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세형 기자
2006.11.24 15:44:18
한계기업 악용사례 비일비재
규제 지연돼 11월 최대물량 아쉬움
[이데일리 김세형기자] 해외 주식연계채권 규제안이 확정돼 이달말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해외 주식연계채권은 대차거래 등 일반투자자에게 불리한 이면계약이 있는 데도 외자 유치로 포장되는 등 관리감독이 소홀했던 분야다.
특히 유상증자도 할 수 없는 한계기업들의 생명 연장의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애꿎게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비난이 높았다.
규제안이 시행되면서 이같은 한계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빨라져 증시 투명성이 좀 더 확보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이미 한 차례 시행이 연기되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무분별하게 발행한 터라 규제가 너무 늦게 시행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사례1. 중견 휴대폰 제조업체인 브이케이는 지난 7월말 부도가 발생, 상장이 폐지됐다. 그런데 브이케이는 두 달 앞선 지난 5월 1000만달러 규모의 해외전환사채를 발행했다.
사례2. 올해까지 3년간 대규모 적자에다 경영권이 바뀐 엠피오. 엠피오는 최근 들어 전 최대주주 및 대표이사의 대규모 횡령설이 불거지며 갱생을 위해 감자까지 결의했다. 그러나 지난 7월 버젓이 500만달러 규모의 해외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했다.
사례3. 가드랜드는 올 2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지만 유가증권신고서 부실로 최근까지 증자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증자를 철회하고 해외전환사채 발행에 나섰다. 가드랜드 역시 올해까지 5년 동안 흑자를 내본 적이 없다.
적자가 났고 사업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대출이 쉽게 이뤄질 리 없고 유상증자의 성공 가능성도 불투명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해외 주식연계채권은 별다른 문제없이 발행됐다. 한계기업의 자금 조달 수단으로 악용돼 온 것이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해외 주식연계채권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공모 형태이지만 사실상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다를 바 없다"며 "특히 몇몇 해외 주식연계채권 전문 인수펀드가 인수한 기업들중 시가총액 상위 종목이나 우량 종목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해외 사채를 인수하는 곳도 DKR과 피터백, 지금은 파산한 애머런스 등 몇몇 곳으로 집중돼 있었다. 이는 정상적인 외자 유치로 볼 수 없을 뿐더러 해외 사채 발행 조건이 사채업자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돼 있어 사채업자에게만 좋은 일 시켜준다는 비난이 제기돼 왔다.
대차거래는 가장 대표적인 부작용의 사례다. 해외 사채는 대부분 발행 1개월뒤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해외 사채 인수자는 발행 시점에 대주주에게 주식을 빌린 뒤 매도한다. 1개월뒤 주식 전환으로 인해 주가가 떨어질 경우 대차거래분만큼을 사들여 상환, 무위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외자 유치로 오인하고 주식 매입에 나섰던 투자자들은 1개월뒤 쏟아지는 물량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브이케이나 엠피오 등도 발행 1개월만에 해외 사채가 주식으로 바뀌어져 시장에 매물화됐다. 사채업자 입장에서는 단기간에 매도할 계획이므로 몇개월뒤에 회사가 어떻게 되든 상관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또 이면계약이 난무했던 것도 큰 문제로 지적돼 왔다. 한 해외사채 인수자는 발행 계약시 인수뒤 1년안에 대표이사나 경영권이 바뀔 경우 조기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이런 조건들을 일반 투자자들은 알 수가 없다.
감독당국은 올초 해외 사채 규제안 방침을 밝혔다. 지난 9월에는 거의 시행되는 듯했다. 9월말 시행이 기정사실화되면서 규제를 피하기 위한 기업들의 해외 사채 발행이 쏟아졌다. 규제안이 규정 보완을 이유로 한 차례 연기된 뒤 이런 현상은 또 다시 재현됐다. 오히려 더 심화됐다.
이달 들어 코스닥 기업의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규모(결의 기준)은 3935억원. 국내가 일부 있기는 했지만 해외 사채 발행이 급증한 결과다. 이는 코스닥 사상 월 기준 최대 규모. 또 개별 발행금액수도 커져 100억원이 넘는 곳도 6곳이나 된다.
이들 대부분이 기존 조건과 마찬가지로 발행 1개월 뒤부터 주식으로 전환돼 주식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다. 인수자도 다소 다양해지긴 했지만 기존 전문 인수 펀드들이 대부분을 가져갔다. 이전 전문 인수펀드들의 행태를 감안할 때 물량부담이 충분히 예상되는 대목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초 계획안대로 지난 9월 규제안이 시행됐더라면 물량부담에 시달릴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 들었을 것"이라며 "시행을 늦추면서 더 많은 한계기업들이 버틸 자금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라도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지난 9월 규제안이 연기되면서 제도 시행이 아예 물건너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었다. 규제안 실효성 확보 방안이 애매모호했기 때문이다.
증권선물거래소 한 관계자는 "막판에 상당수 기업들이 해외 사채를 발행하면서 규제의 실효성이 다소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번 규제안이 장기적으로 한계기업이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하고 결국 증시 투명성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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