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선거 몰락한 보수.. 12년前 '절치부심' 열린우리당서 배워라

by조용석 기자
2018.06.17 19:31:27

2006년 지방선거 참패…이후 대선·총선 패배 이어져
노선수정, 안보·경제성장 외연확대…‘중도층 껴안기’ 나서
박근혜 책사 김종인 영입..폐족선언 등 스스로 물러나기도
한국당, 재창당 수준 개혁 필요.. 또 인물난에 `기대 난망`

2006년 5월31일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낙담한 표정으로 지방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자유한국당이 6.13지방선거에서 궤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다. 많은 이들이 2006년 5.31지방선거에서 완패한 열린우리당을 떠올린다. 열린우리당에 상당수 뿌리를 둔 진보진영이 다시 집권할 수 있었던 배경은 보수의 자멸도 컸지만, 암흑의 10여년간 고심한 노선 변화와 인적쇄신 노력이 밑바탕이 됐다는 분석이다.

“2006년 열린우리당이 더 망했지. 광역자치단체장 하나만 당선되고 모두 내줬으니깐. 그때 처절함이 (지금 자유한국당보다)더했으면 더했지 부족하지는 않았을 거다.” 유인태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 참패 후 분위기를 이같이 회상했다.

당시 집권당이자 친노(親盧)세력이 주축이던 열린우리당은 그해 지방선거에서 16개 광역단체장 중 전북지사를 제외하고 단 한명의 당선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특히 서울시 구청장 25석 모두 당시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에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 이번 선거에서 한국당이 광역단체장 2석, 서울지역 구청장은 1석을 차지한 것과 비교해보면 열린우리당의 패배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이 참패한 이유는 2004년 17대 총선 승리 이후 시작된 계파싸움에만 열을 올리다 민심을 놓친 탓이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등 현직 장관을 내는 극약 처방도 실패했다. 반면 분위기를 탔던 한나라당은 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선거를 10여일 앞두고 ‘커터칼 테러’를 당하면서 동정론까지 더해져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선거 패배 후 열린우리당은 정동영 의장이 사퇴하고 고(故) 김근태 의원이 의장직을 맡아 수습에 나섰으나 역부족이었다. 열린우리당은 그해 7·10월 열린 재보궐 선거에서 연패하면서 치명타를 입었고, 이후 2007년 탈당 릴레이까지 본격화하며 해체 수순을 밟았다. 결국 2003년 11월 창당한 열린우리당은 2007년 8월 대통합민주신당에 통합되면서 3년 9개월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진보진영을 떠나간 민심은 쉽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에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득표율 22.6%포인트 차이로 완패했다.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81석(통합민주당)에 그쳐, 153석을 차지한 한나라당에 완패했다.

민주당계 진보진영은 연이은 선거 패배 후 기존 이념을 버리고 외연 확대를 위해 적극 나섰다. 2008년 총선 패배 후 통합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 의원들이 영국 보수당을 찾아간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영국 보수당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후 노선을 중도로 변화, 2010년 총선에서 노동당을 물리쳤다. 이념적 스펙트럼을 넓혀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3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종전 민주통합당 강령에 있던 1987년 노동자 대투쟁·2008년 촛불집회 내용이 사라지고 ‘한미 FTA 재검토’ 등의 공약도 삭제됐다. 반면 경제성장에 대한 강령이 강화됐고 안보에 대한 내용도 추가됐다. 현 더불어민주당의 강령에도 방위역량 강화 및 튼튼한 안보태세 확립이 포함돼 있다. 중도층을 끌어안기 위한 노력이다.

박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경제민주화’를 만든 김종인 전 의원을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추대한 것도 외연확대의 예다. 당시 김 전 의원을 설득해 영입한 이가 문재인 대통령이다.

앞서 2007년 친노 세력은 스스로 ‘폐족’이라고 선언하고 정치권에서 퇴장,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다시 부활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김경수 경남지사, 오거돈 부산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등은 폐족선언 후 다시 부활한 대표적 친노 정치인이다.

반면 한국당은 사상 최초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및 조기 대선 패배 이후에도 누구하나 책임지는 이가 없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이후 30년만에 부산·울산· 경남을 모두 내준 참패를 당하자 대선후보였던 홍준표 대표가 물러난 게 전부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한국당은 인물을 키우지 않고 기득권만 지키다 이젠 올드보이만 남았다”고 평했다.

한국당 내부에선 수구 냉전적인 대북관을 지방선거 패배의 요인 중 하나로 보고 이를 바꾸겠다는 움직임이 미세하게나마 감지된다. 이른바 남북정상회담을 ‘위장평화쇼’라고 평가 절하했던 것과 정반대의 태도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벌써부터 반발이 일어 실제 변화를 가져올 지 미지수다.

박영석 정치평론가는 “열린우리당 해체 후 진보진영의 노선전환과 인적쇄신 노력이 도움이 된 면이 있다”며 “하지만 지금 보수 쪽에는 이 같은 노력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교수는 “보수는 현재 재창당 수준의 개혁을 해야 하는데 구심점이 될 이가 없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