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미국이 수입 금지한 러시아 원유 사갈까
by신정은 기자
2022.03.09 17:05:20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 중국, 러와 협력 강화
中국영기업, 러시아 에너지기업 지분 인수설도
제제 속 러와 거래 어려워…미중 갈등 심화 우려도
[베이징=이데일리 신정은 특파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전격 금지하는 조치를 내리면서 중국이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구매를 확대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 입장에선 세계적인 에너지 수급 어려움 속에 러시아산 원유를 좋은 조건에 살 기회지만 서방국의 대(對)러시아 제재가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이고, 러시아는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에 경제를 크게 의존하는 나라다. 중국과 러시아는 에너지 분야에서 전략적 이해관계가 가장 크게 맞아떨어진다.
중국이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구매할 동기는 충분하다.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장기 집권 시대를 열 올가을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올해 경제·사회 안정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은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5.5%로 내세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경제 안정의 근간인 에너지 수급 안정이 매우 중요하다.
| 블라드비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사진=중국외교부/신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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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 의존도가 각각 72%, 44%를 넘는데 상대적으로 가격 조건이 좋아진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는 매력적인 상품이다. 정치적으로 대립 구도에 있는 호주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구매를 줄일 수 있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실제 지난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해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됐을 때도 중국은 판로가 위축된 러시아산 원유를 평균 국제유가보다 낮은 가격에 도입한 바 있다.
중국은 최근 들어 부쩍 러시아와 에너지 협력을 확대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달 4일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중국을 방문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새로운 천연가스·원유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양국이 에너지 분야 협력을 강화하는 성격이었지만, 서방의 대러 에너지 제재가 가시화하는 현시점에서 다시 이 협약이 주목받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방중 기간 러시아 국영 가스기업 가즈프롬과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는 연 100억㎥의 천연가스 거래 계약을 맺었다. 또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티도 CNPC에 향후 10년에 걸쳐 총 1억톤(t)의 원유를 중국에 공급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향후 극동 사할린 인근 해저에 있는 유즈노 키린스코예 가스전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현재 가동 중인 사할린-블라디보스토크 가스관을 거쳐 중국에 2~3년 뒤 실제 가스 공급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8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 국영 가즈프롬이 미국의 제재로 외국 기업들이 생산에 참여할 수 없는 극동 가스전에서 가스를 채굴해 중국에 공급하려 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또 중국 국유기업들은 러시아의 주요 에너지·원자재 기업들의 지분 매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이날 전했다. 러시아를 측면 지원하는 동시에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실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중국이 실제로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시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러시아 일부 금융기관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배제 등 제재가 엄격해지면서 중국 기관들이 러시아와 원유와 천연가스 거래를 계속하려고 해도 거래와 운송 절차에서 서방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각종 실무적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다.
중국 정유회사들은 최근 금융거래가 어려워지자 러시아 동부에서 수입하는 원유를 현금으로 결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동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ESPO) 원유를 구매한 한 중국 정유사는 “결제할 때 전신환송금(TT)만 사용할 수 있다”며 “과거 신용 기간이 30일이었지만 지금은 선불로 지불해야한다”고 말했다.
| 중국 대표 중앙기업이자 최대 석유기업인 시노펙(중국석유화공 中國石油化工). 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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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단기적인 조치로 장기적으로 중국이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확대하기엔 부담이 크다. 중국은 미국과 대결구도가 심화하는 것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를 바꿀 수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섣부른 행동을 하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도 이미 중국에 경고장을 보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국무부 한 관리는 “만약 중국이나 기타 국가가 우리 제재에 해당하는 활동에 연루되려 할 경우 그들 또한 우리 제재 대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자국산 석탄 생산 확대에 나섰다. 그동안 탄소 배출 저감 차원에서 석탄 사용을 억제하는 정책을 펴왔는데 국제적 불확실성 고조 속에서 에너지 안보로 정책의 무게 중심을 조정하는 모습이다.
경제계획 총괄 부처인 국가발전계혁위원회(발개위) 롄웨이량 부주임(차관급)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석탄과 천연가스 비축량을 각각 2억t, 50억㎥로 늘리고 사막과 황무지 지역에 중점 풍력·태양광 복합 발전 단지 건설을 늘리는 등 청정에너지 발전에 속도를 내 에너지 수급 안정을 도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