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IB를 만들자)(20-끝)"우리 증권업이 갈 길은"

by이정훈 기자
2008.11.26 11:59:02

[정리=이데일리 이정훈기자] 가공할 만한 위력으로 전세계를 뒤흔든 미국발 금융위기는 내년 2월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는 우리 자본시장통합법에도 커다란 숙제를 남겼다.
 
미국식 투자은행(IB) 모델은 과연 실패한 것인가? 증권사들의 투자은행 전환을 독려하는 자본시장통합법은 그대로 시행돼야 하나? 우리에게 투자은행이나 자본시장통합법은 필요한 것일까? 필요하다면 어떤 형태여야 할까?
 
이같은 물음에 답하기 위해 이데일리가 만들어 낸 `한국형 IB를 만들자`라는 기획시리즈도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러나 뭔가 시원스러운 답은 보이지 않는다. 이에 이번 기획을 총정리하고 보일듯 보이지 않는 `한국형 IB`의 해답에 접근하기 위해. 국내 증권산업이 갈 길`이라는 부제 하에 전문가들을 초빙,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14일 이데일리 본사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윤만호 산업은행 부행장, 장범식 숭실대 교수 겸 증권학회장, 조성훈 증권연구원 부원장이 참석했다. 사회는 김희석 이데일리 증권부장이 맡았다. 
 

 
시장상황은 어렵고 까마득하다. 미국 금융위기를 보면서 일부에서는 IB 무용론도 주장하고 있다. 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있는 우리로서는 한국형 IB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느냐를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우선, 지금 IB비즈니스의 상황은 어떠하며, 이를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나.
 

▲ 한국형IB를 만들자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좌담회가 지난 14일 이데일리 본사 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성훈 증권연구원 부원장, 장범식 숭실대 교수 겸 증권학회장, 윤만호 산업은행 부행장, 사회자(김희석 이데일리 증권부장).


역사적인 흐름에서 보면 애당초 미국의 IB들은 증권사였다. 원래 미국도 은행과 증권이 겸영을 할 수 있도록 했다가 대공황 때 둘이 분리됐다. 그러다보니 미국 증권사들이 유럽계 투자은행보다 경쟁력이 뒤쳐지게 됐고 이 때문에 지난 99년 글래스-스티걸법을 폐지해 양자 겸영이 가능해졌다. 이처럼 자본시장에서 활동하는 투자은행의 모습은 위기를 맞아가면서 계속 변천해왔다. 자통법 역시 글로벌 트렌드다. 우리만 독자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앞서 이미 영국과 호주, 일본, 싱가폴 등이 같은 개념의 법을 시행했다. 그 사이에 글로벌 이벤트로서 위기가 터졌다. 투자은행이 이번에 위기를 맞았지만, 자본시장이 존속하는 한 IB 기능은 그 모양과 색깔을 달리하면서 재편된다. 지금도 글로벌 IB는 소리없이 무섭게 재편되고 있다. 금융 후발국인 우리에게 이 시간이 매우 중요한 이유다.

금융도, IB도 변하는 게 속성이라고 보는 것이 편하겠다.

