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오상용 기자
2008.11.10 14:53:25
"등급하향 가능성 50% 이상"
韓펀더멘털 나빠졌다는 인식 반영
투기세력에 빌미줄까 우려
[이데일리 오상용기자] 갈 길 바쁜 우리 경제가 새로운 복병을 만났다. 10일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Fitch)는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국가신용등급 자체는 `A+`를 유지했지만 안심하지 말라는 경고음을 내기에는 충분했다.
금융시장 불안과 실물경기 침체라는 이중고를 겪는 상황에서 신평사들의 등급 하향이 현실화될 경우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과 국제투기세력에 의한 시장교란은 더 심화될 전망.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도 없지만 넋놓고 있어서도 안되는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국제신평사들이 등급전망을 부정적(Negative)으로 낮추는 것은 이듬해 연례협의때 등급이 하향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실제 제임스 맥코맥 피치 아시아국가신용등급 담당 이사는 이날 이데일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이 가능하다(that is possible)"며 "전망이 부정적(Negative)이라는 것은 신용등급을 하향할 가능성이 50% 이상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상황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등급 하향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며 내년 4월 연례협의 전이라도 필요시 등급을 조정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다만 정부는 지난 2003년 3월 무디스가 등급전망을 한차례 `부정적`으로 낮췄다가 등급조정없이 전망을 원상복구한 사례도 있는 만큼 나쁜쪽으로 예단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피치의 이번 리뷰 대상이었던 아시아 6개국 가운데 말레이시아와 우리나라의 등급 전망만 하향 조정된 것은 시장에 개운치 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문제는 `피치의 이번 결정이 다른 신평사들의 평정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냐`라는 점이라고 했다.
일단 재정부 관계자는 "각 신평사들마다 중점적으로 보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연례협의의 경험에 비춰보면 무디스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을, 피치는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등 다들 포커스가 달랐다는 것.
그러나 금융시장 관계자들의 목소리는 조심스럽다. 주식시장의 한 스트래티지스트는 "피치의 이번 전망하향이 내년 4월 실제 등급하향으로 이어진다면 무디스나 S&P 등 다른 신평사들의 등급 평정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높아질 때는 약점을 노출시켜서는 안된다"며 "이미 지난 97년 우리는 국제 투기세력에게 작은 빌미를 줬다가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해외 언론의 시각도 비슷하다. 앞서 지난달 28일 블룸버그 통신의 아시아 경제전문 칼럼니스트인 월리엄 페섹은 "월가의 은행들에 대한 공격을 마무리한 헤지펀드와 투기세력들이 아이슬란드를 수중에 넣고 한국을 다음 목표의 맨 앞에 올려놓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날 피치가 우리나라에 대한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한 것은 우리 경제 펀더멘털을 바라보는 외국의 시선이 나빠졌음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로서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외국인이 보기에 한국은 `글로벌경기`라는 하나의 종목에 사실상 올인한 거나 다름없는 경제 구조인 것이다.
이날 피치가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한 것도 우리 경제가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다 글로벌 유동성 환수(디레버리지)에 따른 은행권의 건전성도 도마에 올랐다. 피치는 "경기의 급격한 하강과 은행 자산가치 저하를 막기 위한 은행권의 디레버리지는 한국의 대외 신용도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봤다.
세계 금융기관들의 디레버리지가 여전히 `진행형`인 상황에서 국내 은행들의 외화자금 사정 및 재무 여건은 갈 수록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피치는 또 한국은행이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할 경우 문제는 더 나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맥코맥 이사도 " 세계 자본시장이 더 나빠지고, 한국의 외환보유고 규모가 더 줄어들면 신용등급을 하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정부는 이번 전망 하향이 등급 하향조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대외부문의 건전성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그런 측면에서 은행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과 외화유동성 공급, 경기 활성화를 위한 종합대책을 실효성있게 추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