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정철우 기자
2007.06.05 13:33:43
[이데일리 정철우기자]'바람의 아들' 이종범(37). 당초 그에게 '주루 플레이'에 대해 물을 계획이었다. 통산 도루 1위 전준호(현대)도 매력적인 달인이지만 '이종범 표 주루'의 화려함에 끌려 그런 결정을 내렸었다.
그러나 정작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날 다른 내용의 대화를 나누다 주제마저 달라지고 말았다. 외야수로 나서게 될 장성호에 대한 걱정을 듣다 그만 분야마저 바꿔버렸다.
그에게 수비에 대해 듣기로 한 것이다. 이종범은 '수비의 달인'으로 불리워도 손색이 없는 능력의 소유자다(솔직히 공.수.주 모두 그렇다). 견실함은 조금 떨어졌는지 몰라도 넓은 수비폭과 강한 어깨는 그를 멋진 수비수로 기억하게 했다.
특히 유격수로 시작해 3루수와 2루수,그리고 외야의 모든 포지션을 직접 섭렵해 본 그이기에 더욱 다양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처럼 많은 분야를 경험하며 모두 잘해낸 선수를 만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또 자칫 시리즈에서 빠질 뻔 했던 전준호에게 주루 플레이에 대해 물을 수 있게 됐다는 점도 큰 다행이라 여겨진다.
▲포지션 변경이 장성호에게 미치는 영향
이종범은 팀 후배 장성호에 대한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최희섭 입단으로 정든 1루를 떠나 좌익수를 맡게됐기 때문이다. 그는 장성호의 좌익수 변신이 가져올 문제는 단순한 낯설음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과는 달리 외야 수비 자체가 내야에 있을때 보다 힘든 점이 많다고 힘 주어 말했다. “흔히 수비 부담이 적은 외야수’라는 표현을 쓰는데 절대 틀린 얘기다. 외야수는 수비도 쉽지 않고 특히 타자로서의 능력을 제한할 수 있는 포지션”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말하는 ‘내야수가 외야수보다 좋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야수는 투수의 공 하나 하나를 놓쳐선 안된다. 투수가 공을 던지고 그게 맞아 나가고 하는 것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집중력이 생긴다. 그런 적당한 긴장감이 타석에도 이어지게되면 타자로서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내야수를 보던 선수가 외야로 나가게 되면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타율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성호는 집중을 잘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 않는가(웃음).
한국 뿐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도 모두 1루수는 장타력과 타격 능력을 갖춘 선수들이 포진돼 있다. 그만큼 내야수,특히 1루수는 장점이 있는 포지션이라는 뜻이다. 단기적으론 성호에게 큰 영향이 없어 보일지 몰라도 경기가 거듭될 수록 어려움에 부딪힐 것이다. 내야에서 외야로 바뀔 경우 열의 아홉은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외야수의 부담 > 내야수의 부담
내야수는 상대적으로 강한 타구를 많이 상대하게 된다. 따라서 실책을 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실제로 최고 유격수로 불리는 박진만도 매년 두자릿수 실책을 하는 반면, 아무리 수비력이 최악인 외야수라도 기록되는 실책은 한자릿수에 머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종범은 계속 외야수의 부담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물론 야수는 어느 포지션에서나 실책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실수에 대한 두려움의 차이는 외야수가 더 크다. 내야수를 보자. 실책을 하면 대부분 주자에게 한 베이스를 더 허용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외야수는 공 한번 빠트리면 거의 그냥 1점을 준다. 야수에게 곧바로 실점으로 이어지는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부담이다. 때문에 처음엔 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작 공이 오고 나면 많이 당황스럽다.”
그러면서 주니치 시절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종범은 주니치 진출 첫해 유격수로 맹활약했지만 가와지리의 공에 맞아 팔이 부러진 뒤 부진을 겪다 이듬해 중견수로 자리를 옮긴 바 있다.
“주니치 시절 팔꿈치 부상 전에는 유격수로 어깨가 강했고 화려한 수비를 했다고 자부한다. 팬들도 내 플레이에 매력을 느꼈었고 그런 점들이 나를 더욱 불붙게 했다. 집중력이 절로 생겼다. 하지만 외야 나간 다음부터 집중력 떨어졌다. 볼이 많이 안 오니까 다른 생각도 많이 나고(웃음). 관중이 많을 때와 그렇지 않을때의 차이는 더 커진다. 역시 내야수가 묘미다. 방망이에도 확실히 도움이 된다.”
▲내야 수비에 대하여
내야 수비를 두루 경험해 본 이종범에게 내야수비에 대해 이것 저것 물었다.
-포지션 별 차이는 무엇입니까.