동감한다. 개인적으로 보면 최근 금융위기를 얘기하면서 논의가 혼동스럽게 전개되고 있다.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IB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전통적인 코어(Core) IB가 있는데, 이는 주로 M&A 자문이며 에쿼티(Equity) 캐피탈과 데트(Debt) 캐피탈도 있다. 이후 200년 가까이 IB가 전개되면서 여러 업무가 추가됐다. 투자자문관련 업무도 추가됐다. 심지어 역사적으로 사라져가는 대형사들은 자신들의 재무제표와 장부(북)를 가지고 직접 투자하기도 했다. 골드만삭스가 했듯이 PI 트레이딩이 주류였던 기관도 있다. 이들은 일종의 헤지펀드 역할이었다. 현재 은행 지주회사로 들어가 FRB 지원을 받고 있지만 당분간 그 업무가 크게 줄어들 것 같진 않다.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이 시점에 자통법을 시행하려는 게 맞느냐 하는 얘기가 있었다. 그와 관련해 우선, 미국의 무너진 회사들의 문제가 무엇이었느냐를 봐야할 것이다. 5대 IB가 어떻게 하다가 이 지경이 됐느냐를 보면, 첫 번째는 전통적인 의미의 IB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점차 자기 돈을 직접 집어넣는 포션이 커졌다는 점이다. 딜을 중개하는 과정에서 인수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 돈을 넣으면서 리스크를 떠안게 되고, M&A에서도 자기 돈을 넣으면서 한 쪽 당사자가 되는 식이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아예 헤지펀드 또는 일반투자자나 다름없이 자기자본으로 돈을 벌려고 했던 것이 많았다. 이 배경에는 전세계 금융시장에서의 돈값이 유례없이 쌌다는 점이 있다. 싼 가격에 레버리지를 일으키기 쉬워져 외부에서 차입하는 것이 ROE에 유리했다. 부채비율이 3000%를 넘어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거기에 문제가 있었다. 기본적인 IB보다는 다른 광의의 IB로 너무 간 것 같다. 또 그에 따라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했어야 하는데 그게 되지 않았다. 이는 리먼브러더스와 골드만삭스 간에 희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최근 2년간 두 회사 내역을 보면, 둘다 서브프라임을 기초자산으로 구조화한 CDO를 많이 보유하다가 포지션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고민했었다. 두 회사 모두 리스크를 감지했고, 골드만삭스는 그 때부터 포지션 조정에 들어간 반면 메릴린치는 그런 문제를 제기한 부서와 CFO를 2번씩이나 잘라냈다. 이것이 오늘날 두 회사의 차이를 낳았다.

그렇다고 레버리지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 레버리지도 레버리지지만, 부채의 구성를 함께 봐야한다. 우리 증권사도 마찬가지지만, 자금을 조달하는데 있어서 이런 IB들은 초단기시장에서 주로 조달했다. 당초에는 이런 자금의 유동성이 높다고 생각했지만 유동성이 실제 높지 않았던 CDO 같은 것을 보유하는 식이었다. 시장상황이 좋을 때에야 롤오버가 어렵지 않았고 필요할 때 매각도 쉬워 잘 돌아가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이 감지되자 조달 사이드에서 막혀버렸다. 그 때문인지 투자은행들의 안정적인 자금 조달원이 필요하며 안정적인 수신이 뒷받침돼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도 많이 나왔다. 우리도 이제 자통법을 시행하고 본격적인 투자은행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번 미국 위기가 상당히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줬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IB를 육성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최근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일각에서는 IB 무용론까지도 제기되고 있는데. 자통법 시행과 투자은행화는 여전히 필요한 가치인가.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주로 움직이는 플레이어를 IB로 정의한다면, 금융시장 변화에 따라 IB의 모양도 달라진다. 지금은 또 다른 재편기다. 우리 증권사들은 사실 규모도 작고 업무도 위탁영업 위주로만 치우쳐 외국 투자은행 같은 업무를 하지 못하고 있다. 부가가치도 낮다. 이 때문에 글로벌시장도 못 보고 리테일(소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이 그런 우리 금융업, 특히 증권업을 고부가가치화, 수출산업화로 시프트할 수 있는 기회다.

지난 9월15일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진 이후 `IB 시대는 끝났다`는 식의 기사들이 나오다 이제는 좀 진정된 것 같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 자본시장이라는 게 존재하는 한 IB가 없어질 수 없다. 그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있는 것 같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논의가, 그렇다면 누군가가 IB를 해야 하는데, 어떤 비즈니스 모델로 어떤 기관이 하느냐가 논의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차츰 더 논의하도록 하겠다.

