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추락)①국부펀드 가세..원화절상 가속

by김윤경 기자
2007.11.01 11:39:47

[이데일리 김윤경기자] 글로벌 달러화 약세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원화의 환율은 10년 2개월만에 800원대에 거래되기도 했다. 탈(脫) 미국에서 시작된 달러화 약세는 이머징마켓으로의 쏠림현상으로 이어지면서 신흥국가들의 통화강세(환율하락)를 가속화하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확대되고, 고금리를 노린 해외자본 유입이 이어지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 거대한 물결을 벗어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달러화 약세 흐름과 동시에 국제 원자재가격 급등세, 신흥시장국들의 경제와 주식가격 급등세가 진행되고 있다.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글로벌 달러화 약세의 파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지, 이데일리는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외환시장 주변을 둘러싼 최근의 국내외 상황을 진단하며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편집자주)

달러화 가치의 하락은 지난 2002년 이후 추세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천문학적인 쌍둥이 적자가 지속될 수 없다는 인식이 대대적인 글로벌 통화가치 조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서브프라임 부실 충격은 이러한 추세를 가속화시킨 방아쇠이자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에 저리로 달러를 빌려주며 경상적자를 메꿔주던 아시아 중앙은행등 해외 투자자들이 미국에서 서둘러 빠져 나오려는 움직임이다.
 
글로벌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이 흔들리자 원자재가격이 다시 급등행진을 펼치고 있다.
 
한국은행의 막대한 통화관리 비용과 저조한 외환보유액 운용실적에 대한 우려, 치솟는 기름값을 둘러싼 감세 논란과 800원대 안착을 노리며 추락중인 달러/원 환율 등 우리 주변을 둘러싼 핵심 경제이슈들은 모두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자매 사이다.  
 


달러화는 유로화에 대해 연일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달러화는 유로화에 대해 8% 이상 떨어졌다.

영국 파운드화에 대해서도 달러화는 지난 1981년 5월 이후 26년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캐나다 달러에 대해선 지난 1960년 이후 47년만의 최저치다. 원화 가치에 대해서도 급락해 달러/원 환율은 지난 달 31일 한 때 10년 2개월만에 900원선 아래로 추락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한 달간 하락속도는 더욱 가파르다. 엔화를 제외한 16개 주요 거래 통화에 대해 달러화 가치는 모두 하락했다. 유로화에 대해선 1.5% 떨어졌다. 6개 주요 통화 바스켓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76.465까지 떨어졌다. 1973년 지수를 집계한 이래 최저 수준이다.


 
지난 2002년 이후 급격하게 늘어났던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그리고 최근엔 다소 개선됐지만 여전한 재정수지 적자, 이 `쌍둥이 적자`가 달러화 가치 하락의 시발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전세계 경제를 떠받들었던 미국 경제의 기초 체력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전망이 그 위를 짓누르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서 촉발된 신용위기와 주책시장 붕괴 우려가 경기침체(recession)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9월과 10월 연거푸 금리를 인하했다. 이렇게 고금리 매력까지 떨어지면 달러화 자산에 투자할 이유가 더욱 약해지게 됐다. 달러화 채권을 들고 있던 아시아 중앙은행 등 해외 투자자들은 이미 급격한 이탈조짐을 보여왔다.  




 
`소비의 제국`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 대외부채 문제는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러화는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엔 큰 순환고리가 존재한다. 우리나라와 중국 같은 대미 무역 흑자국들이 인위적으로 달러 가치 하락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들은 수출로 경제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자국 통화 가치를 낮게 유지하려 했다. 이들은 달러화를 대거 사들였고, 이 달러화는 다시 안전자산의 대명사 미국 국채에 투자됐다.
 
이에따라 미국의 경상적자는 메워졌고, 저금리를 유지하는 것도 가능했다. 저금리는 미국의 소비를 다시 부추겼고, 쌍둥이 적자는 더욱 커졌다. 이른바 `브레튼 우즈 II (Bretton Woods II)` 체제의 구조이다.
 
바로 이 순환고리가 붕괴되면서 달러화의 추락은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어 버렸다. 방아쇠는 서브프라임이 당겼다. 다급해진 FRB가 금리인하에 나서면서 기름을 부었다.
`대미 흑자국들이 떠받친 미국의 성장`이란 구조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 2007년 10월30일 현재 주요국 금리(전년과 비교)



캐피탈 이코노믹스의 줄리안 제솝은 "달러화가 주요국 통화, 특히 유로에 대해 떨어지면서 아시아 국가들과 중동 산유국들로 하여금 달러화 자산 대신 다른 쪽으로 자산을 다변화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8월 해외자본유출입동향(Treasury International Capital;TIC)을 보면 이 상황은 자명하다. 
 
TIC에 따르면 이 기간동안 외국인들은 미국 국채와 기업채권, 주식 등을 무려 693억달러어치나 팔아 빼내갔다. 미국에서 유출된 자본의 규모는 종전 사상 최고치였던 지난 1990년 3월(212억달러) 보다 3배이상 많았다.  외국인, 신용위기 절정 8월 美자산 버렸다(상보) 

여기에 최근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국부펀드(SWF) 움직임도 달러화 약세와 관련해 주목된다. 전세계적으로 최소 2조5000만달러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국부펀드들은 달러화 자산보다는 거둬들일 것이 많아 보이는 이머징 마켓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셀(Sell) U.S.A.`가 가속화하고 `바이(Buy) 이머징 마켓` 움직임이 가세하면서 신흥국가의 통화강세는 가속페달을 밟게 됐다.
 
최근 서울 외환시장에서도 해외 국부펀드들의 `달러매도-원화매수` 움직임이 거론되고 있다.
 
안태강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부펀드가 아시아 신흥시장으로 향하고 있다"며 "작년부터 국내 증시에서의 외국계 자금 이탈에도 불구하고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하는 중동지역의 자금은 꾸준히 유입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달러화의 기축통화 위상이 땅바닥에 떨어지고 있다. 달러약세에 연동해 급등세를 타고 있는 원자재 가격이 이를 입증한다. 팍스 달러리움(pax dollarium) 시대가 곧 종말을 고할 것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동 산유국들은 석유수출 대금 결제를 유로화로 바꾸겠다고 나서고 있으며, 쿠웨이트, 시리아에 이어 달러 페그(peg)제 폐지가 가속화할 움직임이다. 홍콩 역시 달러 페그제를 폐지하거나 재검토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가운데 견조한 성장세를 바탕으로 유로화나 위안화가 급부상, 달러를 대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달러화를 끌어내린 근본 배경이었던 경상수지 적자폭이 줄어들고 있고, 정치, 군사 등 경제 외적 측면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달러화가 기축통화 자리를 쉽게 내주진 않을 것이란 전망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