFT-LCD 모듈은 어떤가. 올해 무려 1500만개 판매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패널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모듈사업만으로도 그렇다.
새로 개발한 초슬림형 `빅슬림` 브라운관은 관련 기술자들이 밤샘을 해가면 시장 본격화에 대비하고 있다. 기존 브라운관도 올해 7000만대 판매가 예상되고 있다
시장 주력품인 수동형 OLED 역시 세계시장 점유율 47%로 월등한 1위. 지금까지 누적손실까지 다 만회하고 이익을 내고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이 회사가 얼마나 무서운 속도로 달려왔는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같은 변화를 선두에서 이끌어 온 삼성SDI 김순택 사장을 만났다. 김 사장은 이데일리와 조선일보, 디지털조선일보가 공동주최하는 `경제유니버시아드`에서 대학생들이 뽑은 `한국 미래를 이끌어 갈 대표 전문경영인 톱10`에 뽑혔다.
김사장은 "회사를 경영하면서 직원들에게 꿈과 비전을 가지게 한 점이 가장 보람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패기꺾인 회사에 꿈과 희망 불어넣고 싶었다"
-삼성SDI만한 규모 회사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대대적 변신에 성공한 것은 세계 기업 사상 유례가 없는 것 같은데요.
▲삼성SDI를 맡은지 5년이 됐습니다. 처음 삼성SDI 대표로 내정됐던 지난 99년 말 회사의 연결매출은 4조7000억~4조8000억원 수준이었어요. 올해는 10조원이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세전이익은 1조원 이상이 될 전망입니다.
회사의 신규사업들은 인수합병 등을 통해 이룬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육성해 온 사업들이죠. 처음 CEO에 취임했을 때 `삼성SDI=브라운관 회사`로 인식돼있었고, 모바일폰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 사업 일부가 전부였어요.
그러나 지금은 PDP, OLED 등 새로운 디스플레이와 2차전지가 대표적인 사업군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PDP의 경우 올해 87만대를 팔아 월등한 세계1위 자리를 지킬 겁니다. 수동형 OLED 역시 47% 점유율로 세계 1위죠. 2차전지는 3~4위 수준에 머물러 있어요. 이 모든 사업들이 M&A 등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자체적, 자생적 사업으로 출발한 것입니다.
-처음 회사를 맡았을 때도 브라운관 사업은 나름대로 잘 되고 있었는데,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변화가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99년 말 처음 회사에 왔을 때, 패기가 많이 꺾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시 벤처, e비지니스가 각광받으면서 여기에 대비되는 용어로 `굴뚝산업`이라는 말이 퍼져 있었어요. 요즘은 굴뚝산업이라는 이야기를 거의 안 하지만, 당시는 굴뚝산업은 성장성이 전혀 없는 사업으로 평가됐죠.
99년 초에 중대형 노트북PC나 모니터용 TFT-LCD는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것으로 결정이 됐었습니다. 부임 직후인 99년 12월 그룹 차원에서 자원을 집중하기 위해 스몰 모바일용 TFT-LCD도 전적으로 삼성전자로 몰아주는 것으로 결정됐어요. 삼성SDI는 `TFT`의 `T`자도 개입할 수 없었죠.
당시 삼성SDI로서는 TFT-LCD는 할 수 없었고, 일부 하고 있던 2차전지는 생소하고, PDP는 연구개발 단계였어요. OLED는 전혀 모르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임직원들이 의기소침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게 그대로 반영된 것이 주가였어요. 제가 93년 삼성전관 시절에 관리본부장(전무)을 1년 정도 했었는데, 90년대 초반만해도 삼성전관이 최고 우량회사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IMF를 거치고 굴뚝산업으로 치부되는 등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삼성전기보다 주가수준이 형편없이 떨어져버렸으니 임직원들 심정은 말이 아니었죠.
◇"브라운관 죽지않아..TFT-LCD없이도 디스플레이전문기업 된다" 확신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 같은데, 당시 사업전략의 큰 그림을 어떻게 그렸습니까.
▲저는 브라운관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모바일 디스플레이는 성장산업이며, 앞으로 삼성SDI는 TFT-LCD없이도 디스플레이 전문 메이커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브라운관과 STN-LCD는 안정된 캐시카우로서 기반산업으로 살려나가고 신규 디스플레이사업을 진행하는, 즉 안정성과 성장성을 같이 갖춘 회사로 키워나가기로 한 거죠..
그래서 당시만해도 개발단계에 머물러 있던 PDP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3개월만에 과감하게 PDP개발팀을 사업팀으로 바꿔버렸습니다. 바로 공장을 지었어요. 그래도 경쟁업체에 비해서는 늦은 편이었습니다. 또 2차전지도 큰 매출은 없었지만 조금씩 생산안정에 주력했어요. 그러면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차기 디스플레이로 OLED를 착안해 냈죠. 그러나 아무래도 실력이 좀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결론은 일본 NEC와 합작이었는데, 합작은 어떻게 해서 이뤄진 겁니까.
