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꿈을 꿀 수 있는 나라"

by장서윤 기자
2011.09.30 12:36:39

알랭 드 보통…신간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출간 맞춰 첫 방한

▲ 알랭 드 보통(사진=청미래)

[이데일리 장서윤 기자] 한국에서 유난히 사랑받는 작가 중 한 명인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42)이 처음으로 방한했다. 신작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발간과 함께 한국땅을 밟은 그는 28, 29 양일간 경기 분당 NHN과 서울 서강대에서 강연회를 가졌다.

"한국의 희망적이고 역동적인 분위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그는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감명 깊게 봤다"며 한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들려주었다. 또 "종교에 대해 회의적인 이들도 종교의 효율적인 면에서 배울 점이 많을 것"이라고 책을 쓴 계기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아래는 강연회에 앞서 기자간담회에서 이뤄진 보통과의 1문1답.

- 새 책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로 독자들과 만나는 소감은

신간이 영어권보다 한국에서 먼저 출간되면서 독자들과 만나게 됐다. 신간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는 기존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종교란 다시 돌아볼 가치가 있음을 얘기해주는 책이다.

지난 수년간 서구 사회에서는 굉장히 공격적인 무신론자들이 생겨났다. 종교를 나쁘고 사악하거나 타락한 존재로 규명하면서 지성인이라면 종교에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다는 공격적인 무신론자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종교는 여전히 세속화된 사회에서 허전함을 느끼는 이들에게 많은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 이 책은 종교가 현대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살펴보는 관점에서 출발했다.

- 예를 들어 어떤 분야가 그런가

교육 같은 경우도 종교가 신도를 가르치는 방식을 보면 매우 효과적임을 알 수 있다. 예컨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평생 지속되지 않지만 종교는 반복학습의 구조를 갖고 있다. 1년의 스케줄을 짜서 특정 날에 특정한 메시지를 말한다. 현대 사회는 새 아이디어가 좋다는 믿음을 갖고 있지만 종교는 옛스러운 아이디어라도 진리와 진실함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파하기 때문에 반복교육을 매우 효과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셈이다.

예술 분야도 인간이 더 나은 존재가 되기를 갈구한다는 면에서 종교에서 가져올 수 있는 모티브가 많다. 또 여행의 경우 모든 여행이 순례라는 개념으로 볼 때 종교로부터 빌려올 만한 요소가 다분하다. 이처럼 종교의 흥미로운 요소를 가져와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트위터를 보니 한국에 대한 첫 인상을 `수줍고 쑥쓰러워하는`이라고 묘사했던데



(웃음) 약간의 수줍은 느낌이나 부끄러움을 갖고 있는 것이 한국 사회의 분위기인 것 같다. 상대방이 예의를 지키기를 기대하는 느낌이나 반대로 내가 상대방의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달까. 자아와 타인이 지니는 기대 사이의 간극이 있다는 건데 바로 그런 간극이 자의식을 만들고 또 도덕성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는 나 또한 예의를 중시하는 영국인이기에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반대로 미국이나 이태리 사회는 이런 민족적 기질이나 분위기가 없다.

-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압도적으로 긍정적이다. 나는 단순한 사람이다. 한국인들이 내 책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 즉시 한국이 좋아졌다(웃음). 한국에 오면서 한국 역사에 대해 잠깐 들여다봤는데 한국인들이 보여준 용기가 흥미로웠다. 커다란 역사적 장애를 극복해서 그런지 사회 전반에 활력이 넘치고 일에 대한 열정과 흥분감이 깃들어 있다. 여행자로서 볼 때는 왠지 `이곳에서는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나라다.

- 한국 작품 읽은 것 있나? 영화 소설 드라마 등 인상 깊었던 작품은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봤는데 굉장히 사랑스러운 책이라고 생각했다. 책 내용도 흥미롭지만 그 안에 담긴 한국 사회의 모습 또한 매우 재미있는 대목이었다. 개인적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은 공예나 건축 도자기 문학 등의 분야다. 나는 요즘 국가 간의 문화, 아이디어 교류가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 한국어 판을 먼저 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출판사의 놀라운 열정 덕택이다. 영어권 출판사보다도 먼저 내게 연락을 해 와 미국에서 출판되기 5개월 전 한국에서 먼저 나오게 됐다.

- 책에서 기독교, 유대교, 불교를 주로 다뤘다. 이 세 종교를 중점적으로 다룬 이유는

책을 쓸 당시 흥미로운 주제가 이 세 종교였다. 이슬람교는 건축학에 대한 책을 내면서 관심을 갖게 됐고 힌두교는 다시 발견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 종교다. 건축에 흥미를 느끼면서 불교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확장됐다. 또 유대교는 나의 성장 배경이다. 내가 유태인이기 때문에 기독교는 적이라는 측면이 강했는데 적은 매력적이지 않나? 그래서인지 비밀스럽게 기독교에 매료됐다.

- 책 속에는 미래의 이상적인 식당인 `아가페 식당`을 설정해 놓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각각 후회하는 일, 두려워하는 일과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작가 스스로에게 이런 물음을 던진다면

후회하는 일은 건축가가 되지 못한 것이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내가 부러워하는 대상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새삼 무능함을 느끼거나 최선을 다해 살지 못했구나란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 조롱했던 사람들을 나이가 들면서 부러워하거나 시기심을 느끼기도 하고. 근데 우리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런 감정을 갖고 씨름하는 것 같다.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물었을 때 상대방이 그저 잘 지낸다고 하면 지루해지는 반면 `나 죽을 것 같아, 나도 두려워`라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는 순간 우정과 교감의 가능성이 생긴다. 종교가 이런 유대감을 잘 만들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