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산은 왜 자꾸 불을 지르나 몰라

by경향닷컴 기자
2009.10.14 11:38:00

설악산 흘림골

▲ 열두굽이 휘어진다는 십이담계곡.
[경향닷컴 제공] 세상이 팍팍해도 단풍은 든다. 요즘 설악산은 단풍이 한창이다. 설악산은 ‘여기가 단풍이 최고, 저기가 최고’라고 꼽는다는 것 자체가 우습긴 하지만 5년 전부터 떠오르고 있는 곳이 흘림골이다. 흘림골은 20년 만인 2004년 9월 개방됐고, 그리 험하지 않게 설악의 기기묘묘한 봉우리를 볼 수 있어 해마다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지난주 흘림골 등선대에서 만난 산악인은 “여기가 설악산의 모든 절경을 모아둔 곳이잖아요”라고 했다. 그는 미국인 리 모어와 등산 중이었다. 중국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리는 휴가차 한국을 찾아 최고봉인 설악 대청봉을 한 번 오르고 싶어했지만 북상한 태풍으로 등반금지조치가 내려져 실망하고 있던 차였다. 이 때 한국 산악인이 “흘림골이 좋다”고 해서 따라왔단다. 이슬비에 온 몸이 젖어있었던 리는 설악산 단풍을 보고 “베리 뷰티풀”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등선대는 해발 1014m. 단풍철이면 공룡의 이빨 같은 하얀 기암에 단풍들이 다닥다닥 붙는다. 파충류 등에 빳빳하게 솟은 볏처럼 생긴 능선 너머로 한계령 휴게소, 그 뒷자락에 있는 서북능선도 빤히 보인다. 정상의 장대한 풍경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흘림골에서 주전골로 내려가는 등산로에는 십이담계곡이 있다. 수량은 많지 않지만 열두굽이 흘러흘러 내리는 물줄기다. 흘림골은 주전골을 거쳐 오색약수로 빠진다. 탐방로는 계곡을 이리 저리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게 돼있다. 여기저기 눈길 줄 곳이 많다. 이런 산길에서 고개를 들면 기암들이 기가 막히다. 00바위, XX바위라고 부를 만한 봉우리들이 고개를 쳐들고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다. 게다가 여심폭포 같은 기암도 있다. 여심(女深)은 여자의 마음이 아니라 몸을 닮은 바위다. 30년 전엔 신혼부부들이 물을 받아 마시며 득남을 기원했다고 한다.

▲ 단풍잎으로 뒤덮인 등반로, 단풍낙엽도 예쁘다.
흘림골은 언제가 가장 화려할까? 지난주 이틀 연속 흘림골에 올랐는데 하루 하루가 달랐다. 첫날과 이튿날 단풍이 눈에 띄게 차이가 났다. 일단 날씨에 따라 다르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은 색은 짙은데 화사하지는 않다. 맑은 날은 바위벽은 하얗고 눈부신데 단풍 색감은 비온 날만 못했다. 게다가 단풍이 기온에 따라 급속하게 남하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이계형씨는 “10월초 한계령 정상 일대 첫 단풍은 좋았다. 그런데 며칠 건조한 날이 이어지자 단풍잎이 말라서 연휴기간보다 못해졌다. 비가 왔으니 조금 나아지긴 하겠지만 장담할 순 없다”고 했다.

13일 현재 단풍은 600m 고지까지 내려온 상태다. 이번 주말에는 정상 등선대 단풍은 대부분 지고, 십이담계곡과 오색까지 단풍이 물들 것으로 예상된다.

흘림골 단풍은 산행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올해 신종플루의 영향으로 탐방객이 줄긴 했다지만 지난해까지만해도 성수기 주말엔 설악산은 산이 아니라 도심이다. (주말 북한산도 그렇지만)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올라가기 십상이다. 단풍철에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보는 색은 검정(등산복)이다. 주요 탐방로는 마치 지하철 1·3·5호선이 교차하는 종로3가역처럼 붐빈다. 등산객은 줄지어 돌덩이를 오르는 ‘황색 개미’이고, 단풍 산행은 마치 설악산 인간띠 잇기 퍼포먼스처럼 느껴질 정도다.



▲ 지난 주말 설악산 등선대에서 내려다본 단풍. 기암과 단풍이 잘 어우러져 있다.
따라서 붐비는 시간은 피하는 게 낫다. 흘림골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오전 10~12시가 가장 사람들이 많고, 이어 오전 10시 이전, 그 다음이 오후 2시 이후라고 했다. 가능하면 인파가 적은 평일 오후 2시 이후가 산행하기 좋다.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비교적 덜 붐벼서다. 두번째는 오색에서 출발, 등선대 등정후 다시 하산하면 6~7시간 걸린다. 원래 산은 요령없이 묵묵하게 오르는 것이 정석이지만 인파 속 산행에선 왕복 대신 편도 산행만 하는 ‘노하우’도 필요하다. 흘림골 입구는 한계령 도로(양양 방향)변에 있다. 여기서 40분 오르면 등선대(1.2㎞)이고, 2시간~2시간30분(5㎞) 내려서면 오색약수다. 총산행코스는 3시간 조금 더 걸린다. 오색에서 오르면 등선대까지 3시간, 한계령 도로 흘림골 입구는 30분이다. 막상 오색에서 주차를 하고 한계령 입구로 나오면 대중교통편이 없다. 반대로 흘림골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해도 마찬가지. 이 때는 택시를 이용하거나, 호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오색지구의 맘 좋은 식당 주인을 만나면 흘림골 입구에 내려주기도 한다. 일부 호텔은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성수기 단풍산행에선 불쾌한 경험도 할 수 있다. 탐방로가 밀린다고 밀쳐대는 사람도 있고, 술 냄새 풍기며 오르는 사람들도 있다.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탐방객도 있다. 인상 찌푸리지 말고 인사라도 나누자. 단풍은 짧고 인생은 길다.



*흘림골 입구는 한계령 휴게소 넘어 양양 방향으로 3~4㎞ 내려오면 오른쪽에 자그마한 탐방안내소가 보인다. (가평 현리로 들어가는 길을 무시하고 양양쪽으로 조금 더 내려오면 된다.)  주차장은 따로 없는데 단풍철엔 줄지어 갓길 주차를 한다. 갓길 주차가 수백m 이어진다.

*오전 10~12시는 피하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린다.

*흘림골~오색약수 택시비는 2만5000원. 양양 콜택시회사(033-671-2300). 
오색 약수터 앞의 식당가에서 식당주인에게 흘림골 입구까지 태워달라고 하면 등산객의 차로 흘림골 입구까지 태워주는 사람도 있다.

*오색 그린야드 호텔(033-670-1002)은 등산객이 많을 경우 투숙객을 오전 8시40분 흘림골 입구까지 태워다준다. 2인실은 주중 9만원, 4인실은 14만4000원, 주말 2인실 10만5000원, 4인실 16만8000원. 호텔 찜질방은 올해부터 24시간 운영한다. 다만 오후 10시 이전에 와야 한다. 1만원. 찜질방 손님은 흘림골 입구까지는 안 바래다준다. (좌석이 남으면 태워주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