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유출? 기술수출?..하이닉스 "억울해"

by김상욱 기자
2008.03.06 13:31:16

하이닉스, 프로모스와 54나노 기술이전 협의중
기술유출 논란 재연 우려..하이닉스 "기술수출로 봐야"
D램업계 재편 가능성.."제휴통해 리스크 줄여야"

[이데일리 김상욱기자] 하이닉스반도체(000660)가 제휴관계인 대만 프로모스에 66나노 D램 공정기술이 아닌 54나노 기술을 이전하는 협상을 벌이고 있다. 당초 예상보다 협상이 지연되고 있는 것도 협의 도중 이전대상 기술이 변경된 영향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에따라 지난해 66나노 기술이전 소식이 전해지면서 불거졌던 기술유출 논란이 다시 제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하이닉스는 기술유출이 아닌 기술수출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이닉스와 프로모스는 지난해 66나노 기술이전을 놓고 협상을 시작했지만 최근 이전대상이 54나노 기술로 바뀐 것으로 확인됐다.

하이닉스 고위 관계자는 "현재 프로모스와 60나노급 등 기술이전에 대해 협의하고 있는 것은 맞다"며 "다만 아직 협상이 진행되고 있어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같은 변화는 프로모스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선두업체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올해부터 50나노급 기술을 적용해 양산에 돌입하는 만큼 지금 시점에서 66나노 기술을 이전받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프로모스는 하이닉스로부터 이전받은 80나노 기술외에 독자적으로 70나노급 기술을 개발한 상태다. 따라서 66나노 기술을 가져온다고 해도 생산성 향상의 폭이 크지 않다.

프로모스 입장에서는 효용이 떨어지는 66나노보다 54나노 기술을 가져오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는 상태다. 실제 50나노 공정은 60나노보다 50%정도의 생산성 향상이 가능하다.



하이닉스가 프로모스에 54나노 기술을 이전하는 방안을 협의하면서 지난해 제기된 기술유출 논란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아직 본격적인 양산도 시작되지 않은 50나노급 기술을 해외로 이전하는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하이닉스는 오는 3분기 54나노 기술을 적용한 D램 생산에 나설 예정이다. D램 업계 선두인 삼성전자 역시 2분기에 56나노 기술이 적용된 D램 생산에 나설 예정이다.

이에 대해 하이닉스는 프로모스로의 기술이전이 이뤄진다고 해도 이는 `기술유출`이 아닌 `기술수출`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하이닉스의 56나노 기술이 프로모스로 이전되는 시점은 빨라야 내년 상반기중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정부에 신고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실제 이전시기는 더 늦어질 수도 있다.
 
선두업체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올해 50나노급, 내년에는 40나노급 양산에 돌입할 계획인 만큼 실제 54나노 기술이 이전되는 시점에는 핵심기술로서의 효용성은 낮아질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54나노 기술이 이전된다고 해도 D램업계에서 한국업체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주도권을 빼앗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하이닉스의 입장이다.

하이닉스 고위관계자는 "프로모스로 이전되는 것은 미래기술의 개발능력이 아닌 양산기술"이라며 "양산기술이 이전된다고 기술을 개발하는 능력까지 같이 넘어간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하이닉스가 기술유출이라는 부담스러운 시각에도 불구하고 프로모스와의 협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최근 D램업계의 흐름과 깊은 관계가 있다.

현재 D램업계는 크게 삼성전자외에 하이닉스-프로모스, 엘피다-파워칩, 키몬다-난야-이노테라, 마이크론 등 5개그룹으로 형성돼 있다. 하지만 반도체 시황악화로 실적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업체들간 합종연횡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 미국 마이크론은 대만 난야와 손잡고 50나노이하 기술개발과 공동생산에 나서기로 했다. 일본 엘피다도 기존 제휴관계인 파워칩은 물론 프로모스, 마이크론과의 제휴설이 나오고 있다. 어떤 방식이든 업계 내부의 교통정리가 이뤄질 것이란 예상이 힘을 얻는 상황이다.

하이닉스도 그동안 프로모스와의 제휴를 통해 대규모 투자에 따른 리스크를 줄여왔다. 하이닉스는 프로모스에 80나노 기술을 이전해주고 생산량의 절반을 가져오고 있다. 나머지 생산분에 대해선 로열티를 받고 있다.

D램 업체간 생존을 위해 경쟁자들이 연합군의 규모를 키워가고 있는 상황인 만큼 하이닉스도 프로모스와의 관계를 지속해야 할 필요가 있다. 프로모스에 54나노 기술이전을 협의하는 것도 이같은 고민에서 출발하고 있다.
 
하이닉스 고위관계자는 "엘피다와 파워칩의 경우 거의 한회사처럼 움직이고 있다"며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산업의 특성상 제휴를 통해 리스크를 줄이는 한편 생산능력을 확충하는 전략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하이닉스를 삼성전자와 같은 눈높이로 보고 있기 때문에 기술유출 논란이 제기되는 것"이라며 "하이닉스는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삼성전자와 다른 전략을 구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