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 이기영 1심 무기징역에…유족 "사형 생각했는데"(종합)

by한광범 기자
2023.05.19 10:41:03

살인 후 계좌이체·신용카드로 수천만원 빼내 탕진 반복
카톡 이용해 피해자 행세하며 피해자 숨진 사실 숨겨와
法 "인면수심 범죄지만 사형 선고할 특별 상황 아냐"

[고양=한광범 기자]금품을 노리고 여성 동거인과 택시기사를 연이어 살해한 이기영(32)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택시기사와 동거 여성을 살해한 이기영이 지난 1월 6일 오후 경기도 파주 공릉천변에서 검찰 관계자들에게 시신을 매장했다고 진술한 부근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합의1부(재판장 최종원)는 이날 강도살인과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기영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30년간의 위치추적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살해행위와 그 이후 범행까지도 철저히 계획한 다음에 스스럼없이 살해계획에 나아간 후 일말의 양심의 가책 없이 피해자의 돈으로 경제적 이익을 실현했다”며 “인면수심의 잔혹한 범행 태도를 보였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검찰이 요청한 사형에 대해선 “무기징역만으로는 형벌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거나 아무런 반성 태도나 개전의 정을 결코 기대할 수 없어서 극히 예외적 형벌인 사형을 선고해야 하는 것이 명백히 정당화될 수 있는 객관적 사정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고인의 인면수심 잔혹한 범행에 대해 재판부 역시 잔혹한 범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만일 법이 허용했다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형을 선고해서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하는 방안을 고려했을 만큼 대단히 잔혹하고 중한 범죄“라고 질타했다.

피해 택시기사 유족은 선고 직후 “연쇄 살인범이라 당연히 사형 선고를 생각하고 왔다. (무기징역형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검찰이 항소해야 한다”며 울먹였다.이기영은 금품을 노리고 50대 여성 동거인과 60대 택시기사를 잇따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지난해 12월 택시기사 살해혐의로 긴급체포 후 구속돼 수사를 받던 도중 실종된 여성 동거인도 살해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이기영은 A씨와 2018년 2월부터 불륜관계를 맺어오다 2021년 6월 출소 후 불륜사실이 아내에게 발각되자 같은 해 12월부터 A씨 집에서 함께 살았다. 그는 지난해 2월 아내와 이혼해 A씨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

별다른 수입이나 재산이 없었던 이기영은 재력가 행세를 하며 가족에게 빌린 돈 수천만원을 생활비 명목으로 주며 A씨가 직장을 그만두게 했다. 그는 지난해 3월엔 A씨에게 3억 5000만원을 주겠다는 각서를 써주기도 했다.

이기영은 지난해 6월쯤 더 이상 가족 등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 없게 되자 A씨에게 대출을 받게하는 등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살았다. A씨는 카드론 등으로 3400만원을 대출 받아 생활비로 사용했고 이기영은 이중 800만원을 이체받아 용돈으로 사용했다.



이기영이 지난 1월 4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 이후 이기영은 채무, 체납 세금, 신용카드 연체 등 약 600만원을 갚지 못해 경제적 압박을 심하게 받게 됐고, A씨와의 사이도 더욱 나빠졌다. 이기영은 A씨를 마구 폭행해 두 사람 사이는 악화됐다. 앞서 이기영은 A씨와의 동거 기간 중에 수차례 지속적으로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1월엔 A씨를 마구 때렸고 4월엔 집을 방문한 A씨 지인의 손을 물어 뜯기도 했다.

이기영은 지난해 8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아파트와 예금 등 A씨 재산을 빼앗기 위해 살해를 계획한 후 지난해 8월 3일 집안에서 둔기로 A씨를 살해했다. 이기영은 A씨 시신과 범행도구를 비가 오는 날 경기도 파주 공릉천변에 유기했다. 아직도 A씨 시신은 발견되지 않은 상태다.

이기영은 A씨 살해 후 A씨 통장에서 4000만원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했고, A씨 카드를 이용해 약 두달 동안 4200만원을 결제했다. 이기영은 A씨 살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카카오톡에 접속해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이후 지난해 11월쯤 A씨의 신용카드와 통장 등에서 더 이상 돈을 빼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자 A씨 소유 아파트 매매 계약서를 위조해 가족에게 보여주며 1000만원을 빌리기도 했다.

이기영은 가족에게 빌린 돈마저 탕진한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또 다시 살인을 저질렀다. 밥값마저 없어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야 할 상황이었던 당시 이기영은 12월 20일 밤 경기도 고양의 한 도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60대 택시기사 B씨의 차량과 충돌했다.

음주운전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출소한 이기영은 누범기간 중 음주운전으로 가중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과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할 목적으로 B씨를 살해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집에서 합의금을 현금으로 주겠다“며 거주하던 A씨 소유 아파트로 B씨를 유인한 후 둔기로 살해했다. 이후 B씨 시신을 옷장에 은닉했다.

이기영은 A씨 살해 당시와 똑같은 방법으로 B씨의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자신의 계좌로 4800만원을 이체하고, 신용카드를 이용해 770만원을 결제했다. 그는 살인 직후 B씨 카드로 새로 사귄 여자친구에게 커플링을 선물하고 유흥에 탕진하는 등 일말의 죄책감을 보이지도 않았다.

이기영은 B씨 가족에게서 연락이 오자 카카오톡에 접속해 B씨 행세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평소와 다른 메시지 문체를 이상하게 여긴 B씨 가족의 신고로 이기영은 꼬리가 밟혔다.

앞서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이기영이 두 사람의 생명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피해자들의 돈으로 유흥과 사치를 즐기는 등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엄중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며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