“3루는 빠른 타구가 많이 온다. 수비 포메이션이나 번트에도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신경 쓸 일이 많다. 그러나 움직임이 많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는 편한 점이 있다. 유격수는 볼이 많이 오고 깊은 타구가 왔을때는 강한 어깨로 주자를 잡을 수 있어야 한다. 노력하기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3루수보다 유격수를 더 편하게 느끼는 선수들이 많다.
-좋은 유격수의 조건.
“좋은 유격수가 되려면 5가지 요소를 갖춰야 한다. 우선 강한 어깨, 그리고 (공을 쫓는)풋 워크,(공 잡은 뒤)스텝, 견제능력, 마지막으로 이후 상황에 대한 판단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특히 상대방의 허를 많이 찌르는 플레이를 하면서 좋은 유격수,수비수란 평가를 들은 수 있다.
-허를 찌르는 플레이란.
“상황을 가정해보자. 2아웃 주자 2루에서 유격수 쪽으로 깊은 타구가 온다. 이때 생각이 짧은 야수는 무조건 1루에 던지고 본다. 그러면 내야 안타가 될 확률이 높다. 이때 센스 있는 2루 주자는 베이스코치의 사인에 따라 홈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공을 잡은 유격수가 1루로 던지지 않고 몸을 틀어 바로 3루나 홈으로 던지면 그 주자를 잡을 수 있다. 거의 100% 잡아낼 수 있다. 그런 것들이 재밌다. 이런부분에 흥미를 느낄 수 있어야 진정 좋은 내야수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이 인터뷰가 있었던 날,KIA는 광주 SK전서 5회 2사 2,3루서 2루수 깊은 내야안타 때 손지환이 1루 주자를 잡으려고 1루에 송구하는 사이 2루주자 김재현까지 홈을 밟아 동점을 허용했고 결국 패했다.)
-수비 위치 잡는 방법
“코치의 지시대로만 움직이는 것은 초보적인 수준이다. 타자의 습성이나 타법을 머릿속에 저장해 그 위치에 미리 가 있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풋 워크와 어깨를 감안해서 자리를 잡아두는 것이 기본이다. 포수 사인에 따라서도 자리를 잡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다. 늘 다른 상황이 나올 수 있다. 몸쪽으로 잘 들어간 공이 먹혀서 오히려 밀어치기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까지 머릿속에 넣고 있어야 역으로도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그래야 진짜 좋은 수비수가 될 수 있다.”
-글러브의 크기
“내야수는 기본적으로 병살플레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글러브가 작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차이가 있다. 유격수나 2루의 글러브가 좀 더 작고 3루나 1루는 크고 폭이 깊은 것을 많이 쓴다. 외야수는 무조건 글러브가 커야 한다. 일단 플라이는 잡고봐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과 한국의 수비 차이
이종범은 한국과 일본 야구를 모두 경험해 본 몇 명 되지 않는 선수다. 특히 일본에서도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그들의 수비에 대해 많은 것을 몸으로 체득했다. 겉으로 보기엔 큰 차이가 나지 않는 한국과 일본의 수비. 그 속엔 어떤 차이가 담겨 있을까.
이종범은 “한국과 일본야구의 수비는 스타일 만큼이나 많은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공을 잡은 뒤 스텝의 수다. 일본은 어떻게든 원 스텝으로 공을 던지도록 가르치고 또 훈련한다. 주자들이 워낙 빠르기 때문에 스텝이 한번만 많아져도 내야안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공이 올때 기본적으로 전진을 하며 잡는다. 실수가 나올 수 있는 위험이 있지만 그 부분은 훈련으로 메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공을 잡고 던지는데 여유가 있는 편이다. 미국식이라 할 수 있다”고 차이를 설명했다.
이어 “올해 SK가 뛰는 야구를 표방하며 나왔는데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면 야수들도 긴장할 수 밖에 없다. 어떻게든 잡아내려고 자연스럽게 노력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기술의 진화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SK의 시도가 한국 야구의 수비능력을 끌어올리는데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수비를 잘하려면
이종범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어떻게 하면 수비를 잘 할 수 있을까요.” 그의 답은 간단했지만 절대 쉽게 여길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타격은 타고나지만 수비는 길러지는 것이다.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 외엔 길이 없다. 나는 어렸을때 방망이치고 수비 훈련 다 받고 나서도 다른 선수들 배팅볼 칠때 자청해서 수비 훈련을 또 나갔다. 실제로 치는 것을 많이 잡아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가 보던 말던 공을 쫓아가 잡고 잡아주는 사람 없어도 1루 송구까지 열심히 해봤다. 초등학교때부터 프로 1년차때까지 한 것 같은데 그러면서 자연히 어깨도 강해진 것 같다. 요즘은 그런 선수를 거의 볼 수 없다.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는 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서 보완해갈 수 있어야 프로로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