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폭등 '가로수길·경리단길' 상권의 비밀

by김성훈 기자
2014.11.04 10:15:23

압구정동·이태원 업고 시내 명소로 발돋움
5년새 임대료 22~33%↑...기존상인 뒷 골목으로 이동
시내 상권 이동속도 빨라 임대료 향후 오름폭 '관심'

△ 지난 1일 찾은 이태원 경리단 길은 많은 인파가 몰렸다 [사진=김성훈 기자]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미혼인 기자에게 팔짱이란 오갈 데 없는 내 두 팔을 꼬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선 상황이 다르다. 눈앞의 연인들은 팔짱이란 본디 애정 행위라고 알려준다. 지난 1일 찾은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2번 출구에는 팔짱 낀 연인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출구에서 내려 500m정도 직진하면 길을 건너는 지하도가 나온다. 본격적인 경리단길의 시작이다.

경리단길은 2012년 국군재정관리단으로 통합된 육군중앙경리단이 있었던 곳에서 유래됐다. 시내 상권의 중심지로 발돋움한 이태원이 모태로 작용했다. 아기자기한 이태원의 커피 전문점과 식당들은 오르막 골목길을 타고 경리단길로 퍼져나갔다.

용산구 한남동 하얏트 호텔 앞 ‘회나무길’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건물들 아래 커피 전문점과 음식점들이 있다. 가파른 오르막길에 걷기가 만만찮지만 사람들은 도리어 즐거워 한다. 용산구에 사는 김사진(24)씨는 “몰랐던 커피숍과 식당을 찾아내는 게 마치 보물 찾기하는 것 같다”며 친구들과 종종 이 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단시간에 명소가 된 대가는 높아진 상가 임대료다. 대기업 프렌차이즈 업체들이 기지개를 펴자 임대료가 오르기 시작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이태원·경리단길 상가의 평균 임대료는 2009년 83만원(전용면적 33㎡ 기준)에서 올해 3분기 102만원으로 5년 새 22% 가까이 올랐다.

평온하던 마을에 임대료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기존에 있던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싼 임대료를 찾아 골목과 주택가로 자리를 옮겼다. 방문객들이 좋아하는 경리단길 골목의 배경엔 싼 임대료를 찾아온 자영업자들의 고충이 있다. 인근 H공인 관계자는 “경리단길 초입은 지난해까지 임대료가 20~30% 가량 올랐다가 올해 들어 40%를 넘는 경우도 있다”며 “건물이 내부 리모델링이라도 하면 더 오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리단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59)씨는 “얼마 전 주인이 임대료를 올려달라고 했다”며 “내기 싫으면 다른 사람을 받겠다”고 으름장을 놨다고 귀띔했다. 그는 다행히 매출이 늘어 권리금을 올려줬지만 다정했던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는 끝났다고 했다.

신사동 가로수길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는데 대로변 커피 전문점 앞에 손님들이 길게 늘어섰다. 안에 있던 종업원이 상기된 얼굴로 나와 벽 쪽으로 붙여달라고 말한다.



△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사진=김성훈 기자]
서울지하철 3호선 신사역에서 압구정동 현대고등학교 앞으로 통하는 2차선 은행나무길. 이제 가로수길이란 이름으로 유명하다. 경리단길이 이태원을 등에 업었다면 가로수길은 압구정동의 영향을 받았다.

도보 15분 거리인 압구정 로데오 거리가 강남 상권에서 입지를 굳힐 때만 해도 가로수길은 예술가들이 모여 작업실과 옷가게를 여는 곳이었다. 변곡점은 2009년,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조성한 ‘일방통행 도로’였다. 상권 활성화의 취지로 인도를 넓히고 일방통행로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게 상권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들어와 나갈 길이 여의치 않던 차들은 압구정동으로 향하는 발길을 줄여갔다. 때마침 2차선 도로가 있던 가로수길은 압구정의 인파를 흡수했다.

이곳도 경리단길과 마찬가지로 대기업 상점들이 가로수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예술가의 거리를 꿈꾸던 상인들은 가로수길 뒷골목으로 자리를 옮겼고 사람들은 그 곳을 가늘 ‘세’(細)자를 붙여 세로수길이라고 부른다.

가로수길의 임대료(전용면적 33㎡ 기준)는 평균 보증금 1억~1억5000만원, 월세는 평균 146만원(2014년 3분기)에 달한다. 2009년 보증금 2000만~3000만원에 월 110만원 이하였던 것과 비교하면 보증금은 5배, 월세는 33% 이상 증가한 셈이다.

가로수길 인근 T공인중개사는 “현재 이 일대 상가는 포화 상태라 실거래는 거의 없다”며 “가로수길에 입점한 대기업 상점들은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임대를 받아 시세조차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박대원 상가정보연구소 소장은 “대기업들이 실질 수익 외에 브랜드 가치를 고려해 가로수길과 경리단길 등에 입점하면서 임대료와 권리금이 많이 올랐다”며 “소비자들의 성향에 따라 상권이 이동하는 속도가 빨라 최근 몇 년간 급등했던 임대료의 오름 폭이 계속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