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세형 기자
2004.11.24 12:25:00
중소벤처기업, `을`의 굴레서 허덕여
함께 진보할 수 있는 관계로 맺어져야
[edaily 김세형기자] 중소 벤처기업의 재도약을 위해 코스닥 시장 및 벤처캐피탈 활성화 등 자금마련을 위한 `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개선되어야 할 점 중 하나는 이들 기업의 독립성을 존중하되 대기업과의 건전한 협력관계를 구축, 상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대기업의 중소기업의 관계는 상호 존중관계이기보다는 원청과 하청이라는 구조로 인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산업 구조상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지만 단순한 원청-하청 구조는 이런 불평등을 키워가게 될 것이며 이에 따라 중소벤처기업 기반이 부실화된다면 산업 전체가 받을 타격 또한 클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각 기업군간 협력의 토대위에서 서로 진보해 갈 수 있는 관계가 새로 마련돼야 한다는 필요성이 벤처 활성화 기치 아래 다시 간절히 요구되고 있다.
◇중소벤처, `을`의 굴레에서 허덕이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대기업과 중소벤처 기업간 관계는 파트너가 아닌 `갑`과 `을`의 관계로 표현된다. `을`의 고통은 늘 `어쩔 수 없는`게 사실.
납품가 인하는 불평등 관계의 대표적인 케이스.
한 반도체·LCD 장비 업체의 경우를 보자. 사업 초창기 적자를 감수하면서 장비를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했던 이 업체는 1억원이 원가였지만 이의 절반인 5000만원에 대기업에 납품했다. 대기업은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납품가 인하를 요구했다. 장비업체 또한 당장 매출처를 잡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대기업들이 선주문을 내면 공급 시점까지 모든 자금 부담을 떠안는 건 기본이다. 먼저 계약서를 작성하고 대금을 받는다해도 그 방식이 어음이라면 부담을 짊어지기는 마찬가지.
소프트웨어 업종이라 해서 경우가 다르진 않다. 보통 정부 프로젝트는 대형 시스템통합(SI) 업체가 수주하고 이들은 중소 SW 업체들을 함께 끼고 입찰에 참여한다. SI 업체들은 수주를 위해 저가 경쟁을 감행하지만 여기서 발생하는 손해는 자신들이 아닌 참여 중소 SW 업체로 넘기는 것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지난 5월말 열린우리당과 벤처기업인 간담회에서 벤처기업인들은 이런 대기업 및 공기업과 중소 벤처기업 사이의 거래 관행을 성토하며 불만을 터트린 바 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벤처기업 대표는 불평등했던 것이 하루이틀이냐는 지적에 "더 이상 참고 있다가는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며 "이제 잃을 것도 없으니 이런 말도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함께 진보하는 관계로 나아가야
우리나라는 `산업의 쌀`으로 불리는 반도체와 평판패널 분야에서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TFT-LCD와 PDP, 그리고 `정보통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휴대폰 분야에서 세계 선두권에 진입하고 있지만 부품, 소재 등 중소벤처 기업이 파고들 여지가 있는 분야에선 내세울 만한 기업이 없는 게 현실이다.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특히 일본과의 무역적자는 엄청나 국가의 부(富) 자체에 심각한 손실을 가져다 주고 있다.
대일본 무역적자는 지난 2001년 101억달러. 올들어 이미 지난달에 200억달러가 넘어서 4년만에 두 배를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올 상반기까지의 부품소재 분야 대일본 적자가 77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이러니 단물은 다른 데서 쏙 빼먹고 있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대기업이 발전하는 사이 이들 산업도 성장했더라면 아쉬움이 크게 남을 수 밖에 없다. 의존도 심화는 물론, 대기업 경쟁력 훼손까지 우려되고 있다.
김용구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은 이와 관련, "대기업이 지금 당장 가격이 좀 싸다고 부품을 모두 해외 수입에 의존한다면 진정한 경쟁력을 갖출 수 없을 것"이라며 "대기업은 자사 계열의 하청업체가 죽으면 해외부품 조달만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잘 생각해야한다"고 최근 한 대담에서 경고한 바 있다.
