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내서 집 산' 30~40대, 소비 큰 폭 줄였다(종합)

by김정남 기자
2017.10.29 14:31:27

최근 고령층 외에 청년층·중년층도 소비성향 급감
집값이 가장 부담…취득세·복비에 인테리어비까지
소득별로도 소비 줄어…한국경제 '고질병' 더 심화
"부동산값 안정시켜야…특정지역 수요 분산해야"

서울 시내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의 매물 게시판. 이데일리DB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40대 초반의 직장인 A씨는 얼마 전 내 집 마련을 위해 은행에서 목돈을 빌렸다. 무려 2억5000만원가량.

A씨는 “문재인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규제한다고 하지만 서울 시내의 아파트 가격은 떨어질 것 같지 않다”면서 “집을 알아보는 중에도 거짓말처럼 몇 천만원씩 오르더라”고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며 부동산 매매를 더는 늦출 수 없다는 절박감마저 들었다고 한다.

다만 A씨가 감수해야 할 부담도 커졌다. 매달 100만원이 훌쩍 넘는 원금과 이자다. 30년 분할 상환 조건이 이렇다. 각종 우대금리를 적용 받았지만 빌린 돈 자체가 컸던 만큼 원리금 규모도 만만치 않았다.

당초 생각보다 대출을 더 많이 받은 것도 예상치 못한 비용이 들어서였다. 취득세와 부동산 복비를 합쳐 2000만원 이상 나갔고, 인테리어비도 최대한 아낀다고 했지만 2000만원이 훌쩍 넘었다고 한다.

A씨는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부담도 너무 크기는 하다”면서 “당분간은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중년층 가구가 주거비 부담에 헉헉대고 있다. 최근 고령층 외에 중년층과 청년층 가구의 소비성향도 하락하고 있다.

29일 현대경제연구원이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최근 5년(2011~2016년) 기간 중 40~50대 중년층 가구(전국 2인 이상 가구 기준)의 소비지출액은 연 평균 2.1% 증가했다.

이는 과거 5년(2005~2010년) 기간 중 4.4%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증가 폭이 크게 축소된 것이다.



특히 소비성향의 하락이 주목된다. 소득은 지출 측면에서 크게 소비와 저축으로 나뉘는데, 이때 소득에 대한 소비의 비율을 소비성향이라고 한다. 중년층의 최근 5년 소비지출 증가율 중 소비성향 변동 효과는 -1.5%포인트에 그쳤다. 그만큼 지갑을 닫았다는 의미다.

30대 이하 청년층의 소비도 큰 폭 줄고 있다. 최근 5년 30대 이하 가구의 소비지출액은 0.9% 증가하는데 머물렀다. 과거 5년간 4.6% 늘어난 것과 비교해 증가 폭이 급감한 것이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소비성향 감소는 60대 이상 고령층 가구에서만 나타났지만 최근 청년층과 중년층에도 나타나고 있다”면서 “주거비 부담과 가계부채 누증이 큰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부동산 매매와 전월세 가격이 급등하면서 가계부채가 급증했고, 이 때문에 미래 원리금 상환 부담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최근 5년(2011~2016년)과 과거 5년(2005~2010년) 기간 중 연령별 소비지출액 증가율 변화다. 최근 5년 전(全) 연령대에 걸쳐 소비가 급감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단위=%. 출처=통계청·현대경제연구원


고령층의 소비는 계속 하락하고 있다. 최근 5년 소비지출액은 연평균 1.0% 증가해, 과거 5년(3.0%) 대비 큰 폭 줄었다. 수명이 늘어난데 따르 노후 부담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경제의 고질병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소비 둔화 현상이 전(全) 연령대로 확산하고 있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소득별로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최근 5년 중간소득층(소득 2~4분위) 가구의 소비지출액은 연 평균 1.1% 증가했다. 과거 5년(4.3%)보다 더 둔화됐다. 고소득층(소득 5분위) 역시 같은 기간 3.9%에서 1.8%로 소비가 줄었다. 저소득층(소득 1분위·3.4%→0.8%)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김 연구위원은 “부동산 가격과 전월세 안정을 유도해 과도한 주거비 부담으로 가계가 소비를 줄이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면서 “서울 강남권에 버금가는 인프라를 갖춘 지역을 개발해 특정지역 수요를 분산하고 중산층의 주거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령인구의 일자리를 적극 창출하고 노인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