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의 '손실 최소' 원칙…자본확충 협의 험로 예고(종합)
by김정남 기자
2016.05.05 16:37:11
유일호-이주열 "논란 확대 원하지 않는다"
국책은행 자본확충 각론은 엇박자 가능성
이주열, ''손실 최소'' 원칙 들어 출자 거리둬
정부-한은 ''국민적 공감대'' 둘러싼 이견도
|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기획재정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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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독일)=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저와 총재님이 (구조조정 작업시 국책은행 자본확충과 관련해) 동떨어진 방향을 내겠느냐.”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부와 한국은행간 갈등으로) 논란이 확대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두 당사자들을 더 힘들게 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지난 4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와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차 독일을 찾은, 우리 거시정책 두 수장의 표정은 비슷했다. 국내에서 자본확충 협의체가 닻을 올린 만큼 기관간 갈등설을 애써 진화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두 인사는 지난 3일 한·중·일 회의 때도 “협의체가 가동되니 거기서 충분히 논의하도록 하자”고 하는데 공감대를 보였다고 한다.
이유가 있었다. 유 부총리의 2일 오후 만찬 기자간담회가 발단이었다. 유 부총리는 당시 “(국책은행 자본확충은) 통상 재정이 하지만 환경에 따라 (통화가 우선하는 것으로) 순서가 바뀔 수 있다” “국민적 공감대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이는 한은과는 온도차가 상당했다. 이를테면 구조조정시 발권력을 동원하려면 국민적 공감대가 전제돼야 한다는 한은의 주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됐다. 유 부총리의 언급은 국민적 공감대, 다시 말해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 동의가 필요없는 수출입은행 출자 등을 시사한 것이란 해석도 뒤따랐다. 이 총재가 “필요한 역할을 적극 하겠다”며 한발 물러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갈등설이 불거진 것이다.
논란이 증폭되자 유 부총리는 바로 해명에 나섰다. 그는 이날 오전 독일 메세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자들과 만나 “어떤 (정책적인) 조합을 채택하면 당연히 국민에게 설명을 드릴 것”이라면서 “그 첫 단계가 국민 대변자인 국회에 설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달리진 기류다.
유 부총리는 “(이 총재와) 단 둘이 만나서 해결할 일은 아니다”면서도 “만나야 한다면 당연히 만나겠다”고도 했다.
이 총재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이날 오후 만찬 기자간담회 내내 “어느 하나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면서 갈등설을 부담스러워 했다.
이 총재는 “필요하면 유 부총리를 못 만날 이유가 뭐가 있느냐”면서 “과거 (한은이 재무부에 사실상 종속됐던) 트라우마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지금은 필요하면 마다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도 했다. 이 총재는 박근혜 대통령이 긍정 검토를 지시한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해 한은이 ‘반기’를 들었다는 식의 보도가 나와 당황스러웠다고 하기도 했다.
국책은행 자본확충이 필요하고 협의에체 일임하자는 총론상 공감대는 강하게 형성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두 수장의 각론까지 같아진 건 아니다. 자본확충 협의체가 세세한 논의에 들어갈 경우 언제든 엇박자가 날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당장 이 총재는 ‘손실 최소화’ 원칙을 새로 들고 나왔다. 이는 한은 입장에서는 회수가 불가능한 ‘출자’ 대신 담보를 잡고 회수가 가능한 ‘대출’을 선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담보는 채무를 일정 기간에 확실히 갚도록 보장하는 법적 수단을 말한다. 이 총재는 “손실 최소화 원칙 측면에서는 출자보다 대출이 부합한다”고 했다. ‘한은 역할론’을 마다하지 않겠지만 원칙을 벗어날 경우에는 하지 않겠다는 뜻도 내포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정부와 갈등이 부담스럽지만 구조조정 인식은 분명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 총재가 그러면서 내세운 게 2009년 초 한은의 자본확충펀드 조성 결정이다. ①한은이 산업은행에 대출하고 이를 산은이 자체자금까지 더해 다시 대출한 자금과 ②기관 및 일반투자자로부터 조성된 자금을 더해, ③자본확충펀드를 만들고 ④이 재원을 통해 은행권의 신종자본증권과 후순위채를 매입하는 방식이다.
금융위기로 우리 경제가 어려워지자 나왔던 방안인데, 이는 출자가 아닌 대출 형식을 띠고 있다. 한은 측은 “담보를 잡는다는 점에서 기본원칙에 부합한다”고 했다.
다만 이를 정부가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신속성 측면에서 한은의 수출입은행 출자에 상당부분 기울어있다. “가장 확실하고 시장 충격이 작은 방법은 (한은이) 직접 출자하는 것”(금융위원회 관계자)이라는 인식이 대표적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협의체가 한은의 수은 출자와 정부의 공공기관 주식 현물출자 등을 우선 고려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적 공감대’를 둘러싼 이견도 추후 표출될 가능성이 있다. 유 부총리가 “협의체 결론이 나면 당연히 국회에 가서 설명할 것”이라고 했지만, 이는 야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올해 하반기까지 구조조정 작업을 계속 잇겠다는 뜻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정가 한 관계자는 “경제적 외에 정치적 환경까지 고려하면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끝내는 게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한은의 이와 약간 온도차가 있다. 이 총재는 스스로 “비정치적”이라고 말했다. △국민이 납득할 만한 타당성 △중앙은행 지원금 손실 최소화 등 경제적인 두 가지 대원칙이 무너질 경우 선뜻 합의해주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