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휘경동 `행복주택` 첫삽도 못뜨는 이유는

by원다연 기자
2016.07.19 08:59:50

후보지선정협의회 거쳐 3월 행복주택 건립 부지로 선정
지역주민 임대주택 거부감 여전 "학교 몰린 곳 임대주택 안돼"
LH "사업 재검토 계획 없어, 주민 설득할 것"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49-363번지는 지난 3월 행복주택 건립 부지로 선정됐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글·사진=이데일리 원다연 기자] “초등학교 바로 옆에 행복주택이 들어선다는 데 찬성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지난 15일 행복주택 건립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서 만난 주민 김모(45·여)씨의 말이다. 동대문구 휘경동 49-363번지 일대는 올해 3월 행복주택 부지로 선정됐지만 주민 반대로 사업승인이 보류된 채 멈춰서 있다. 행복주택은 대학생,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등 젊은층을 위해 학교·직장이 가까운 곳이나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한 지역에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료로 공급되는 공공임대주택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10년 넘게 방치돼 있는 휘경동 국유지에 총 270가구 규모의 행복주택을 짓겠다는 사업계획을 지난해 동대문구에 제안하고 후보지선정협의회까지 거쳤다. 후보지선정협의회는 지난 2014년 신설됐다. 행복주택 사업 초기 겪었던 주민 갈등을 줄이기 위해 국토교통부와 사업시행자가 일방적으로 사업 부지를 선정하던 것에서 벗어나, 지자체와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개선한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사업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주민 의견을 모두 듣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주민 의견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지자체를 통해 의견 수렴 과정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부지는 사회복지시설로 용도가 묶인 후 2007년 청소년수련관 건립을 추진했지만 재원 부족으로 무산됐다. 구청 역시 공터로 방치돼 있는 땅에 행복주택이 들어오면 주민편의시설이 별동으로 건립된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판단하면서 부지는 후보지선정협의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부지 선정 후 지난 5월 열린 주민설명회에서 사업이 주민 반대에 부딪힌 후 갈등은 현재까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은 해당 부지가 학교와 맞닿아 있다는 데에 우려를 나타냈다. 부지는 휘봉초, 전동중 등과 바로 붙어 있고 반경 600m 안에 휘경공고, 휘봉고, 휘경여중·고가 있다.

김씨는 “학교들 가운데에 행복주택이 들어서면 일조권이 침해되고 아이들이 오가는 길도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며 “학교가 몰려 있는 곳이라면 학생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짓는 게 맞다”고 말했다.



임대주택 자체에 대한 거부감 역시 컸다. 부지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정모(66·여)씨는 “임대주택이라고 하니 아무래도 영세한 사람들이 들어올 거란 생각에 주민들이 반대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D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임대주택으로 저소득층이 들어오면 부근 집값까지 내려가지 않을까 주민들이 걱정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민 반대가 계속되면서 구청은 지난달 서울시를 통해 LH와 국토부에 행복주택 사업계획의 재검토를 요청했다.

행복주택 사업 추진에 주민반대를 마주한 곳은 휘경동 뿐 아니다. 서울시가 강남구 수서동 727번지에 추진하고 있는 행복주택 건립을 두고 지자체·주민과 시의 갈등이 날로 격화되고 있다. 시는 강남구가 행복주택 건립을 반대해 해당부지를 개발행위허가 제한 지역으로 지정한 것을 이달 초 직권 해제했다. 지난 13일에는 강남구범구민비상대책위원회가 사업 추진을 강행하면 시 관계자에 대해 고발장을 제출할 거라며 시를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LH 역시 주민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지 선정을 해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LH 행복주택사업처 관계자는 “현재로선 사업계획 재검토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행복주택 사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주민을 만나 협의하는 과정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시범사업 추진 이후 4년 차를 맞는 행복주택 사업은 인식 개선으로 지자체 공모가 해마다 늘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자체 공모에 따른 행복주택 사업규모가 2014년 5000가구, 2015년 9000가구에서 2016년 상반기 1만 6000가구로 크게 늘었다. 행복주택으로 젊은층이 유입되면서 지역 상권이 활성화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에 따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여전히 임대주택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며 갈등을 빚고 있다.

전문가는 지역주민의 반대를 님비(NIMBY·지역 이기주의)로만 보아서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고 진단했다. 최승섭 경실련 부동산 국책사업감시팀 팀장은 “임대주택이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지고 동네가 낙후될 거란 인식은 편견”이라면서도 “이런 인식은 지금까지 공급된 공공 임대주택의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슬럼화돼 온 데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최 팀장은 “행복주택은 영세민이 들어오는 다른 임대주택과는 다르다는 논리가 아닌 전체 공공 임대주택에 대한 관리 강화로 인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