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독이 든 당근'에…삼성·SK '반도체 속앓이'
by이준기 기자
2023.03.01 17:12:54
'對中 매파이자 능수능란한 정치인'…美상무장관 '강공'
결국 보조금 신청하겠지만…K반도체 주판알 튕길 수밖에
궁극적으로 패권경쟁 리스크 피해야…新생산기지 '절실'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뉴욕=김정남 특파원] “예상을 뛰어넘네요. 말 그대로 ‘독소조항’처럼 느껴집니다.”(반도체업계 핵심 관계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K반도체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에 미국의 거액 보조금을 받으려면 향후 10년간 중국 등 우려국에 대한 추가 투자금지 조처를 골자로 한 일명 ‘가드레일’ 조항에 이어 초과이익 환수·미국 내 반도체 인력양성 등 우리 기업들로선 매우 난감할 수밖에 없는 추가적 조항을 들이밀며 압박에 나선 모양새다. 이미 미국 내 생산시설 신설·증설에 나서며 판을 깔아놓은 상황에서 미국이냐 중국이냐, 가부간 결정을 내리라는 의미로 해석될 정도로 강경책이란 게 업계의 해석이다. 가뜩이나 메모리 한파에 따른 실적 악화, 그럼에도 거야(巨野)의 반대로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K칩스법 등으로 속병을 앓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 ‘혹’하나가 더 붙여진 셈이다. 다만, 내년 말 미 대선을 앞둔 바이든 행정부가 ‘외국 기업에까지 왜 보조금을 주는가’라는 자국 내 부정적 여론을 불식시키기 위한 행보로도 일각에선 해석하는 만큼 현재로선 우리 기업들은 일단 보조금 신청을 하되, 향후 가드레일 조항을 포함한 여러 독소조항을 타개하고자 하는 물밑 협상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1일 반도체 업계와 한·미 정치권 및 외교가에 따르면 대중(對中) 매파이자 자국 내 정치에 매우 능수능란한 것으로 알려진 지나 러먼도 미 상무장관은 시설투자 인센티브 390억달러를 포함한 총 527억달러(약 70조원)를 반도체 산업에 퍼붓는 미 반도체지원법 세부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부터 의향서를 받고 있는 가운데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활용한 200단 이상 낸드, 13나노미터(nm·10억 분의 1m) 이하 하프피치 D램 등 최첨단 제조시설의 경우 이달 31일부터 신청서를 낼 수 있다.
따라서 이미 미 본토에 최첨단 제조시설을 갖춘 데 이어 향후 더 확장할 계획을 세운 삼성전자는 물론, 연구개발(R&D) 투자를 공언한 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들은 일단 이달 중 주판알을 튕겨본 뒤, 내달 최종적으로 보조금을 신청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보조금을 받아 초과 이익을 본 기업들로부터 공유해 얻은 자금을 최첨단 반도체 연구개발(R&D) 단지 조성·전문 인력 양성 등 자국 내 반도체 생태계 강화하는 데 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 국방부 등 국가안보 기관에 군사용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장기 공급하는 사업에 우선 지원하기로 한 점도 우리 기업들로선 부담이다. 상무부는 “국방부와 국가안보 기관은 미국 내 상업 생산시설에서 제조한 안전한 최첨단 비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접근권을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들 독소조항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 대한 추가 투자가 불가능해진 만큼 중국은 레거시(구형) 공정 위주로, 미국은 최첨단 공정 위주로 가지 않겠느냐”면서도 “향후 미국 내 추가투자 의지는 꺾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봤다. 다른 관계자는 “미·중 패권경쟁 리스크를 피해 새 생산기지를 찾는 데 주력해야 할 것 같다”며 “향후 100억달러(약 13조2000억원)를 반도체 지원금으로 쓸 예정인 인도가 적합한 대체국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