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박기 논란에 흔들리는 한수원…정권교체기가 두려운 공공기관

by함지현 기자
2022.03.20 19:15:02

[끊이지 않는 낙하산 논란]②누가 인사해도 불안
알박기 논란 한수원, 원전 본입찰 등 공백 우려
임명권은 文, 정책기조는 尹…54곳도 마찬가지
이대로면 尹정부도 낙하산 논란 재현 가능성 커
전문가 "기관장 스스로 결단…제도 개선 나서야"

[이데일리 함지현 김형욱 경계영 기자]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는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내부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하다. 탈(脫)원전 정책 폐기 공약을 내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등장이 내심 반갑지만, 후폭풍 역시 거세기 때문이다.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이 지난 2월15일 울산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현장을 찾아 안전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한수원)


리더십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 한수원 이사회는 지난달 올 4월로 임기가 끝나는 정재훈 사장의 1년 연임을 의결하고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제청과 대통령 재가만 남겼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알박기` 논란에 후속 절차 진행여부를 알 수 없게 됐다.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온 체코 원전 건설 본입찰도 지난 17일(현지시간) 개시했으나 리더십 혼선 혹은 공백 속에서 입찰을 준비해야 할 상황이다. 막바지에 접어든 국내 원전 4기 건설도 마찬가지다.

한수원뿐 아니다. 368개 공공기관 중 최소 27곳, 많게는 90여개 기관이 리더십 혼선을 우려하고 있다. 이데일리가 20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와 각 기관 홈페이지를 통해 현재 재임 중인 368개 공공기관 기관장 임기를 전수조사한 결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는 5월 10일 이전에 한수원을 비롯해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등 21곳 기관장 임기가 끝난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등 6곳이 이미 공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총 27곳에 새로운 수장이 필요한 셈이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3월20일 이전 취임 27곳, 공석 6곳으로 정정. 공석으로 표기한 과학기술일자리진흥원은 올 1월 김봉수 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지식재산정책관이 기관장 취임
연초 새 기관장이 취임한 27개 기관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이전 정부가 임명한 기관장으로선 정책 방향이 전혀 다른 새 정부와 보조를 맞추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기관장이 스스로 사임하지 않는 한 3년 남짓 `불편한 동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연초 취임 기관장 중 일부는 낙하산, 알박기 논란도 뒤따랐다. 올 2월 취임한 윤형중 한국공항공사 사장은 공항 운영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국가정보원 출신이다. 비슷한 시기 취임한 정기환 한국마사회 회장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을 지냈다. 모두 윤석열 정부와 3년 남짓 보조를 맞춰야 한다.

현행법 상 일단 임명이 이뤄지면 차기 정부도 이를 뒤집긴 어렵다. 대법원은 지난해 산하 기관장에게 사표를 강요한 혐의(직권남용 등)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게 징역 2년 확정 판결을 내렸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애매한 시기”라며 “기관장 공백이 길어지는 것도 기관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원칙적으로 인사권과 임기를 보장돼야 하지만, 현 정부도 부적격 낙하산 인사를 보낸다면 차기 정부에서의 기관 운영에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현 정부와 인수위 모두 금도와 양식을 지켜가며 조율해야 한다”며 “현 기관장 임기가 끝났더라도 차기 정부가 체계를 갖출 때까지 유임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제도와 관행 개선 없인 대형 정치 이벤트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할 수 있다고 봤다. 공기업 임원 선임은 공공기관 운영 법률에 따라 임원추천위원회(이하 임추위)가 추천한 후보를 주무 기관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정치적 영향을 최소화하고자 임추위 도입 등 제도 개선이 이뤄졌으나 낙하산 논란은 늘 이어져 왔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상 공공기관장 선임 절차. (표=국회입법조사처)


당장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연말까지 42곳 기관장의 임기가 끝난다. 출범 1년 이내로 범위를 넓히면 82곳이다. 3월 대선에 이어 6월 지방선거 논공행상 속 언제든 낙하산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김형준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는 “현 정부도 출범할 때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얘기했지만, 임기 말이 되니 달라지고 있다”면서 “미국은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사람에게 돈을 주는데 우린 아무 것도 없이 나중에 자리를 제공하는 식으로 전리품화하는 관행이 있는 만큼 이런 관행·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논란은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기관장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치적 진영에 의해 임명된 사람은 원래 갈 자리가 아니니까 본인이 알아서 판단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했다. 최현선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여야를 떠나 정권이 바뀌면 공공기관장도 소신을 갖고 관둘 사람은 관두거나 새 국정과제에 찬성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근본적으론 대통령과 기관의 임기를 맞추거나 임추위를 더 투명화하는 등 관련 제도 보완과 관행 개선을 통해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논란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조달청장을 역임한 김정우 전 국회의원은 2019년 대통령과 기관장 임기를 연동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실제 개정이 이뤄지진 않았다. 임도빈 교수는 “국가인재위원회를 만들어 대통령 5년 임기에 맞춰 기관장 인사를 계획하고 이 과정을 투명하게 개방하는 방법도 있다”며 “현 정부도 비슷한 역할이 있지만 형식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