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박기용 기자
2010.01.13 11:15:02
[이데일리 박기용기자] 국세청이 `숨은 세원의 양성화`를 표방한 2010년 국세행정 운용방향을 내놨습니다. 9명의 전직 청장 중 6명이 불명예 퇴직한 국세청에 최초의 민간인 청장으로 부임한 백용호 청장의 국세행정이 본격화되는 단계입니다. 하지만, 백 청장과 함께 국세청 출입을 시작한 경제부 박기용 기자는 백 청장의 포효가 왠지 맥 빠진 느낌이라는데요.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발표로 온 나라가 들썩였던 지난 11일, 국세청은 서울 수송동 본청에서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를 열고 올해 국세행정 운영방향을 발표했습니다.
“경제도 안 좋은데 국민이 국세청장 얼굴을 보고 싶어 하겠느냐”며 언론 노출을 자제하는 백용호 청장다운 날짜 선택인 듯합니다.
`블록버스터`에 묻혔지만 백 청장의 이날 연설은 결연했습니다. 취임 후 6개월가량의 시간 동안 각종 궂은 일로 사기가 땅에 떨어진 조직 추스르기에 매진하며 벼려온 칼을 힘차게 뽑아든 모양새였습니다.
국세청의 올해 화두는 `숨은 세원의 양성화`입니다. 백 청장은 “이제 국세청 본연의 업무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점”이라며 “탈루소득의 지하자금화를 원천 차단하고 고의적·지능적 탈세에 엄정 대응해 세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는 데 세정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포효했습니다.
하지만, `탈루소득의 지하자금화`에 앞장서고 `고의적·지능적 탈세`의 대표적 사례를 보여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두 딸과 함께 온 지면과 방송을 장식한 날이어서일까요. 백 청장의 포효가 왠지 생경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29일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명목으로 이건희 전 회장을 단독 특별사면복권했습니다. 조세포탈과 배임 등의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형이 확정된 지 불과 138일 만이었습니다.
여론악화를 의식해 고심하다 결국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국익`을 택했다고 하지만, 이 대통령은 결국 지도층 인사의 법질서 준수를 통한 우리 사회의 법질서 수준 제고라는 또 다른 `국익`을 외면한 셈입니다. 오는 11월 한국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법무부가 주도하는 `법질서 바로 세우기 캠페인`도 무색해졌습니다. 집회·시위 질서만 지킨다고 우리 사회의 법질서가 바로 서는 걸까요.
그러고 보면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사에서 한국의 법질서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27위를 기록한 것도 수긍이 갑니다. 대기업이 성장하면 이와 연관된 중소기업이 성장하고,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서민경제도 좋아진다는 이른바 `낙수 효과`(Trickle down effect)는 경제 영역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닐 겁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옛말에선 오류를 찾기 어렵습니다.
한편에선 세종시에 삼성 계열사가 입주하기로 하면서 이 전 회장 사면과의 `천박한 빅딜` 운운하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오해이든 아니든 이런 관점으로 이 전 회장의 사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인식이 엄존한다는 것이 더욱 무서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오해라면 당연히 풀어야하겠지만, 이 오해를 낳은 우리 사회의 법질서 수준과 이 법질서의 형성 과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반성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고의적·지능적 탈세에 엄정 대응하겠다”는 국세청장의 포효가 세종시 수정안 발표일이 아닌 다른 날에 있었더라면 생경함이 덜했을까요? 어차피 공허한 외침이 될 것을 염려한 백 청장이 일부러 이날을 택한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