코어 IB와 여타 IB업무간에 균형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느냐가 관건이다.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모간스탠리 등 5대 은행이 합병되고 파산했다고 해서 IB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IB와 CIB를 다 하고 있다. 도이체방크도 스스로를 상업은행이라고 하지 않고 IB라고 말한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증권사들이 이번 위기에서 피해가 컸지만 그렇다고 IB 무용론을 말할 순 없다. IB는 지금까지 계속돼 왔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코어 IB로 갈 것이냐, 광의의 IB 비중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는 일단 위기가 잦아들면 이뤄질 것이다. 레버리지 업무가 아마 타격을 받을 것이다. 차입구조 비중이 많게는 40~50배까지 갔던 회사들이 이를 줄이는 과정에 있다. 결국 앞으로 IB업무는 레버리지를 줄이는 방향이 될 것이다. 결론은 이미 나와있다. IB는 여전히 필요하다. 자통법 시행은 이 금융위기의 본질을 꿰뚫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금융시장과 금융기관의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작년말 기준으로 국내 전체 IB관련 수수료가 5343억원 정도다. M&A가 50% 정도이고, 데트와 IPO, 유상증자 등은 미미한 상태다. 수수료 비중도 IPO는 2.48% 정도이고 유상증자는 0.21%, 회사채는 0.042% 정도의 아주 열악한 수수료 구조다. 소위 IB를 한다고 했던 전체 금융기관의 볼륨이 이 정도였다. 외국계 한 회사의 특정부서가 버는 정도 수준 밖에 안됐다. 고민해봐야 한다. 비유하자면 노래(IB 비즈니스)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가수(IB 기관)가 문제다. 가수가 이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가수마다 노래를 달리 부를 수 있다. 위험관리와 자금조달 측면, 유동화증권 관련 통계 작성, 감독상 허점 등을 복합적으로 고민해 봐야할 것이다.

첨언하자면, 우리 제조업은 세계 10위내에 들어가는데 금융업만 왜 이렇게 40위권 밖으로 밀려있는가를 보면 원인은 바로 자본시장 취약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은행 자금시장은 왕성하고 풍부하게 발전돼 왔지만 채권, 주식, 복합금융시장은 굉장히 취약했다. 세계적 흐름과 기업활동은 자본시장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만큼 경쟁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자본시장을 키워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자통법이 나왔다. 자본시장에서 활동하는 기관이 IB다. 금융위기는 신용파생시장의 급속한 성장과 그 붕괴, 엄청나게 풀렸던 글로벌 유동성의 회수에서 비롯됐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금융기관 위험관리와 당국의 관리감독, 금융시장 개편 등은 우리에게 엄청나게 좋은 교훈이다. 여러 체크포인트를 불을 보듯이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자통법을 연기하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는 꼴이다. 후발 주자인 한국이 따라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틀을 짜고 준비해야할 때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한국형 IB를 만들자`는 기획 제목을 잡은 것이다. 크게 대별되는 게 미국형 IB와 유럽형의 유니버셜 뱅킹인데, 양자의 장-단점은 무엇이고 앞으로 세계 금융시장에서 어떤 유형이 패권을 잡을 것이냐를 진단해 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일단 증권업을 위주로 하는 모노라인 IB가 있다. 미국의 IB들은 그렇게 컸다. 상당기간 글로벌 상위권 투자은행들은 그런 IB들이 차지했다. 물론 이번 위기에서 1, 2등은 지주회사화 되면서 은행계 IB로 바뀌었다. 이제는 10위까지를 모두 은행계 IB가 차지한 셈이다. 반면 유럽은 유니버셜 뱅킹으로 자연스럽게 은행이 겸업을 하는 형태였다. 미국은 지주회사 밑에 은행, 증권, 자산운용이 시너지를 만들어서 CB와 IB가 함께 있는 방식이다. 결국 CIB가 있고 유니버셜 뱅킹이 있고 모노라인 IB가 있다는 얘기다. 이번 위기로 모노라인 IB가 대부분 사라지고 있지만, 강점이 있는 특화된 IB들은 굉장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적합한 IB 비즈니스 모델은 어떤 유형일 것이라고 보는가. 

