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MB노믹스, 성공의 관건은 리더십

by이진우 기자
2008.05.15 11:52:25

(제 6부)경제도 리더십이다
실용의 리더십..설득과 소통으로 성과내야
사조직형 리더십에서 국가형 리더십으로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이명박 서울시장이 취임한 후 몇개월이 지난 때였다.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지하철 운전을 배우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지시를 받은 직원들 입이 튀어나온 건 당연지사. '이런 거 하자고 고시 붙은 줄 아느냐'는 뒷말도 꽤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서툴게나마 배워놓은 기관차 운전이 몇개월 뒤 터진 지하철 파업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기관사들 대신 '책상머리 공무원'들이 핸들은 잡았고 파업 효과가 사라진 노조는 날개 잃은 새처럼 기가 꺾였다는 후문이다.



매년 반복되던 지하철 파업 문제를 풀어낸 이같은 방식은 그의 리더십 성공사례로 언급되는 몇가지 대표적인 케이스 중 하나다. 이명박 대통령은 리더의 조건으로 두가지를 꼽는다. 미래를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결정된 일을 밀어부치는 추진력이 그것이다.
 
거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문제를 풀어내는 길목을 찾는 눈이다. 그는 '맷돼지를 잡으려면 길목을 잘 지켜야지 엉뚱한 곳에 있다가는 애꿎은 농사꾼들이 다친다'고 했다.

 

▲ 이명박 대통령은 광우병 논란 이후 `국민과의 소통`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지난달 말 경기도 포천의 한우농가를 방문한 이 대통령.


MB노믹스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이런 특유의 리더십이 그대로 녹아있다.
 
그래서 위험하고 때로는 아슬아슬하다.
 
태생적으로 공격받기 쉬운 취약함을 갖고 있다.
 
'경제는 이론으로 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로 정리되는 MB노믹스의 골자는 ‘이론으로 따지지 마라, 결과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정부 출범 두 달여 만에 터진 쇠고기 파동은 MB노믹스가 가진 '실용'이라는 특성이 어떻게 흔들리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국민들의 건강을 위협받을 확률이 희박하다면 명분에 매달리지 말고 열어주고 대신 더 큰 걸 받아오면 된다는 게 쇠고기 협상에 담긴 '실용주의'다.
 
아무리 확률이 희박해도 국민의 생명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느냐는 공격에는 답답한 가슴을 칠 수 밖에 없는게 실용주의 정책의 한계다. ‘광우병에 걸리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두고 보면 안다’는 게 정부의 대응논리의 전부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실용주의 리더십은 목표가 뚜렷한 기업조직에선 잘 먹혀든다.CEO의 통찰력을 믿고 따라오라는 데 뒷말이 있을 까닭이 없다. 그게 싫으면 사표를 내면 된다.



현대그룹에서 이명박 사장의 통찰력과 리더십이 통한 것은 그가 수만명의 현대 직원을 설득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주영 회장이 그의 통찰력을 믿고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리더십이 대통령의 자리에서도 통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난관이 적지 않다. 기업에서는 사장이 싫으면 침묵하거나 사표를 내면 되지만 국민은 대통령이 싫다고 주민등록증을 받납할 수는 없다는 게 가장 큰 차이다.



CEO형 리더십이 국정운영에도 먹힐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게 이명박 시장 시절의 업적이다. 국민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놓고 다시 한번 그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성공의 기억이 이명박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청계천과 시내버스를 둘러싼 논쟁은 실용주의를 전제로 진행된 것이어서 계획의 현실성만 입증하면 되는 문제였고 거기에는 진보나 보수, 친미와 반미의 대립은 없었다”면서 “쇠고기 문제는 그 틀을 벗어나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확산된 것이며 앞으로 대통령으로서 마주하는 문제들은 대부분 그런 성격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계획과 결과만 국민들에게 전달됐던 서울시장때는 결과로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있었지만 대통령은 말 한마디와 일거수 일투족이 여과없이 실시간으로 국민들에게 전달된다는 점에서 신뢰와 기다림을 기반으로 하는 리더십만으론 한계가 있다. 아니 리더십을 소통할 수 없다. 시민과 국민의 차이는 의외로 크다.

이명박 대통령은 늘 ‘머슴의 리더십’을 강조한다. 친하게 지내는 기업인이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직원들에게 훈시를 하면 옆에서 듣다가 가까이 다가가서 ‘머슴의식을 제대로 갖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충고했다고 한다. 공무원들에게 국민의 머슴이 되라고 한 말도 군기잡기 차원에서 그냥 튀어나온 게 아니다. 기업인 시절에도 늘 머슴의식을 갖고 현장을 챙긴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 사장 시절 정주영 회장에게 보고하러 갈 때는 꼭 비서에게 정 회장의 기분이 어떤지 물어봤다고 한다. 회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회장의 기분이 좋을 때 보고를 해야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고 오해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머슴의 리더십을 국민과의 소통의 리더십으로, 설득의 리더십으로 승화시키는 게 CEO 대통령 이명박의 가장 큰 과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이 추락한 것은 공무원들에게만 머슴의식을 강조하고 정작 청와대는 머슴의식을 버린 듯한 인상을 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모든 정책의 핵심은 결국 리더십으로 귀결된다. 국민들이 믿고 기다려주는 것을 전제로 짜여지는 게 정부 정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명분이 돋보이기 어려운 실용의 리더십은 더욱 그렇다. 국민들을 설득하고 국민들과 소통하는 대통령의 리더십. 그게 MB노믹스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