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순용 기자
2023.08.29 10:29:22
본인도 잘 모르는 ‘선천성 심장 질환’
[이데일리 이순용 기자] “어른인데, 왜 소아청소년과에 가야 하죠?”
A씨(여 · 40)는 지난해 정기 건강검진에서 순환기질환 의심증세를 발견하고, 집 근처 병원에서 심장초음파 검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심방중격결손. 우심방과 좌심방 사이에 구멍(결손)이 있어 혈류가 새는 기형이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선천성 심장병인데, 40평생 몰랐다고 한다. A씨는 결국 흉터를 최소화하는 최소침습 방법으로 수술을 받았다.
B씨(여 · 61)는 10대 때 선천성 심장병인 활로씨 사징으로 수술을 받았다. 이후 정기 검진 없이 지냈는데, 최근 들어 숨이차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을 보여 집 근처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약물치료는 효과가 없었다. 심장전문병원을 다시 찾은 B씨는 심초음파 검사에서 폐동맥 역류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것은 오래전 받은 활로씨 사징 수술 때 폐동맥 판막을 제거해서 발생했던 것으로 활로씨 사징의 대표적인 장기 합병증이다. B씨는 같은 병원 소아청소년과로 의뢰됐고, 다행히 개흉술이 아닌 허벅지에 있는 혈관을 통해 경피적으로 폐동맥판막삽입술을 받고 증상이 호전됐다.
A씨와 B씨는 모두 부천세종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진단하고 치료 방침 등을 정했으며, 수술 또는 시술적 치료를 받았다. 현재도 정기적으로 소아청소년과 외래에서 검진 및 약 처방 등을 통해 관리받고 있다.
A씨는 “아무것도 모르고 평생 살았는데 선천성 심장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너무 놀랐었다”면서 “수많은 아이 환자와 보호자가 대기하는 소아청소년과에서 어른 환자로서 앉아 있는 게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선천성=소아심장 개념을 알고 나서는 모든 걸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B씨는 “60이 넘어서 이젠 성인내과에서 치료받아야 하는 줄 알았는데, 어렸을 때 받았던 치료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고, 선천성 심장병인 만큼 소아청소년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소아·선천성 심장병 치료는 오로지 소아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영유아기 이미 치료를 받은 경우도 있고, 모른 채 살다 성인이 된 후 진단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 성인이 된 후에도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중요한 건 선천성 심장병은 출생할 때부터 이미 발생한 상태고, 성인이 돼서도 소아·선천성 심장병 전문의를 찾아 진료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의들은 소아심장을 지키려면 선천성 심장병에 대한 이해가 첫 단추라고 강조한다. 부천세종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수진 과장은 “선천성 심장병은 말 그대로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구조적 결함이 있는 경우”라며 “임신기간 심장은 세포에서 시작해 기능적 모양을 갖추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구멍이 생기거나 막히는 이상이 생긴 채 아이가 태어날 경우, 이를 선천성 심장병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유전적 요인은 드물고 85~90%는 원인불명이다. 건강한 부모임에도 선천성 심장병 아이가 얼마든지 태어날 수 있는 만큼,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이상 증상이 보이면 아이에게 선천성 심장병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며 “이미 치료받은 환자는 물론, 모른 채 살아가는 잠재적 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소아·선천성 심장병은 수십가지 유형이 있다. 크게 청색증형 심장병, 비청색증형 심장병으로 나눈다. 청색증이 나타나는 심장병은 활로씨 사징, 대혈관 전위증 등 복잡한 복합 심장기형을 들 수 있다. 청색증은 폐순환을 담당하는 우심방, 우심실, 폐동맥 쪽으로 혈액이 잘 가지 못해서 적절한 폐순환이 이뤄지지 못하거나, 대동맥과 폐동맥 등의 대혈관 위치가 잘못된 경우, 협착이나 폐쇄 등이 발생할 경우 산소포화도가 유지되지 못하면서 나타나게 된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서 말 그대로 입술과 손끝이 파래지는 증상을 보인다.
비청색증 심장병은 더 많고 일반적이다. 대표적으로 심실중격결손, 심방중격결손, 동맥관 개존증과 같은 단순 질환이 많다. 비청색증의 경우 호흡이 가쁘고 땀이 많이 나며 체중증가가 어렵고, 쉽게 지치는 등 등 심부전 증상을 보인다.
그러나 아이의 경우 증상을 말로 표현 못 한다는 문제가 있다. 김수진 과장은 “일반 병원에서 청진하다가 심장잡음이 들려서 심장전문병원으로 전원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며 “가정에서 아이가 한 번에 분유를 잘 먹지 못하고 자주 쉬거나, 숨을 자주 몰아쉬는 경우, 체중증가가 느린 경우 심장이상을 의심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소아·선천성 심장병은 심장의 구조적인 문제이므로 약물 치료가 어렵다. 심장에 구멍이 났거나 좁아진 부분에 대한 수술이나 시술 등으로 치료해야 한다. 심장은 수술하려고 절개하는 순간 급격하게 출혈이 발생하면서 혈압이 떨어져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인공심폐기 사용이라는 수술의 전제조건이 따른다. 인공심폐기는 지난 1954년 발명됐고, 이때부터 심장수술이 가능해졌다.
최근 들어서는 의학이 발전하면서 가슴을 절개하지 않고 혈관을 통해 카테터(미세 도관)를 집어넣고 심장 안으로 들어가 구멍을 막거나 좁은 곳을 넓히는 비수술적 방식, 즉 중재적 시술 또는 치료적 심도자술이 급격히 발전하고 있다.
만일 중증의 심부전 등이 발생한 경우라면 인공심장수술과 심장이식도 고려할 수 있다.
부천세종병원은 지난해 선천성 심근병증으로 사실상 말기 심부전 상태로까지 악화한 11세 환자를 상대로 심장이식 전 심장의 펌프 기능을 대신하도록 좌심실보조장치삽입술(L-VAD)에 성공한 바 있다. 국내 최연소 최소 체표면적 환자를 대상으로 한 수술이다.
수술을 집도한 부천세종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임재홍 과장은 “일반적으로 좌심실이 작은 소아 환자는 L-VAD 성공이 어렵다”면서 “정밀하고 세심한 고난도 치료가 요구되는데, 합병증 없이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쳐서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소아·선천성 심장병 환자의 진료는 소아청소년과를 주축으로 한다. 성인도 예외가 아니다. 영유아기 선천성 심장병을 치료한 경험이 있는 환자는 물론, 여러 사정으로 어린 시절 치료하지 못한 채 지내는 성인 선천성 심기형 환자 모두가 그 대상이다.
부천세종병원 소아흉부외과 이창하 진료부원장은 “대부분의 선천성 심장병은 영유아기 시절 교정(치료)을 통해 잘 해결되지만, 때에 따라 지속적인 치료를 해야 할 때도 있다”며 “선천성 심장병은 인생을 따라가며 치료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성인이 되며 방치될 우려가 크다. 제때 발견 후 수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도 평생 관리해야 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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