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쓸어 모으는 `금맥` 스팩 상장.."닷컴 버블 정점 연상케 해"
by최정희 기자
2021.01.24 18:04:07
올 들어 IPO 공모자금의 70% 이상, 스팩이 흡수
1000만달러도 안 넣고 수익은 8배 이상
"스팩 상장, 일반 IPO보다 기업 가치 부풀리기 쉬워"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작년에 이어 올 들어서도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상장 광풍이 풀고 있다. 스팩은 블라인드로 돈을 모은 다음 설립 2년 내에 스타트업과 합병, 증권거래소에 기업 공개(IPO)를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스팩은 올해 미국 공모 자금의 70% 이상을 끌어모았다. 작년 수소차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니콜라도 이런 방식으로 상장했다.
스타트업을 합병, 상장시키는 스팩 설립자들은 앉아서 떼돈을 벌고 있고 스타트업 역시 일반 IPO보다 상장 절차가 덜 까다로워 스팩 상장을 선호하는 편이다. 반면 일반 투자자들은 거품이 빠지면서 투자 손실을 볼 우려도 커지고 있다. 스팩 합병을 통한 상장이 일반 IPO보다 기업 가치를 부풀리기 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선 닷컴 버블 정점에나 있었을 법 투자법이라고 혹평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딜 로직(Dealogic) 데이터를 활용, 이달 들어 21일까지 기업 공개를 통해 모집된 자금의 70% 이상이 스팩으로 흘러들어갔다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67개 스팩이 거의 200억달러의 자금을 흡수했다. 작년 스팩 IPO 자금이 820억달러로 사상 최고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작년보다 스팩 투자로의 자금 모집 속도가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일에만 6개 스팩이 상장했고 22일에는 8개가 상장했다.
데이터 제공업체 스팩 리서치에 따르면 287개 스팩이 투자자들의 인기를 끌 만한 전기자동차 등 기술주를 찾아 합병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이 갖고 있는 자금은 약 900억달러에 이른다. WSJ는 “몇 달 안에 최대 수 천 억 달러에 이르는 딜이 완료될 것”이라며 “스팩은 설립 후 2년 내 기업 합병을 완료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스팩이 스타트업을 찾아 합병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단축되고 있다. 2018년엔 평균 17개월이 걸렸다면 작년엔 5개월로 단축됐다. 일반적인 IPO에 걸리는 시간이 1년에서 1년반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상당히 짧은 기간안에 기업 상장이 이뤄지는 식이다. 원격 의료 업체 힘스 앤 허즈(Hims & Hers)는 스팩과 합병 계약을 맺는 데 고작 4개월 밖에는 걸리지 않았다. 또 스팩 합병을 통해 상장할 경우 일반 IPO보다 유튜브 등을 통한 기업 홍보 등이 수월해 기업 가치가 부풀러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스팩 설립자들은 이런 분위기에 돈방석에 앉고 있다. 2019년 스팩 합병을 통해 상장한 민간 우주개발업체 버진 갤럭틱(Virgin Galactic)은 작년 9월까지 23만8000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기업 가치는 80억달러 이상을 기록했다. 스팩인사이더에 따르면 스팩 창업자들은 평균 1000만달러 미만의 돈을 투자해 평균 8배 이상의 수익을 올린다.
그러나 모두가 잘 되진 않는다. 작년 스팩 상장한 수소차 업체 니콜라는 주가가 80달러까지 올랐으나 최근 20달러 수준으로 급락했다. 언덕 위에서 자동차를 굴렸다는 의혹에 공매도가 급증하면서 주가에 거품이 빠진 것이다.
금융 시장 분석업체 파이낸셜인사이트(Financial Insyghts)의 피터 애트워트 대표는 “닷컴 버블 정점에나 나올 법한 미친 투자법을 보는 듯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