`한국판 골드만삭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굉장히 자극적이다. 골드만삭스와 같은 권위를 가진 IB라고 한다면 몰라도 골드만삭스같은 비즈니스모델은 아니다. 앞으로 한국 금융투자회사가 어떻게 가야 하느냐? 모든 회사가 똑같이 갈 순 없다. 선도 대형사가 몇개 일지는 알 수 없지만, 모델이나 전략에서 차별이 있어야 한다. 모든 회사가 골드만삭스를 지향하는 것은 말이 안되고 그럴 능력도 없다. 우연히 중소기업에 대해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는데, 중기에 대한 IB서비스는 언제까지 내버려둘 것이냐 걱정스럽다. 벤처의 경우 주로 에퀴티를 통해서 조달하는 것이 당연한 건데, 현실에선 90% 이상이 은행에 의존해 있다. 은행도 중소기업 대출에 몰려있다. 중소기업은 중소기업대로 자기 성격에 맞는 자금을 조달할 수 없고 은행은 은행대로 건전성 위협을 받고 있다. 중소기업은 자본시장 수요는 굉장히 많지만 실제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그쪽이 아직도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겠지만 적극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성장한 기업 이전 단계부터 자문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회사답게 만들고 경우에 따라 PI 차원에서 자본투자로 하는 등 토탈 파이낸셜서비스를 해야 한다. 공모 외에도 사모시장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고수익채권을 활성화시킬 필요도 있다. 그런 시장을 활성화하는 가운데 역할을 해야 한다.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것이 가장 경쟁력이 있고 빠른 시간 내에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 봐야 한다. IB를 잘하기 위한 조건이 있다. 기업고객 기반이 강하면 좋다. 또 트렉레코드가 있어야 하며 크레딧이 잇어야 한다. 자체 신용도가 좋아야 하기 때문에 자기 브랜드가 높아야 한다. 우리나라 증권사들은 이것이 부족하다. 은행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모노라인 IB에 대해 애당초 어렵다고 보고 은행 지주회사를 생각했다. 소위 CIB 형태다. 중소형 증권사가 있다면 특화로 가야 한다. 은행과 같이 가든지, 자기들끼리 합쳐서 특화된 길을 찾든지 하는 이원화될 길이 바람직할 것이다.

IB로 성장하기 위해 2가지를 진단해 봐야 한다. 일단은 규모의 문제다. 현재 IB를 한다는 금융회사들의 규모가 커질 여지가 있느냐다. 두번째 금융업의 핵심인 인력이다. 사람이 모든 딜을 하는 구조다. 굉장히 중요한 이슈다. 먼저 규모측면에서는 모두가 다 커질 필요는 없다. 일부는 대형화의 길을 가야하고 나머지는 니치마켓을 찾아야 한다. 일단 IB를 하겠다는 곳은 규모를 훨씬 더 키워야 한다. 산업은행과 대우증권을 연결하는 IB는 규모에 있어서 하나의 가능성을 던져준 시도였다. 다른 회사에서도 그런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다만 우리 시장 규모가 굉장히 작기 때문에 IB 수수료를 창출하기 위해 해외로의 진출은 불가피하다. 이를 위해선 좋은 브랜드와 맨파워를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단계적인 전략으로, 해외 IB와 연계하는 작업이 1단계로 돼야 한다. 한국 밖에 있는 딜러 등과 연계작업을 해야 한다. 해외 뱅커들이나 프라이빗 에쿼티 공동 참여를 통해 배우는 것도 필요하다.
 


이같은 한국형 IB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들을 준비해야할까. 또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경쟁하기 위해 해야할 일들은 무엇일까. 

우리 금융기관들의 인사관리시스템은 IB를 키우기 어려운 구조다. 며칠 만에도 임원을 자를 수 있는 구조다. 또 연공서열이 고착화된 상황에서 한국에 들어와 유능한 인력이 일하기 어렵다. 많은 수익을 낸 사람들에게 높은 성과급을 주는 게 당연하다.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면도 너무 강하다. 또 하나, 작은 이슈이긴 하지만 세금 문제도 그렇다. 좋은 인력이나 금융기관을 유치하기 위한 적극적인 세제 개선이 필요하다.

사실 IB의 역사는 M&A의 역사라고 본다. 어떤 글로벌 IB도 자기 혼자 오거닉(organic)으로 성장한 경우는 없다. 자통법 시대에 자본시장에서 활동하기 원하는 기관은 M&A를 원하고 준비해야 한다. 또 IB 성공의 키는 인력이다. 리먼브러더스가 망해서 팔릴 때 받은 돈 거의 대부분이 사람 값이었다. 그 만큼 인력이 키다. 자통법이 시작되면 우리나라 자본시장에 인력 쟁탈전이 일어나야 정상이다. M&A가 일어나야 정상이다. 또 IB는 해 본 사람만 할 수 있다. 너나없이 전부 IB로 몰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HSBC처럼 리테일을 키울 기관이 있어야 하고, 해외나 로컬에 특화된 IB도 필요하고 맥쿼리처럼 SOC 파이낸스에서 강한 곳도 필요하다.