결론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기존의 불평등 거래 관계를 해소하고 파트너로서 함께 진보할 수 있는 수준높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사장은 "불공정 관계를 시정하기 위해선 우선 제3자 개입에 의한 갑을관계의 불균형 시정, 벤처기업 입장에서 적절한 파트너 선택, 기존의 구두 진행 관행을 탈피하고 문서 계약에 의한 협력 진행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하고 "조기시장 대응이 늦은 대기업과 마케팅 능력과 생산 경험 및 품질관리 능력이 부족한 벤처기업은 상호보완을 위한 상생의 협력 모델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벤처기업협회 역시 "한국의 국가경쟁력 강화는 강소국 모델이 바람직하고 국가차원의 산업 포트폴리오를 설계, 차별화된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며 "특히 경쟁우위 종목을 선별 후 대기업과 벤처기업간 공진화(Co-evolution) 모델을 구축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소기업 육성이 거론됐고 이에 따라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협력 관계 증진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달초 산업자원부에서 내년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협력사업을 추진할 경우 해당 중소기업에 대기업 대출분 50% 외 나머지 50%를 재정 지원키로 한다는 내용을 밝힌 것이 최근의 사례.
정부는 이와 함께 업종별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협력위원회 구성을 장려하고 있다. 자동차에 이어 전자업종 협력위원회가 구성된데 이어 전자, 기계, 조선 등의 업종도 협력위원회를 결성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은 중소벤처 업계에 희망을 주고 있다.
◇참고할 만한 사례들
지난 5월 있었던 한 포럼에서 제시된 현대기아자동차의 벤처기업과 업무제휴 성공사례는 눈여겨 볼 만하다.
현대기아차는 자본 이익의 단기적 실적보다는 자동차 산업의 전략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자동차 중심의 제조벤처 투자 및 육성을 담당하는 현대기아벤처플라자를 지난 2000년 4월 신설해 운영해 오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벤처기업 협력유형은 출자형, 분사형, 공동사업형, M&A형 등 크게 네가지로 나뉘며 벤처플라자는 출자와 분사를 통한 기술베이스의 공동사업형 협력을 지향했다.
전자식 차량 고장진단장치 사업분야, 차량네비게이션시스템, 차량용 항법지도 사업분야 등이 사외벤처와의 협력 성공 사례로 꼽힌다.
사외벤처 출자를 통해 전략기술을 조기에 확보하고 공동사업을 추진, 현대기아차는 취약했던 전자 정보관련 기술을 조기확보하고 기술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고, 벤처기업은 대기업과 공동사업 시너지를 응용분야로 적용 확대할 수 있었다.
차량용 블랙박스와 차량용 영상센서 등의 경우 직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품화, 자동차 경쟁력 향상에 활용한 분사벤처 업무협력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와 함께 듀얼매스플라이휠 분야는 사내 벤처로서 연구개발(R&D) 현장의 애로기술을 독자 특허로 제품화해 원가절감과 품질향상을 도모했다.
일본의 대중소기업 관계 역시 사례가 될 만하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대기업들은 협력업체들이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경쟁`과 `협력`을 병행한다.
협력업체들을 철저히 평가하고 이에 따라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부여하는 데 세밀한 정보를 수집해 우열을 판정하고 가격과 품질, 납기에 부응하지 못하는 협력업체는 거래정지 경고 후 탈락시킨다.
반면 치열한 경쟁을 통과한 협력업체에 대해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아 일본의 대중소기업간 관계는 단순 하청관계가 아니라, 자본, 자금, 기술, 정보 등을 최대한 공유하는 상생관계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자본 참여를 통해 `튼튼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경우도 많다. 경영권 확보보다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네트워크 구축이 주 목적이다.
한 예로 도요타 자동차의 주력 부품업체인 니혼덴소는 도요타의 제품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한다. 니혼덴소는 모델 고정 훨씬 이전부터 완성차 업체인 도요타에 제안을 하고 상호교류를 한다. 또 상세 설계 뿐 만 아니라 모델 구상에도 참여하는 등 도요타와 대등한 협력관계를 구축해 놓고 있다.
핀란드의 경우 클러스터 정책을 통해 대중소기업 상생을 모색하고 있다. 핀란드는 지난 90년대초 산업별 접근방식에서 클러스터별 접근방식으로 경제정책을 전환한 것이 중소기업 성장에 결정적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헬싱키, 울루 등에 이공계 대학, 연구소, 대기업, 중소기업이 밀집한 사이언스파크를 조성, 대-중소벤처기업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게끔 지원했으며 노키아의 경우 1차 협력중소업체만 300여개에 달하고 여러 기업을 분사하는 등 핀란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으며 관련 중소기업들과의 탄탄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상생 경영을 구현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