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하는 장난감 산업의 `딜레마`

by김경인 기자
2005.10.14 14:33:16

[이데일리 김경인기자] 크고 화려한 눈과 뾰로통한 입술, 성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는 인형 브랜드 `브라츠(Bratz)`. 순식간에 25억달러 규모의 세계적 브랜드로 급성장한 브라츠는 인형의 지존 `바비`의 최대 적수로 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있다.

그러나 브라츠를 생산하는 MGA 엔터테인먼트는 새롭고 다양한 브라츠를 계속 생산하는 대신,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 MP3플레이어 등의 전자제품을 생산해 내고 있다. 아이삭 라리란 MGA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스스로를 장난감 제조업체라고 생각치 않는다"고 공언한다.

전세계 장난감 제조업체들의 `외도`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레고, G.I.조 등 베스트셀러 장난감을 생산해온 전통 기업들마저 휴대폰, MP3 플레이어 등 전자제품 생산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그 경쟁은 특히 크리스마스 대박시즌을 앞두고 더 심화되는 중이다.

디즈니는 6세 이상 아동들을 위한 디지털 오디오 플레이어 `믹스 스틱스`를 판매한다. 소비자가 49달러인 이 제품은 인터넷을 통해 음악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으며, 핑크-보라, 보라-녹색의 디자인으로 제작된다.

세계적인 G.I.조를 생산했던 하스브로는 `브이켐 나우`라는 제품을 마케팅중이다. 8세 이상용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인 브이켐은 소비자가 79달러이며, 스틸 사진은 물론 짧은 동영상 촬영도 가능하다.

하스브로는 이 밖에 299달러 휴대용 비디오 프로젝터인 `줌박스`를 판매하고 있으며, MP3 플레이어용 악세서리인 29달러짜리 `아이-독`은 이번 시즌 이미 가장 잘 팔리는 제품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마텔은 무선 컨설팅 업체 싱글터치와 제휴를 맺고 8~14세용 휴대폰 `바비 폰`을 생산·판매한다. 교육용 완구회사인 립프록 엔터프라이즈 역시 무선회사 엔포라와 협력해, 6세 이상용 휴대폰을 제작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3일(현지시간) 주요 장난감 제조업체들이 일제히 전자제품 판매에 나서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며, 뒤숭숭한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IT의 놀라운 발전이 미디어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공유되면서, 전통 장난감들이 더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 NPD에 따르면, 지난해 어린이들의 전자제품 소비는 약 6억9400만달러로 전년비 40% 가량 급증했다. 아이들은 인형 등의 장난감을 버리고 휴대폰, 무전기, MP3 플레이어 등의 전자제품을 가지고 논다.

월마트와 토이러스(Toys "R" Us)의 극심한 경쟁 속에 강한 경제적 위기에 몰렸던 장난감 제조업체들은 잇따라 아동용 IT제품에서 회생의 길을 찾고 있다. 올들어 이미 5% 가량 감소한 업계 매출은 업체들의 위기의식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업계의 이같은 움직임은 사회 각층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IT제품이 장난감으로서의 가치가 있는가, 아이들의 놀이와 어른들의 기술 사이에 장벽을 없애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장난감 제조업체들은 과거 수십년 동안에도 어른들의 행동을 모방하는 장난감을 생산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휴대폰같이 생겼지만 통화는 안되는` 가상의 물건일 뿐이었다. 현재 생산되는 제품들은 실제 사용 가능한 IT 기기들이라는것이 문제다.

펜실베니아 대학교 게리 크로스 교수는 "아이답다는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혼란이 더 커지고 있다"며 "이같은 장난감들은 결코 순수한 의미의 장난감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하이테크 제품들이 아동의 행동 범위를 제한한다고 비난한다. 사진을 찍고 전화를 하는 등의 행위들은 대부분 그룹보다는 개인적인 행동이라는 것. 즉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데 있어 장난감이 오히려 해가 된다는 판단이다.

시장 조사기관 토이 팁스의 마리안 스멘스키는 "장난감에 너무 많은 IT 기술들을 부여하는 것은 아동이 사회성, 인격, 성격 등 삶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할 시간을 빼앗는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은 IT 장난감을 생산하는 것이 업계에도 결코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소비 가전 제품들의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마진도 낮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회사에 손해가 된다고 설명. 상업성 뿐 아니라 교육성 또한 고려해야 하는 장난감 제조업체들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