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라, 리먼 업고 `아시아 넘어 세계로..`
by김경인 기자
2008.09.23 14:19:55
리먼 亞·유럽법인 인수 유력
규모+노하우 얻어 `IB 거물로..`
양사 통합이 해결 과제
[이데일리 김경인기자] 오랜시간 꿈 꿨던 만큼 움직임은 기민하고 정확했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재빠르게 낚아 채 속전속결로 게임을 마무리했다. 투자뱅킹의 변방을 맴돌던 피라미가 세계를 누비는 대어(大魚)로 급변하는 순간이다.
일본 최대 증권사인 노무라가 빚 잔치에 나선 리먼브러더스의 아시아 법인을 손에 넣었다. 유럽 법인과도 단독 협상을 벌이고 있어 인수 확정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오랫동안 해외시장에서 사세확장 기회를 노려온 노무라는 생각치도 못 한 싼 값에 꿈을 이뤄, IB시장의 주전으로 급부상했다. 비록 그 꿈의 무대가 반토막 난 상태이긴 하지만 말이다.
노무라홀딩스는 지난 22일 리먼브러더스의 파산관리를 맡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와 아시아 법인을 2억2500만달러에 인수키로 합의했다. 현재 매각협상이 진행중인 유럽법인 또한 노무라가 인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노무라홀딩스의 전신인 옛 노무라증권은 1918년 노무라 도쿠시치가 설립한 오사카노무라은행의 증권부에서 시작됐다.
1925년 증권부가 노무라증권으로 독립했으며, 2001년 지주회사법에 따라 지주사인 노무라홀딩스로 바뀌었다. 이와 별도로 새 노무라증권이 설립돼 기존 노무라증권의 증권 및 부대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노무라증권은 일본 최대 증권사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은 물론 아시아에서조차 그 영향력이 크지 않다. 일본의 제조업을 비롯한 주요 산업이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지만, 금융사들은 유독 글로벌 열등생을 면치 못 한 게 사실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노무라의 시장점유율은 0.4%로 55위에 그쳤으며,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에서의 이쿼티 캐피탈 마켓 사업(ECM) 규모는 1300만달러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국 4위 증권사이자 유럽 M&A와 ECM시장에서 10위안에 드는 리먼의 사업부를 인수함에 따라 차원이 다른 IB로 거듭나게 됐다는 평가다. 게다가 아시아 법인 인수 가격은 노무라가 사업확장을 위해 확보한 자금 60억달러의 채 5%도 안 된다.
오노 아즈마 크레디트스위스 연구원은 "노무라가 최소 비용으로 그토록 바라던 세계 IB시장에 뛰어들게 됐다"며 "자기 힘으로 하려면 3년 이상 걸렸을 일을 몇 달 만에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더군다나 IB시장의 터줏대감들이 줄줄이 위기를 맞아 정리된 상태. 시장 파이 자체가 줄었다는 우려는 있지만, 경쟁자들의 숫자와 위력이 크게 약화됐다는 점에서 본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하기에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
그러나 리스크 없는 딜은 없다. 노무라가 세계시장에서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리먼과의 통합`이라는 쉽지 않은 과제를 현명하게 처리해야 한다.
FT는 IT 시스템 통합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메가은행으로 재탄생한지 3년이 넘은 미쓰비시UFJ 그룹이 아직도 미쓰비시와 UFJ간 시스템 통합을 완성하지 못 한 것을 예로 들어, 일본 기업들은 시스템 통합이 늦기로 악명높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리먼과 노무라의 기업 문화, 더 나아가 국가 간 문화 차이. 남성호르몬을 무차별 방출하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미국 뱅커들과 샐러리맨에 가까운 섬세하고 침착한 일본 뱅커들의 차이는 갈등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리먼브러더스 역시 일본을 아시아법인 본부로 정하고 3000명 직원 중 절반을 일본인으로 채우면서 똑 같은 문제를 경험한 바 있다. 특히 연봉제임에도 사실상 직원간 연봉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이 갈등 요인.
홍콩의 한 헤드헌터는 "뱅커들에게 매우 어려운 시장 환경"이라며 "고용 승계를 보장받은 리먼 직원들이 즉각적으로 노무라를 떠나진 않겠지만, 일본식 문화와 시스템을 강요받을 경우 금방 사퇴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먼의 `돈줄`인 갑부 고객들 다수가 이미 `탈 리먼`을 결행했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오노 연구원은 "노무라가 이미 리먼을 떠난 프라임 고객들이 다시 잡아올 수 있을 것인지가 확실하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