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Fi카페] 귀하신 몸 된 게임 크리에이터..지스타 후기
by김유성 기자
2018.11.17 10:22:28
왜 TV스타와 야한 부스걸은 갈수록 지스타 현장에서 힘을 잃을까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우리 10대들이 TV보다는 유튜브를 더 좋아한다는 것은 상식이 됐습니다. 해가 갈수록 10대들이 TV를 보는 시청 시간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신 유튜브나 트위치, 아프리카TV 같은 실시간 인터넷 영상 플랫폼 시청 시간을 늘려 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올해 지스타에서도 두드러졌습니다.
10대~20대, 넓게 보면 30대까지 젊은 층 사용자 방문이 많은 게임 전시회는 우리시대 젊은층의 취향이 잘 드러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각 게임사들은 자신들의 주고객인 젊은이들의 시선을 빼앗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합니다. 그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젊은 남성들이 환호하는 부스 앞 여성 모델은 한 예입니다.
그러나 이번 지스타의 초대손님 중 주인공 격은 유튜버(크리에이터)였습니다. 특히 1인게임방송 중계에서 유명세를 얻은 이들입니다. 대도서관, 양띵은 물론 여럿 스타급 게임방송 진행자들이 왔습니다.
| 넥슨 부스 내 중계석에 나타난 대도서관(사진 왼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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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민 씨나 김기열 씨 같은 인기 연예인이 MC로 나오긴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10대들의 스타인 그들이었습니다. 연예인이 유명 게임 크리에이터를 소개하고 이들 크리에이터들이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는 식이 됐습니다. 넷마블이나 넥슨 등 주요 게임사들은 아예 부스 한 복판에 이들의 방송을 도울 스튜디오까지 마련했습니다.
행사장에서 관람객들은 이들 크리에이터들에게 특별한 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들 자신의 모습을 보길 원했을 뿐입니다. 배틀그라운드나 포트나이트 같은 게임을 하면서 환호하고 아쉬워하고, 그들의 모습 하나하나를 생생하게 보길 원했습니다. 유튜브·아프리카TV 시청에서 직접 대면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인터넷 방송 시청자들이 원하는 방송의 한 형태이기도 합니다.
| 넷마블 부스 내 무대에 방송진행자 허준(왼쪽에서 5번째)씨가 유튜버들과 함께 ‘킹 오브 더 파이터 올스타’ 소개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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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지스타 때 또 한가지 두드러진 점은 아프리카TV와 트위치였습니다. 아프리카TV는 한국 1인 방송 업계에서는 1위 기업이고 트위치는 전세계적인 게임방송 플랫폼입니다. 게임 크리에이터들이 활동하는 주무대인 셈입니다.
이들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배틀그라운드 VS 포트나이트’ 못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TV는 배틀그라운드를 비롯해 스타크래프트 등 자신들의 주특기 e스포츠 종목을 중계했고 유명 게임 BJ들이 총출동했습니다.
트위치는 프토나이트를 포트나이트를 중계하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알렸습니다. 두 회사의 부스는 여느 대형 게임사 못지 않은 관람객들이 찾았습니다. 여기에서도 게임 크리에이터들은 스타였습니다. 없으면 안될 존재인 것이죠.
이런 변화는 최근 지스타의 경향과도 어느정도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모바일 게임이 활성화되기 전까지 지스타는 국내 온라인 게임 신작을 소개하는 장(場)이었습니다. 내년 혹은 지금 한창 개발중인 게임 대작을 선보이고 체험하는 형태였습니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스토리가 매 지스타 때마다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수 년에 걸쳐 수 백억원을 투자해 공들여 만드는 온라인 게임은 ‘짜잔’하고 극적으로 선보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지스타는 좋은 데뷔 무대였던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새롭게 출시하거나 개발 중인 게임에 맞는 포맷으로 부스를 꾸미고, 시선을 끌기 위해 미녀 부스걸을 배치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모바일 게임으로 게임 산업의 중심 축이 옮겨가면서 예전과 같은 방식은 통하지 않게 됐습니다. 모바일 게임의 특성상 대부분 흥행 수명은 두 달 정도입니다. 그리고 한달에 몇 십개씩 새 게임이 쏟아져 나옵니다. 굳이 지스타 같은 무대를 통할 필요성이 적어진 것입니다.
요새 온라인 게임 신작마저 없다시피 하다보니 지스타 때 특별히 보여줄 만한 게 적어졌습니다. 예컨대 넥슨이 이번 지스타에서 새롭게 선보인 신작 게임이 14개인데 이중 2개만이 온라인 게임입니다. 그나마도 모바일 게임 ‘트라하’에 넥슨은 마케팅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예전처럼 ‘짜잔, 우리 대단하지’라고 자랑할 만한 게 줄거나 사라지자, 자연스럽게 ‘게임’이 아니라 ‘게임을 하는 사람’ 혹은 ‘게임을 잘하는 유명인’에 초점을 맞추게 된 것입니다. 대형 게임사 각 부스마다 대규묘 시연장을 마련하고, 실시간 방송 스튜디오를 꾸민 것도 이 같은 맥락이죠.
가족 단위 관람객이 늘어난 것도 지스타의 경향에 영향을 줬습니다. 1990년대 혹은 2000년대 게임을 즐겼던 젊은 연령층이 어느새 부모가 됐고 이들이 자녀를 데리고 지스타 전시관 현장에 나타난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이 각자 좋아하는 게임을 공유하는 시대가 된 것이죠.
이는 야한 옷차림의 부스걸이 자취를 감추는 한 계기로 작용 합니다. 예전 지스타에서 중요 볼거리였던 이들 대신 채워야할 게 필요하고, 이게 게임 시연과 게임방송 중계로 연결된 것이지요.
지스타의 이 같은 방향성은 일견 옳아 보입니다. 젊은 남성 중심의 음습한 느낌이 아닌, 가족 중심의 밝은 전시장 분위기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신작 게임 발표의 장이 아니라,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와서 게임을 즐기는 장이 되어간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혹자는 이번 지스타가 배틀그라운드와 포트나이트 빼고는 볼 게 없었다, 과거와 달리 재미가 없어졌다고도 합니다. 부진한 게임 업계 업황이 지스타에 반영된 것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미녀 부스걸이 사라진 대신에 가족 단위 관람객이 늘었고, 신작 대형 타이틀이 줄어든 대신 게임을 콘텐츠로 한 볼거리들이 증가했습니다. 게임사 중심에서 사용자 중심의 지스타가 된 것입니다.
E3나 차이나조이 같은 해외 게임쇼와 비교하면 지스타가 분명 작고 초라해보이지만, 또 우리만의 콘텐츠가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한류의 시작점일 수도 있습니다.
이 시작점이 다름 아닌 1인 게임 방송 진행자와 그들의 팬 격인 10~20대입니다. 그들이 주인공이고 그들이 즐기는 장이 바로 지스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