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 위상 높아진 현대차그룹…전동화·현지 개발 역량 강화 '승부수'

by송승현 기자
2022.09.18 16:43:39

올 8월 누적 판매 72만 914대…시장 점유율 10.0%
현지 영업 전문가 영입해 SUV 라인업 중심 전략 주효
EV6·아이오닉5 등 품질 호평 속에 유럽 누적 판매 6.6만대 달성
현지 개발 역량 강화해 유럽 전략 차종 생산 늘릴 듯

[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영국 자동차 시장에서 40년 만에 두 자릿수 점유율 쾌거를 기록한 데에는 유럽(EU) 시장 전반에서 현대차그룹의 위상이 올라갔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현대차그룹은 유럽 시장에서 올해 연간 시장 점유율 첫 두 자릿수가 예상되는 등 순항 중이다. 배경에는 유럽 현지 영업 전문가들을 영입해 빠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의 라인업 전환을 가능케 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스피드 경영’(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한 대응력을 끌어올리는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은 성장 속도를 더 끌어 올리기 위해 전기차 판매 비중을 높이고 현지 개발 역량도 높여 유럽 시장에서 고삐를 죌 계획이다.

유럽 시장 베스트셀링 모델을 달리고 있는 기아 준중형 SUV 스포티지. (사진=기아 제공)
18일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는 올 1~8월 72만 914대 판매한 것으로 집계됐다. 시장 점유율은 10.0%로 두 자릿수를 기록한 가운데 전년 동기 대비 1.9%포인트 올랐다. 업계에서는 올 연간 합산 점유율은 지난해 최고 기록인 8.7%를 경신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더 나아가 사상 처음으로 연간 시장 점유율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에 이어 유럽 전체 시장에서 현대차·기아가 약진하고 있는 건 SUV 중심 판매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유럽은 세단에서 SUV로의 수요 전환이 가장 빨리 일어난 곳이다. 이에 따리 현대차·기아는 SUV 중심의 신차를 내놓는 등 판매 전략을 펴고 있다. 최근에는 현대차 바이온(2021년 6월), 아이오닉5(2021년 3월), 기아 EV6(2021년 9월) 등 신차를 출시했는데 모두 SUV 라인업이다. 현대차·기아가 유럽에서 판매 중인 모델 수는 각각 11개로 이 중 SUV 모델은 현대차가 6대, 기아가 5개로 SUV 비중이 점차 늘고 있다.

SUV 전환으로의 빠른 전략을 취할 수 있었던 데에는 유럽 현지 영업통을 적극 영입한 데 있다는 평가다. 현대차는 지난 2019년 영국 판매 역량 강화를 위해 다임러 영업을 총괄한 애슐리 보든을 영입해 현대차 영업개발 총괄에 앉혔다. 이어 같은 해 2000년부터 BMW 미니에서 영업을 총괄한 롭 턴불도 영국법인 영업·마케팅 임원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 프랑스 법인에는 르노를 거쳐 혼다까지 25년 넘게 유럽에서 영업을 담당한 로랑 하마드를 영업·마케팅 임원을 선임했다.

한국 브랜드 최초 ‘2022 유럽 올해의 차’로 선정된 기아 EV6. (사진=기아 제공)
친환경차의 약진도 현대차그룹의 유럽 시장 순항의 요인으로 거론된다. 올 8월까지 전기차(코나 EV·아이오닉 EV·아이오닉5·쏘울EV·니로EV·EV6) 판매량은 9만6279대로 전년 동기 대비 27.7% 급등했다. 지난해부터 판매된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와 EV6의 누적 판매량은 6만6343대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전용 전기차들은 유럽에 호평을 이어가면서 품질면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기아 ‘EV6’는 한국 브랜드 최초로 ‘2022 유럽 올해의 차(COTY)’에 선정됐다. 아이오닉5도 ‘2022 세계 올해의 자동차’를 수상하며 현대차그룹 전기차 브랜드 이미지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오는 2030년까지 유럽에서 전기차 판매 비중을 69%, 총 48만대를 판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같은 기간 미국서 전기차 비중 58%, 한국서 36%를 세운 것과 비교해 높은 수준이다. 유럽에서 전동화 전략에 사활을 걸겠다는 의미다.

유럽 시장에서 약진으로 현대차그룹은 현지 개발 역량 강화에도 역량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타이론 존슨 현대차 유럽기술개발센터 개발 책임자는 지난 6월 영국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카에 “(유럽에서) 성공적이라 우리가 직접 개발할 기회가 더 주어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유럽이 고성능 차량의 인기가 많은 만큼 브랜드 N 차종 중심으로 유럽 전략 차종 개발에 힘을 쏟을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엘란트라(한국명 아반떼) N은 유럽에서 개발돼 미국에까지 수출되기도 했다. 뉘르부르크링에 위치한 주행성능연구소 등의 관련 시설도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관련 시장에 역량을 강화하려는 건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며 “SUV와 전기차의 경쟁력이 확보된 상황에서 지속적인 신차 공급이 예정돼 있어 유럽에서 위상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한편 유럽 내 전진 기지가 될 것으로 보였던 러시아 공장은 지난 3월부터 현재까지 가동을 멈춘 상황이다. 하지만 러시아 공장에서 생산하는 물량은 대다수가 러시아 내수 전용이라 유럽 시장 판매에 큰 타격을 주지 않고 있다는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현대차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상황을 지켜보고 공장 가동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