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6.09.14 12:22:00
무량수전 향해 계단을 하나·둘…
근심 밀려나고 노을만이 마음을 채웠다
[조선일보 제공] ‘사과 드라이브’를 달려 부석사(浮石寺)에 도착했다. 부석사 입구 은행나무 길은 아직 연둣빛이다. 문화해설사 권화자씨는 “소백산에 단풍이 예쁘게 드는 10월 25일쯤이면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권씨를 따라, 아직은 조용한, 그래서 더욱 운치 있는 경내를 돌았다.
부석사는 신라고승 의상대사가 676년 창건한 사찰이다. 국내 최고(最古)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으로 유명한 부석사는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절로도 꼽힌다. 일부러 일몰 시간에 맞춰 일주문에 도착했다. 오후 6시 30분. 저녁예불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사찰이 산지의 경사면에 지어진 탓에 제일 꼭대기인 무량수전에 오르기 위해선 9단의 석축을 올라가야 한다. “천왕문이 있는 맨 아래층은 지옥, 무량수전이 있는 꼭대기는 극락이라고 합니다. 한계단 한계단 오를 수록 수양하는 마음이 들지요” 해설사의 설명.
무량수전 앞 안양루에 섰다. 발 아래 소백산과 태백산줄기가 끝없이 펼쳐졌다. 저녁 노을이 구름에 물들어 운해(雲海)를 이루고 있었다. 하늘 아래서 산과 구름을 내려다 보는 극락세계에 온 것 같았다. 스님 한 분이 범종루에 들어섰다. 둥둥둥둥… 천천히, 그러면서도 깊이 있는 법고 소리가 경내에 울려 퍼졌다. 범종을 울리며 식을 마친 스님이 “절을 이리 소개하라”며 수첩에 가만히 적어준다. ‘부석사, 소백산자락 붉은 노을에 취하는 곳.’
안양루에 걸린 현판에 적힌 김삿갓의 시를 읽었다.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수가 된 오늘에야 이곳에 올랐구나… 백 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구경할까 세월이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버렸네.” 김삿갓 시인도 백수가 돼서야 본 풍경. 운이 좋았다.
가운데가 불룩한 배흘림 기둥이 버틴 무량수전은 편안하고 안정돼 보였다. 권화자 해설사는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무량수전에서 신도들이 이용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앞에 있는 배흘림 기둥에 전설이 있다”고 했다. 그 기둥을 3번 돌면 죽기 전 딱 3일만 아프다가 평화롭게 삶을 마칠 수 있다는 것. 몇몇 관광객들과 함께 기둥을 3번 돌았다.
▲ 오후 7시. 부석사 안양루에 서면 노을에 물든 구름이 내려다보인다. | |
▲ 소수서원의 천년(千年)솔밭. 소나무가 하늘까지 뻗어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