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묻지 않은 오지…단풍은 때를 만났네

by경향닷컴 기자
2008.10.30 11:40:00

정선 단임(丹林)마을
산자락 드문드문 너와집·투방집 정겨워
자연휴식년 보호 탓 무공해 산나물 지천
단풍 진 11월엔 계곡길 오색융단 탈바꿈


 
[경향닷컴 제공] 가지 말라고 했다. 행여 단풍을 보기 위해 쏟아야 하는 시간과 발품이 만만찮을 거라는 얘기다. 하지만 ‘단풍나무 숲’이라는 마을이름에 혹해 달려간 곳이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단임마을’. 꼭 단풍 때문만은 아니다. 관내 마을단위로는 유일하게 비포장길이 남아 있는 ‘마지막 오지’라는 말에 더 마음이 쏠렸다. 고봉준령이 병풍처럼 둘러친 마을은 계곡 끝자락에 터를 잡은 전형적인 오지. 정선사람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벽촌이다. 산자락에 포근히 안긴 마을은 몇해 전부터 자연휴식년제가 풀려 세상에 품을 열었다. 불현듯 일상을 떠나고 싶을 때 자연을 벗삼아 며칠 묵어가기에 딱 좋은 곳이다.

단임마을은 진부와 정선 사이 오대천변 북동쪽에 터를 잡고 있다. 진부IC에서 정선 방향 59번 국도를 타고 간다. 오대천을 따라 이리저리 굽이치는 이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 안성맞춤. 만산홍엽으로 물든 강원도의 듬직한 산과 오대산에서 발원한 오대천 물길이 한 몸처럼 어우러져 그림 같다.

단임(丹林)은 ‘단풍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안단임과 바깥단임, 웃단임으로 나뉘는 마을은 숙암교를 건너 좌측으로 난 외길을 따라간다. 숙암마을에서 10분 정도 더 들어가면 계류를 낀 비포장도로가 마을입구까지 나 있다. 여기서 안단임 계룡잠까지는 3시간 거리. 해발 700m 고지에 자리하고 있지만 길은 완만하다. 걷는 길 내내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가 청량하다.

대여섯개의 산을 병풍처럼 두른 마을은 산자락 안쪽에 박혀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고깔 모양새다. 마을을 둘러친 산은 모두 1000m가 넘지만 박지산(1391m)과 갈미봉(1266m)을 제외하고는 이름도 못 얻었다고 하니 오지는 오지인가 보다.

우측 산자락에 멋스럽게 들어앉은 별장을 지나 몇걸음 더 옮기면 옛 북평초등학교 단임분교가 나온다. 1965년 8월에 문을 연 학교는 1989년에 폐교돼 ‘문학당’이란 간판을 걸고 있다. 건물 옆에는 산자락을 따라 벌통이 가지런히 늘어섰다.

학교와 마주한 토담집은 리영광씨의 집. 22살 때 북에서 내려온 귀순용사 1세대다. 자서전을 내고 방송을 타면서 ‘유명인사’가 된 리씨는 이곳의 청정자연에 반해 10년 넘게 약초를 캐고 산다.

마을입구에서 6㎞ 정도 오르면 길은 두 갈래. 왼쪽은 박지산을 잇는 안단임 계룡잠으로, 우측은 갈미봉 줄기를 따라 장재터로 이어진다. 초입에 성황당을 세운 이 길은 트레킹 코스로 제격. 울창한 숲과 기암, 계류의 청아한 물소리가 끝없이 이어진다. 그 길 끝에는 다향산방이 자리해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이 담긴 따뜻한 차 한잔을 맛볼 수 있다.

좌측 안단임 쪽으로 100여m를 지나면 자생초체험장. 통나무집이 들어선 이곳은 민박과 농촌체험을 겸할 수 있다.

마을이라고 해봐야 총 10여가구에 12명이 전부. 그것도 계곡과 계곡 사이에 드문드문 둥지를 틀어 얼굴 마주하기가 쉽지 않다. 길에서 만나는 다람쥐가 그래서 더욱 반갑다.

마을은 1960년대만 해도 80여가구가 살았던 화전민부락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산림보호를 위해 화전을 짓지 못하자 하나둘씩 떠났다. 그러다보니 현재 남아 있는 주민은 절반 이상이 외지인이다. 고랭지채소와 약초, 산나물, 토종벌을 주수입원으로 소박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 태초의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그만큼 사람 살기가 녹록지 않다.

마을을 관통하는 길은 비포장과 포장길이 뒤섞여 있다. 산자락을 따라 이리저리 휘어진 길은 계곡을 따라가고 또 가로질러 간다. 휴대전화도 당연히 먹통. 마치 세상과 절연한 듯한 느낌이다.



길가 산자락에 드문드문 들어선 너와집과 투방집도 정겹다. 옛 화전민의 흔적도 그대로 남아 있다. 길가 산비탈에는 작은 이끼폭포가 실타래 같은 물줄기를 끊임없이 쏟아낸다. 그 모양새가 앙증맞다. 규모가 크지 않아 훌쩍 지나쳐 버리기 삽상이다.

마을 앞산과 뒷산, 큰 산과 작은 산, 계곡에는 소나무와 잣나무, 단풍나무, 전나무, 삼나무가 빽빽하다. 청정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까닭에 단풍의 때깔은 금세 물감을 칠해놓은 듯 선명하고 뚜렷하다. 마을이름이 괜한 겉치레는 아닌 듯싶다.

지난 6년간 일반인에 공개되지 않았던 마을은 무공해 산나물이 지천이고 계곡에는 열목어와 산천어, 토종메기, 가재가 뛰어 논다. 이 모두 마을주민의 자연보호 덕이다.

단임마을 토박이 김기용 이장(46)은 “마을자랑은 그저 때 묻지 않는 자연”이라며 “단풍이 절정을 이룰 때도 좋지만 11월 중순부터 잎을 털어내기 시작하면 계곡과 길이 온통 오색융단을 깔아 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강원도의 자연’을 그대로 내보이는, 추색에 젖은 마을은 가을햇살 아래 오색단풍이 유난히 빛난다.



▲찾아가는 길:서울→영동고속도로→진부IC→6번 국도→59번 국도 정선방향→숙암면→숙암교 건너 좌회전→단임마을

▲주변 볼거리:화암8경, 정암사, 정선5일장, 정선소금강, 화암국민관광지, 함백산, 아우라지, 항골계곡, 오장폭포, 구미정, 두위봉 등

▲맛집:감자바우(곤드레나물밥, 033-562-5481), 대동식당(콧등치기국수, 033-563-1252), 두메산골(황기백숙, 033-563-5108), 용천횟집(송어회, 033-562-7501) 등

▲축제:11월2일까지 남면 민둥산 일원에서 ‘민둥산 억새꽃축제’가 열린다.

▲숙박:용바위펜션(033-562-1783), 큰터잘방(033-563-3137), 해변언덕펜션(033-562-9002)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