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부동산세제 "원칙이 없다"

by좌동욱 기자
2008.09.22 15:03:03

조령모개(朝令暮改)식 세제개편..사흘만에 정책 180도 바꿔


[이데일리 좌동욱기자] 이명박(MB) 정부의 조세정책이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다. 
 
전례없는 감세 정책을 수립하면서 스스로 세운 원칙을 뒤집는가 하면 사흘만에 정책방향을 180도 번복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세금을 거두거나 깎는 데 있어서 신중해야 할 정부가 도리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책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21일 1주택자 양도세 비과세를 받기 위한 조건으로 거주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수정했다. 거주요건 강화 적용기준을 부동산 `취득 시점`에서 최초 `계약 시점`으로, 적용시점을 `시행령 개정 후`에서 `2009년 7월1일 이후`로 바꾸는 내용이 골자다. 
 
이렇게 제도를 바꾸면 거주요건 강화 요건이 적용되는 시점이 최소 1년 이상 미뤄진다. 일반적으로 주택을 구입할 때 첫 계약을 하고 잔금을 치르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 변경은 불과 사흘전 재정부 입장과 180도 달라진 것이다.
 
지난 19일 이데일리를 포함한 언론매체들이 `양도세 비과세 거주요건 강화를 2년 가량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보도했을 때도 재정부는 "당초 방침에 변함이 없다"고 보도를 전면 부인했다. 불과 사흘 후면 드러날 거짓말을 공식 문건으로 작성해 기자들에게 돌린 것. 
 
이데일리가 지난 9일 양도세 비과세 거주요건과 관련해 수정·보완 가능성을 첫 보도했을 때도 재정부는 "사실이 아니다"며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물론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이 우려될 경우 정책을 수정, 보완할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일이 수시로 발생한다면 정부와 집권여당이 발표하는 정책을 신뢰하기 힘들어진다. 
 

 
실제 새 정부 출범 이후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 방침이 번복된 사례는 한두번이 아니다. 부동산 세제 정책 기조는 3개월 전과 비교해 크게 바뀌었다.  
     
지난 6월 당시 이희수 재정부 세제실장(현재 국제통화기금 이사 내정)은 모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현재 부동산시장은 상당 부분 불안요인이 잠재해있기 때문에 종합부동산세 과세기준 상향이나 1세대 2주택자 양도세율 인하와 같은 급격한 제도 변화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불과 3개월 후 발표된 세제개편안에서 재정부는 양도세율을 2010년까지 3%포인트 인하하고, 1주택자 양도세 부과기준을 6억에서 9억으로 상향 조정하는 등 양도세제를 크게 손봤다.
 
종부세도 과표 기준을 6억에서 9억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포함한 큰 폭의 개편안이 23일 발표될 예정이다. 특히 종부세 과표기준 상향(6억→9억)은 윤영선 재정부 세제실장이 최근 기자들과의 사전 브리핑을 통해 "절대 아니다"라며 거듭 부인했던 사안이다.  
 
올해 세제개편을 총괄했던 세제실장은 9월 초 교체됐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기 전 세제실장을 교체하는 인사는 극히 이례적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이희수 전 세제실장이 이명박 정부의 `감세 코드`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인사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인사가 있을 경우 후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불보듯 뻔 하다.
 
논란이 있는 세제를 고치면서 정부가 세운 원칙도 변경되고 있다. "부동산 세제 개편은 부동산시장 안정을 전제로 추진하겠다"(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는 것이 정부가 밝힌 제 1원칙. 하지만 `현재 부동산 가격이 안정됐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강 장관을 포함한 정부 당국자들은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이명박 정부가 공약했던 거래세(부동산 취·등록세) 1%포인트 인하 방침은 기약없이 미뤄지고 있다. 현재 부동산 세제 개편 정책은 당초 정부가 밝혔던 `보유세(재산세· 종부세) 강화 - 거래세 인하`라는 큰 원칙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MB 정부의 핵심공약 중 하나인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방침은 당정협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적용시점을 올해 사업연도에서 내년으로 1년 미뤘다. 지난 6월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을 믿고 사업계획을 세우던 기업들은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비과세·감면 혜택을 `제로베이스`에서 대폭 정비하겠다던 야심찬 계획은 올해 일몰이 도래하는 34개 감면제도 중 11건을 폐지하고 6건을 축소하는 데 그쳤다. 당초 정부는 올해 일몰이 도래하는 감면제도 뿐 아니라 ▲시행 후 2년 이하인 감면제도 35개 ▲감면규모가 연간 1000억원 이상인 감면제도 24개 등을 집중 검토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이런 원칙은 결국 `빈말`이 되어버렸다.
 
일반적으로 조세 정책은 한번 바꾸면 제도를 다시 바꾸지 않는 한 세수 효과가 영구히 지속된다. 깎아주거나 면제해준 세금을 다시 거두는 일은 극히 어렵다. 이 때문에 세제 정책은 큰 원칙 하에 신중하고 세심하게 추진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며칠 사이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조령모개(朝令暮改)식 조세 정책을 보면 과연 정부를 믿고 세금을 내야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