오랜 시간 IB에 대한 얘기를 나눴는데, IB가 근거로 삼고 활동하는 금융시장 자체에 대한 얘기도 듣고 싶다. 이번 위기 이후 앞으로 금융시장이 어떻게 변할 것으로 보는가. 글로벌 트렌드를 짚어주었으면 한다.

먼저 IB 트렌드를 보면 대형은행들이 은행 지주회사로 전환되거나 은행과 합병되는 수순을 계속 밟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골드만삭스가 은행 지주회사법 적용을 받는다 해서 기존에 해온 업무를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향후 1~2년간은 부채를 낮추는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이에 따라 IB들의 수수료 수입도 축소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코어 IB 등 전통적인 IB에 치중할 것 같다. 지금까지의 위기는 도매금융의 위기였다. 그러나 리테일 파트에 해당되는 오토론, 크레딧카드론도 문제다. 이 문제가 불거진다면 커머셜 뱅크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사실 이번 위기는 IB나 상업은행만의 이슈가 아니라 전 모든 금융기관들의 이슈다. 아울러 구제금융이 집행되면서 모든 대형 금융사들은 디레버리징을 가속화할 것이다. 이에 따라 신흥국가 시장들은 변동성이 지속적으로 커질 것이다. 그나마 감사한 것은 국제유가가 하락한 것이다. 또 미국 정부 외에 각국들이 정책공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IB들이 전통적인 코어업무에 집중하게 된다면 새로 시작하는 한국 증권사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하지 않나.

코어업무를 보면 M&A와 데트, 에쿼티 캐피탈로 크게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 전통업무에만 한정된다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이런 업무도 여러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일례로 골드만삭스는 10% 인원을 감축하기로 했는데, 그 와중에서도 정신없는 부서도 있다. 저평가된 자산이 전세계에 널려 있는 만큼 그런 비즈니스를 찾아가는 일을 IB들이 할 것이다. 특정부서들은 지금도 이를 찾아 헤매고 있다. 역발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곳을 찾아나서는 시점이다. 또 미국이라고 금융기관들에게 레버리지를 얼마나 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적절하게 스스로들 알아서 줄이는 것이다. 자신들의 업무에 맞고, 감당할 수 있는 자기자본과 부채를 가질 것이다.

코어 IB는 자본시장 활동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기능을 말한다. IPO를 해주고 M&A를 해주고, 회사채를 인수하는 것이다. 다만 이는 동일한 기능이며 론이냐 채권, 주식시장에서 인수하느냐에 따라 이름만 다를 뿐이다. 이런 활동이 어떻게 될 것이냐는 시장이 건전하고 살아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봐야 한다. 지금은 위기 상황이다. 100년만에 올까 말까한 위기라 다들 워킹을 잘 안한다. 이 상황에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먼저 살기 위한 작업을 해야 한다. 금융기관도 기업이다. 금융기관도 살려면 자꾸 디레베리징을 해야 한다. 따라서 당분간은 리스크 관리 중심의 업무가 계속될 것이다. 레버리지 줄이기가 이어질 것이다. 반대로 지금 상황에서 피해가 별로 없는 금융기관이고 현금이 있다면 할 게 너무 많다. 이게 바로 재편기의 의미다. 금융산업의 재편기는 항상 위기와 같이 간다. 과감한 M&A와 투자가 판도를 확 바꿔버린다. 지금은 은행계 IB들이 상위권을 다 차지하고 있지만 이 다음 10년간에는 한-중-일 3국 금융기관들이 다 차지할 수도 있다. 이 엄청난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우리도 금융산업을 세계적인 반석 위에 세워야할 적기라고 본다.
 


사실 금융당국의 관리감독 실패도 이번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텐데. 앞으로 한국형 IB를 만들기 위해 감독당국의 할 일은 무엇일까.

