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정필 기자
2011.12.09 15:14:07
[이데일리 이정필 칼럼니스트] 아이폰 개발이 한창이던 2006년 스티브 잡스는 이동통신사의 전형적인 고자세에 짜증이 나있었다. 이통사의 휴대폰 제조사 ‘노예 다루기’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아예 이통사를 인수하던가 아니면 애플만의 Wi-Fi 무선망을 미국 전역에 뿌리는 계획까지 생각했다.
대담무쌍한 아이디어였지만 아이폰 독점을 간절히 소망했던 싱귤러(현 AT&T)의 백기 항복을 받아내면서 계획은 사그러들었다. 잡스는 라이센스가 필요없는 Wi-Fi 무선망 설치 계획에 맘을 빼았겼지만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했기에 싱귤러와 계약에 만족했고 아이폰의 세상 바꾸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미국 이동통신 업계는 이스라엘 벤처 웨이비언을 인수한 앨버리언에 주목하고 있다. 이스라엘 다국적 기업인 앨버리언은 WiMAX를 비롯 다양한 브로드밴드 장비 업체로, 보유한 초고성능 Wi-Fi Access Point 기술이 무선통신 업계를 바꿀수있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알려지고 있다.
Wi-Fi는 오래전부터 이통사의 셀 타워를 대체할 수 있을 기술로 기대를 모았다. 90년대 중반 등장한 기술은 발전을 거듭해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든 가정의 무선랜(라우터) 표준이지만 집 한채를 커버하는 전파 거리와 실내 사용 제한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웨이비언은 아파트 단지를 커버할 수 있을 정도의 초강력 Wi-Fi 전송 기술과 옥외 사용이 가능한 전파 매니지먼트 기술에 성공했다. 특히 옥외용 Wi-Fi 기술은 경쟁사들이 아직까지 내놓지 못한 것으로 무선망의 혁명을 가져올 만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Wi-Fi 망이 실외에서 사용될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전파 방해다. 웨이비언의 기술은 연결된 무선기기(스마트폰/타블렛/노트북)와 신호체계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면서 전파방해 요인을 미리 제거한다. 무선기기와 통신하는 Wi-Fi 신호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다.
웨이비언의 초고성능 Wi-Fi 기술이 5년 앞서 나왔다면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모든 현금을 동원해서 전국적인 ‘애플 Wi-Fi망’ 보급을 시도했을 것이다. 이통사의 간담이 서늘해지는 시나리오다. 더 중요한 사실은 웨이비언의 기술로 인해 잡스의 꿈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800억달러 이상의 유동성을 확보한 애플 같은 회사들이 Wi-Fi 망사업에 뛰어들겠다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 휴대폰 가입자의 30% 정도만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현재의 보급률을 볼때 2-3년내 피처폰의 사망 선고가 내려질 전망이다. 스마트폰은 사용자의 휴대폰 통신 환경에 더해 생활패턴까지 급속하게 바꾸고 있다. 이통사가 제공하는 데이터 통신(3G/4G) 때문이다.
하지만 스마트 폰은 Wi-Fi망에 연결될 때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스카이프 같은 앱을 활용해 이통사와 상관없이 맘대로 무료 화상 전화가 가능하며 또 PC와 같은 초고속 인터넷 스피드를 똑같이 즐길 수 있다. 4G(LTE) 서비스가 제아무리 빠르다 해도 Wi-Fi 스피드를 대적하기엔 무리다.
미국에선 ‘Hot Spot’이란 이름으로 이통사들이 스마트폰 가입자들에게 무료 Wi-Fi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래봤자 스타벅스 커피숍과 같은 제한된 공간의 Wi-Fi 서비스다. 당장 웨이비언의 기술을 이용하게 되면 ‘Hot Spot’이 훨씬 큰 ‘Hot Zone’으로 확대될 수 있다. 웨이비언 기술을 응용한 예시에 불과하다.
이통사의 셀타워 설치 경비보다 훨씬 저럼한 가격으로 도시 전체를 Wi-Fi 서비스로 통합할 수 있고 이를 위해 정부로부터 이통사 라이센스를 받을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의 성장 관건은 무선 데이터 통신의 스피드와 접속지역 확대에 달려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사용자들이 이통사와 2년 약정 노예계약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웨이비언의 새로운 기술이 이러한 관계를 파괴할 순 없어도 소비자에게 무선통신 및 기기 선택의 폭을 넓혀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내에서 제4 이동통신사 사업자 선정을 놓고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중이다. 자본 확충은 물론 대정부 로비 또한 엄청날 것으로 판단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