▲그때 일본 NEC를 보니까 OLED의 좋은 기술과 특허를 가지고 있었지만 회사 사정이 그리 좋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NEC 사장에게 4장이나 되는 편지를 썼습니다. 삼성SDI와 PM(수동형) OLED를 같이 할 경우 서로의 공유할 수 있는 장점들을 들면서 구구절절이 편지를 썼어요. 앞으로 AM(능동형) OLED까지 같이 개발하면서 향후 디스플레이의 영광을 되찾자고 했습니다.
NEC가 감동했던 것 같습니다. 합작결정이 나면서 우리로서는 모자라던 OLED 기술력을 보완할 수 있게 됐어요. 지금 삼성SDI의 OLED 증착기술은 세계 최고수준입니다. 수율이 98%에 달해요. 경쟁사들은 60~70%밖에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NEC측 합작지분을 우리가 모두 인수했습니다. 앞으로 AM OLED로 가야 되는데, AM방식은 반도체 공정과 비슷해 투자비가 많이 들어갑니다. NEC로서는 여기에 부담을 느낀 것 같아요. 우리는 NEC와 일단 사업정리하면서 NEC가 보유한 특허를 모두 가져왔습니다.
◇`빅슬림` 스타트, 올 브라운관 7000만개.."누가 사양산업이라 하나"
-사업 밑그림을 그려놓고 이를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는 과정이 실감이 납니다.
▲저는 전반적인 전략을 2000년 1분기에 거의 다 정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조직을 설득을 시켰죠. 기존 기반사업을 캐시카우로 유지시키는 한편 PDP나 2차전지, OLED를 신규사업으로 키워나가겠다는 내용을 현장 직반장까지 전 직원에게 교육시켰습니다.
어쨌든 운이 좋았던건지 PDP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가고 OLED도 올해로서 지금까지의 누적적자를 모두 만회했습니다. PDP와 2차전지가 아직 돈을 많이 벌고 있지는 못합니다. LCD가 하도 값을 많이 내리니까 PDP에서 적자는 아니지만 큰 돈은 못 벌고 있습니다.
저는 회사 경영진은 돈 못벌면 역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원들에게도 투자를 했으니 돈을 버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면서 일부러 큰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아무튼 애초에 세웠던 신규사업 계획들이 착착 구체화 돼 이제는 `육성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키우고 있고, 브라운관 사업에서도 참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지난 99년도에 `큐코스트`(품질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가 매출의 9.6%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2.4%까지 무려 7%포인트 이상 내렸죠. 지금 매출이 10조원 정도 되니까 7000억원이 절감된 겁니다.
브라운관에서는 잘 아시다시피 `빅슬림`을 개발했습니다. 이건 브라운관의 꿈 아니었습니까. TV 세트업체들에 두께를 줄이는 빅슬림을 개발하겠다고 찾아가니 "한번 해 봐라, 하지만 원가가 많이 들면 안되다"고 하더군요.
제가 마케팅 전문가는 아니지만 1억원을 주고 해외 유명 디자인회사를 불렀습니다. 빅슬림 브라운관을 이용해서 PDP TV나 LCD TV 비슷한 디자인을 해 보라고 아이디어를 줬어요. 이렇게해서 작품을 만들어 내놓으니까 전세계적으로 반응이 정말 좋았습니다.
브라운관은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팝니다. 올해는 7000만대 넘게 팔 겁니다. 이런 브라운관 사업을 누가 사양산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TFT-LCD도 패널은 우리가 못하지만, 스몰 모바일용 패널을 일본 히다치나 대만업체 등에서 사다가 모듈로 제작해서 삼성전자 휴대폰에도 납품하고 있어요. 모듈기술은 우리가 탁월합니다.
사양사업으로 여겨졌던 브라운관같은 기존사업에서 꾸준한 이익을 내주고, PDP나 OLED, 2차전지 같은 신규사업, LCD 모듈사업 등을 통해 회사가 성장해 가니까 임직원들이 꿈과 희망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비전을 제시하고, 또 이것이 착착 실현돼가니까 임직원들도 경영진을 신뢰하는 것 같습니다.
◇"비전 제시하고 착착 실현, 꿈 희망 패기 신뢰 되찾았다"
-비서실에 오래 계셨죠? 비서실에만 17년을 있었는데, 언뜻 생각하기에 찬바람이 쌩쌩 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IR같은데서 보면 비서실에 오래 근무했던 분 같지않게 솔직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지는데요. 정감도 느껴지고.
▲경리과장 2년차 때 비서실 감사팀에 배치됐습니다. 당시 감사팀은 참 막강했죠. 부정에 대해서는 추호도 용납을 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일했으니까 계열사들이 보기에 얼마나 못됐게 비쳤겠습니까. 그때는 몸무게가 59kg였어요. 지금 70kg으로 불어나 살도 찌고 했지만, 당시는 정말 찬바람이 났어요.
비서실은 때로는 그룹 전체의 전략때문에 계열사들이 보기에 모질게 할 수밖에 없을 때도 있어요. 큰 살림을 하다보면 과감하게 밀어붙일 때도 있고 어쩔 수 없이 모질게 해야될 때가 있죠.
그러나 지금 저의 위치는 큰 회사조직의 정점에서 조직원들을 이끌어나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과거에는 스탭으로서 각 회사 경영진이 잘못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조언해 주는 역할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단장이죠. 사단 병력을 한마음 한뜻으로 이끌어가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