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장구 K패션 바닥난 '제조체력' 경고등

by김정유 기자
2026.04.23 05:50:02

[제조혁신 시급한 K패션]①
기획·개발·통합 제조업체 3.3%뿐
수출·물량·트렌드 대응서 뒤쳐저
"전문성 갖춘 업체 육성 지원 필요"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1975년 스페인 아코루냐에서 탄생한 제조·유통 일괄(SPA) 패션 브랜드 ‘자라’(인디텍스)는 사업 초창기부터 자국(스페인)과 인접국가 생산기지를 중심으로 제조 인프라를 구축했다. 티셔츠 등 기본 상품들은 해외 생산기지인 베트남·방글라데시 등에 맡기되, 유행을 쫓는 핵심 상품들은 자국(일부 인접국가)에서 만든다. 이는 자라의 재고 회전율을 12배 수준으로 끌어올려 H&M 등 경쟁사를 압도하게 했고, 리드타임도 업계 평균인 3~6개월보다 훨씬 짧은 수주내로 단축시켰다. 현재 글로벌 SPA 시장을 호령하고 있는 자라의 성장은 기획 역량이 있는 자국 제조 인프라가 기반이 됐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확장의 호기를 맞은 국내 패션(K패션)업계가 중대한 기로에 섰다. 브랜드·플랫폼 측면에선 조금씩 존재감을 키우고 있지만, 절대적으로 허약한 ‘제조 체력’이 글로벌 확장의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수십년간 이어져 온 분업화·영세화된 제조 생태계를 기획형 생산(ODM) 역량을 갖춘 전문기업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의류제조업계에서 개발부터 직접 생산까지 기획형 생산 역량을 갖춘 차세대 모델로 꼽히는 '비에파'의 가산디지털단지 공장. 재단사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사진=김정유 기자)
22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의류제조업체 2만 3507곳 중 프로모션 업체는 전체의 3.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모션 업체는 패션 브랜드사로부터 주문을 받아 제품 기획·개발·생산(외주 포함) 등 의류 제작 전 과정을 통합해 진행하는 곳을 뜻한다. 일종의 기획형 생산 방식인데, 이중에서도 공장내에 제조설비를 갖추고 직접 생산할 수 있는 곳은 1~2곳 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한세실업(105630)·세아상역 등 대형 업체들도 있지만 모두 해외 생산 기반으로, 글로벌 브랜드의 대량 수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때문에 현재 규모가 작고 유망한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대부분은 국내 소재 의류제조사들에 물량을 맡기는 구조다. 한국패션협회 관계자는 “현재 국내 의류제조사들은 패턴(개발), 샘플, 임가공 등 각 공정별로 영세업체(5인 미만·전체의 80% 수준)들이 흩어져 있어 ‘통합 제조’를 할 수 있는 곳이 극히 드물다”며 “‘제2의 마뗑킴’ 같은 중소 브랜드의 성공이 탄생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최근 K패션은 일부 브랜드(마뗑킴 등), 플랫폼(무신사)이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K뷰티의 뒤를 이어 새로운 ‘K수출 품목’으로 잠재성을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수십년간 바뀌지 않은 허약한 제조 생태계는 글로벌 확장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특히 개발 역량이 빠진 현 제조 생태계는 패션시장 수출에서 가장 중요한 물량·재주문·트렌드 대응 등에서 속도를 맞추기 힘들어 전체 글로벌 진출 동력을 약화시킬 것이란 전망이다.

때문에 K패션의 글로벌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획형 생산 역량을 갖춘 차세대 제조모델을 구축해야한다는 요구가 거세지는 상황이다. 제품 개발 속도, 고부가 생산, 다품목 생산 대응, 생산 네트워크, 빠른 재주문 대응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규모화된 전문업체 육성이 가장 시급하다는 게 업계 목소리다. 이를 위한 전문인력 육성과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필요한 시점이다.

추호정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는 “K패션이 최근 한류와 함께 시너지를 내면서 이제 기지개를 펴고 있는 상황인데, 이를 안정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선 기획 역량이 있는 국내 제조기반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며 “고부가가치 의류 제작에 최적화할 수 있도록 국내 제조인프라 육성 지원을 정부 차원에서도 적극 해야한다”고 밝혔다.