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소현의 일상탈출)②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by권소현 기자
2006.07.28 14:24:07
[이데일리 권소현기자] 처음에는 지갑이나 가방을 노리는 소매치기인줄로만 알았다. 처음부터 다른 곳으로 시선 한번 안 돌리고 뚫어져라 쳐다보는게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만원 버스 안에서 복도에 통의자를 놓고 반대로 앉은 이 인도 남자는 하얀 눈만 번뜩였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시선을 돌릴만도 한데 완전히 고정이다.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라 졸려 죽겠는데 이 남자 때문에 잠도 못 자겠고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결국은 나도 같이 뚫어져라 쳐다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눈싸움이 시작된지 몇 분만에 내가 졌다. 이젠 포기하고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인도인들은 이렇다. 이방인이 나타나면 신기하다는 듯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다. 옆에서 힐끗 힐끗 훔쳐보는 것도 아니고 대놓고 앞에 와서 쳐다본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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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지마할에서 좀 쉬려고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금세 인도인들이 모여들었다. 동양인을 신기한 듯 쳐다보는 그들이 더 신기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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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도착한 다음날, 올드 델리에 있는 인도 최대의 이슬람 사원 자마 머스짓을 찾았다. 타지마할을 지은 건축광 샤자한의 마지막 작품이다. 넓은 계단을 올라 입구에 도착했다. 계단 모서리에 서서 웅장한 자마 머스짓의 외벽을 카메라에 담고 돌아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어느새 인도인들이 우리 앞에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20명은 되는 듯 했다.
팔짱끼고 계속 쳐다보는 아저씨부터 키득거리면서 계속 수근거리는 아이들, 수줍은 듯 사리로 얼굴을 가리고 있으면서도 시선은 똑바로 이쪽을 향해 있는 여인들, 이들은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겠다는 표정으로 주시했다.
신발을 입구에 맡기고 맨발로 마당으로 들어서니 바닥에서 후끈 열기가 느껴진다. 한낮 더위에 작열하는 태양, 대리석인 사원 마당은 거의 불에 달궈놓은 후라이팬이다. 그늘을 찾아 깡총 걸음으로 뛰는데 자꾸 뒤에서 누가 부른다.
한 가족이 왔나보다. 10명은 넘는 무리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발바닥에 화상을 입을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사진을 한방 찍었다. 그리고 돌아서려니 다시 또 부른다. 이번엔 둘씩 찍잔다. 그 다음에는 한명씩 1대1로 찍잔다. 아예 줄을 서서 기다린다. 완전히 연예인이 된 기분이다.
"이야~ 여기서는 우리 얼굴이 먹히나보다. 아예 여기 눌러앉아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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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나시에서 결혼식 행렬을 따라가며 구경하던 인도인들. 동양인을 발견하고는 결혼식 제껴놓고 동양인 구경에 나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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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번 찍기 시작하니 중간에 끊을 수가 없다. 요구도 다양하다. 웃어라, 이쪽에 서라, 손을 어깨에 얹어달라, 모자를 벗으면 안되겠냐..
드디어 이 가족과의 사진 촬영이 다 끝나고 사원을 향해 돌아섰다. 그러나 몇 걸음 걷기 전에 또 사진을 같이 찍자는 다른 무리의 요청에 발이 묶였다. 그렇게 몇 차례의 관문을 통과한 후에야 사원에 도달할 수 있었다.
사진 찍자는 말은 못하고 그저 한 20m쯤 앞질러 가서 사진기를 들이대기도 하고 계속 옆에 붙어서 따라오기도 한다.
인도인들은 호기심이 많다. 릭샤를 타려고 가격흥정이라도 할라치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그리고 이래저래 참견을 한다. 릭샤왈라가 말한 가격이 싸네, 비싸네, 거리가 가깝네, 머네 하면서 자기들끼리 난상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길을 물어봐도 마찬가지다. 분명 한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대답하는 사람은 4~5명이다. 답은 제각각이다.
그러나 유명한 사원에서는 더 유난스럽다. 자마 머스짓에서의 상황은 아그라의 타지마할에서도, 암리차르의 황금사원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다. 광활한 인도 대륙에 살고 있는 11억명의 인도인 가운데 이렇게 평면적인 이목구비와 하얀 피부를 가진 동양인을 본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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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리차르 황금사원에서 뒤를 졸졸 쫓아다니던 인도인들. 연예인이 된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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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차르에서 만난 한 꼬마 아가씨는 나처럼 생긴 사람을 생전 처음 봤다고 했다. 한국이 어디에 있으며 그곳의 여자들은 어떻게 결혼을 하고 어떻게 삶을 꾸려가는 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이런 인도인들의 지나친 관심이 피곤했다. 제발 좀 가만히 놔뒀으면 했다. 일일이 대답해주고 사진 모델이 돼 주는 것도 고역이었다. 누구는 공주병 말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쳐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은 좀 한적하고 조용한 곳으로 가기로 했다. 비수기라 상점도 문을 닫는다는 곳, 전형적인 휴양지라 현지인보다는 관광객이 더 많다는 남부 고아(Goa)를 찾았다.
정말 고아에서는 귀찮게 하는 사람이 없었다. 먼저 와서 말 걸고 사진찍자는 사람도 없었고 호객꾼도 없었다. 현지인 역시 하도 외국인을 많이 봐와서 그런지 별로 신기해하지 않았다.
'아.. 이제 살겠다' 싶었다. 그런데 행복한건 단 하루였다. 하루가 지나니 갑자기 너무 허전하고 외로워지는 것이다.
떠들썩한 인도인들에게 익숙해졌나보다. 델리로 돌아갔을때 인도인들이 건네는 인사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아~ 인도인들이 나를 길들였군...' 너털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