금융위기 이후 다시 규제를 강화하거나 정부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일방적인 규제 최소화는 문제가 있지만, 너무 죄는 것도 문제다. 규제는 양날의 칼이다. 금융산업, 그중에서 자본시장은 혁신적인 시장과 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규제가) 그런 혁신과 활력을 저해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판이 깨지진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 규제는 엄격한 심판자여야 한다고 본다. 게임의 룰이 정확하게 셋팅되고 공정하게 강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승자가 되는 쪽은 게임의 룰을 바꾸려하는 인센티브가 생긴다. 자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렇다. 그러면 틀이 깨진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공정한 게임의 룰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부 역할이다. 지금 그런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동의한다. 향후 금융위기가 진행되기도 하고 진정되는 과정에서 감독의 이슈가 굉장히 많이 불거져 나올 것 같다. 한 국가 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간 공조 얘기도 나올 것이다. 앞으로 여러 논란이 있겠지만, 우리는 제대로 된 구조화나 파생상품을 만들어 보지도 못한 상태인지라 이에 대한 접근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플레이어의 활력을 높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된 것에는 규제를 가해야 겠지만 꽃도 피기전에 막아선 안된다. 증권에서의 감독은 5단계인데, 진입부터 감독 검사 조사 제재로 나뉜다. 인허가 이후 최후적으로는 제재로 평가받게 된다. 국내에서는 이번에 모든 단계를 원론적 수준에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결과로 나타난 수익과 손실을 보고 역으로 접근해선 안된다. 인허가해놓고 손실이 났다고 제재로 가선 안되는 것이다. 적법 절차와 과정을 거쳐 리스크를 테이킹한 만큼 그 결과만 놓고 금융기관이나 감독당국을 문제삼을 수 없다. 하나 더 덧붙이지면, 감사원의 감사기능이 적절한지도 함께 검토해봐야 한다. 감사원은 금감원과 금융위를 감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감사원의 감사형태가 최첨단 산업의 활력과 창의력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하위의 금융감독도 제대로 될 수 없다. 감사원이 바뀌지 않으면 IB업무는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다양한 이슈를 포괄적으로 짚어봤다.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드린다. 끝으로 정리 차원에서 마무리 발언을 듣고 싶다.

지금은 위기 상황이다. 이에 맞게 해법을 풀어야 한다고 본다. 당장은 살아남는 게 전략이다. 나라와 기업 경제를 살리고 금융기관을 살려서 빠른 시간내에 금융을 통한 산업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조금만 더 멀리보자는 것이다. 낙후된 우리 금융산업을 어떻게 키워야할 것인가, 금융산업을 우리 위상에 맞게 키울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이 찬스다. 초석을 잘 까는 것이 중요하다. 파생상품이 정말 위험할 수 있고 여러 차례 구조화되면서 리스크 파일도 분석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순기능도 많다. 우리처럼 전통적으로 보수적이고 규제 중심적인 감독체제하에서 얼마든지 커스터마이징 가능하다고 본다. 자본시장의 가치인 혁신과 창의, 이노베이션을 강조하지 않으면 죽는다. 그런 것들이 살려 우리 금융산업을 이번 기회에 살려야 한다. 국부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가야 한다. 금융산업이 수출산업화로 가야 한다. 이 위기를 잘 활용해야 한다. 아울러 지금은 선도적인 투자은행을 만들기 위한 틀도 마련할 수 있는 적기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데일리의 이번 기획은 시의적절했다.

모험기업이 많고 창의와 도전정신이 충일한 국가라야 삼성, LG와 같은 기업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다. 이런 기업들이 사업하는데 있어 위험은 피할 수 없다. 시장이 이제 정상화돼야 한다. 국내 경제규모에 걸맞지 않게 자본시장이 적다보니 기업들의 자금조달도 자본시장에서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자통법은 이를 바로 잡기위한 첫 단추다. 다른 제조업과 달리 금융업은 큰 노력과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한국시장에 적합한 IB들의 업무 개발도 필요하다. 자통법과 IB화를 위해 금융위기를 좋은 기회로 활용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