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에, 근로감독관 무시에…두 번 상처 받는 직장인들
by박순엽 기자
2021.04.25 16:00:30
신고 이후 근로감독관의 '갑질'에 '2차 피해' 이어져
직장갑질119 "전체 제보 중 11%, 근로감독관 관련"
회사 편들기·합의 종용·무성의 등 여러 피해 겪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 교육·감독 철저히 해야"
[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중소기업 회계 담당자 A씨는 지난해 10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며 관할 노동 관서에 신고했다. 대표로부터 개인 업무와 가족 관련 사적 용무 등을 강요받다가 문제를 제기하자 폭언과 협박에 이어 업무에서 배제당하고, 연차와 육아휴직 사용도 제한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당 근로감독관은 인사이동을 이유로 해당 사건처리를 뭉개면서 사건 해결이 지연됐다. 그 사이 회사는 업무방해, 업무상 배임 혐의로 A씨를 고소했다. 사건은 ‘혐의없음’으로 종결됐지만, 그는 우울·불안 증세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A씨는 “회사에서 1차 상처를 받고, 근로감독관에게 2차로 상처를 받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근로감독관의 ‘갑질’ 때문에 신고 이후에 오히려 어려움을 더욱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고용노동부에 소속 근로감독관은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근로 조건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를 감독하는 공무원인데, 일부 신고자들은 사건처리 과정에서 오히려 이들에 의해 ‘2차 피해’를 당했다는 얘기다.
25일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 1~3월 신원이 확인된 피해 이메일 제보 637건 중 근로감독관 관련 제보는 72건으로, 전체의 11.3%에 달했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 사건 10건 중 1건 이상이 근로감독관으로부터 당한 2차 피해를 호소한 셈이다.
제보자들은 구체적으로 △노골적으로 회사 편들기 △신고 취하·합의 종용 △무성의·무시 △시간 끌기 등 근로감독관의 ‘갑질’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고 성토했다.
회사원 B씨도 체불임금 처리 과정에서 만난 근로감독관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제보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해고당한 B씨는 체불임금이 1000만원이 넘었는데, 이를 해결해야 할 근로감독관이 임의로 체불임금을 줄이고 통상임금보다 적은 평균임금으로 그의 퇴직금을 계산했다.
심지어 이 근로감독관은 B씨와 회사 관계자가 모여 3자 대면할 때도 사측에 “금액이 너무 커서 어떻게 한꺼번에 내겠느냐”며 걱정스러워한 반면, B씨에게 “청구한 게 너무 많다”며 나무라듯 말했다고 한다. B씨는 “제가 죄지은 사람이 된 듯했다”며 “근로감독관이 아니라 체불임금을 깎아내는 ‘체불임금 조정관’이란 말이 다시 한 번 느껴지던 순간”이라고 성토했다.
민원 처리 과정에서 근로감독관의 무성의한 태도로 상처받은 피해자들도 많았다. 회사원 C씨는 동료와 함께 시간 외 수당, 연차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회사를 노동부에 신고하고 근로감독을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C씨는 “근로감독 시 전 직원을 대상으로 익명 설문조사만 해도 밝혀질 내용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최근 체불임금 진정 준비를 하던 D씨도 고용노동청에서 상담을 받다가 근로감독관에게 무시당했다는 감정을 느꼈다고 전했다. 근로감독관이 “계산 방법은 인터넷에 찾아보면 나와 있으니 그대로 하면 된다”, “우리가 하나하나 계산해줄 수 없다”라는 말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D씨는 “근로감독관이 나를 귀찮아한다는 생각에, 준비해온 내용을 더 물어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개정해도 근로감독관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며 “회사는 권력 자체이고 사장은 권력 최상위에 있는데도, 몰지각한 일부 근로감독관들이 사장과 직원이 대등하다는 착각으로 사장의 갑질과 불법을 내버려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은주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은 조사과정에서 전문성과 공감 능력이 더욱 요구되는 사안인데도 오히려 신고 처리 과정에서 근로감독관에 의해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고용노동부는 소속 근로감독관 교육과 업무처리 감독을 철저히 해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